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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을 보며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짚어본다

김수정 기자 hallow21@businesspost.co.kr 2018-09-20 1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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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을 보며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짚어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연합뉴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고 있자면 가슴이 참 아프다.

구한말 최고 가문의 애기씨와 살기 위해 조국을 떠났다 돌아온 미 해병대 대위의 신분과 국적을 뛰어넘는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다.

드라마가 회를 거듭할 수록 ‘대한제국’이란 간판을 내걸고도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자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다 결국 일본의 침탈에 속수무책인 조선의 처지와 운명에 가슴 아픈 정도를 넘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역사 자체가 '스포일러'라는 걸 알고도 그렇다.  

더욱 화가 나는 건 드라마 속에 펼쳐지는 장면들이 낯설지 않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지나간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기, 한국전쟁의 시기를 지나 100년가량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따지고 보면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이니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9일 15만 북한 인민들 앞에 손을 맞잡고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를 위해 힘쓸 것을 다짐했고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문 대통령의 이날 연설문에는 ‘민족’‘평화’ 외에도 ‘자주’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한다.  

그는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했다”며 “남북관계를 전면적이고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을 앞당기자고 굳게 약속했다”고 말했다. 

두 정상이 합의한 선언문의 각 조항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될지는 예단할 수 없지만 평양 공동선언이 훗날 대한민국 역사책의 중요한 한 장이 될 것만은 분명하다. 김 위원장이 ‘훌륭한 화폭’이라고 표현한 순간 말이다. 

남북 정상의 이번 만남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일본도 아닌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을 전 세계에 다시 한 번 알린 점만으로 상징성이 크다고 본다.

우리는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치고도 국제사회의 승인, 특히 한반도 비핵화의 운명을 쥐고 있는 미국은 물론 주변국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있다. 남북 정상 합의문이 공개되자마자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뭐라고 썼을까부터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이번까지 세 차례 이뤄진 남북 정상의 만남만으로 지금은 구한말 청과 아라사, 왜, 미리견이 조선을 둘러싸고 있던 당시와는 달라졌다고 믿고 싶다.   

유발 하라리는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1945년 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사실상 전쟁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썼다.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국지전을 제외하면 세계가 전쟁에 광분할 시대는 끝났다는 점에서 평화다. 그리고 그 평화는 아이러니하게도 핵무기 경쟁이 가져다준 예상치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하라리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또는 가까운 미래, 아니 어쩌면 영구적으로 평화 시대가 열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앞으로 이 지구가 누릴 유례없는 평화는 핵무기 경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발전이 가져다준 역시 예상치 못한 결과다. 

과거에는 제국 열강이 식민지를 삼으면 각종 자원을 빼앗아 이권을 얻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기억이 맞다면 하라리가 책에서 든 예는 세계 IT기업이 몰려 있는 실리콘밸리였다.

가령 중국이 미국 실리콘밸리에 쳐들어와 땅을 차지한다 해도 세계의 유수한 IT회사에 그곳의 우수한 인재들은 다른 나라로 망명을 해 또 다른 회사를 차리면 그뿐이다. 4차산업혁명에 이미 접어든 현재 사피엔스로 불리는 인류가 처음으로 대규모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초유의 시기에 이미 접어들었다고 하라리는 선언했다. 

약간 과장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하라리의 이론이 맞다면 한반도 평화에도 같은 논리, 같은 수순이 적용 가능하지 않을까? 
 
문 대통령은 대북 제재가 엄연한 현실, 남북경협이 증시를 달굴 재료로도 힘이 빠진 상황에서 남한 경제를 대표하는 기업인들을 보란 듯이 데리고 방북길에 올랐다. 김 위원장은 북한 경제성장의 열망으로 가득 차 있음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핵 폐기와 종전 선언을 거쳐 대북 제재가 풀리는 날이 오면 한반도에 영구적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은 핵도, 미국도 아닌 경제협력을 통한 자본의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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