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라이트 형제를 태운 최초의 동력 비행기 ‘플라이어 1호’는 짧은 비행에 성공했다. 12초밖에 되지 않았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낸 순간이었다.
인류의 오랜 숙원 ‘암 정복’은 하늘을 나는 것만큼이나 꿈같은 일로 여겨진다. 수많은 실패를 안겼지만 도전자 역시 셀 수 없다.
김홍렬 하임바이오 대표이사도 도전자 가운데 한 명이다.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암 완치제’를 내놓겠다며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하임바이오는 내년 말 코스닥 입성을 목표로 기업공개(IPO) 절차에 들어갔다. 설립 3년 만이다. 주관사는 한국투자증권이다.
김 대표가 임상연구 등 신약 개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상장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임바이오는 4세대 대사항암제인 ‘NYH817100’를 개발 중이다. 정상 세포는 그대로 두고 암 세포만 굶겨 죽인다. 회사에 따르면 기존 항암 치료의 부작용이 없고 완치율도 높일 수 있다.
하임바이오 관계자는 “NYH817100는 특정 종류의 암에만 효과가 있는 표적 치료제가 아니라 모든 악성종양이 공통적으로 지닌 대사의 특성을 겨냥한 약물”이라며 “대부분의 암종에서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항암제는 '화학 항암제(1세대) →표적 항암제(2세대) →면역 항암제(3세대)→대사 항암제(4세대)'로 세대가 나뉜다.
1세대 화학 항암제는 화학 물질이 암세포를 공격하는 방식인데 이 과정에서 정상 세포까지 손상을 입는다. 2세대 표적 항암제는 암 세포에만 작용하지만 내성이 생길 수 있다. 3세대 면역 항암제는 몸 속의 면역 기능을 개선해 암을 치료하지만 치료에 의미있는 반응을 보이는 환자는 일부이고 면역계가 과하게 반응하면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는 부작용이 문제로 꼽힌다.
그러나 대사 항암제는 정상 세포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난치성 재발암을 막을 수 있고 암 세포의 대사를 막기 때문에 면역 항암제보다 넓은 범위의 암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다고 평가된다.
이미 미국에서는 MD앤더슨 암센터, 하버드 의대, 바이오 스타트업 엔리브리움(Enlibrium) 등이 대사 항암제를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아무도 상용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하임바이오는 업계 최초로 대사 항암제의 동물 실험을 끝냈다. 하임바이오에 따르면 폐암 세포주 'A549'를 이종이식한 동물 모델에 NYH817100을 투여하자 암 세포의 에너지원인 'ATP'를 50% 이상 억제하고 암세포의 증식을 현저히 감소시켰다.
이 회사의 핵심 기술은 최근 국내에서 개최된 대사 항암제 국제 심포지엄인 ‘암 대사 심포지움(Cancer Metabolism Symposium)’에서 소개됐으며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발행하는 신경종양학회지 ‘뉴로온콜로지(Neuro-Oncology)’에 실려 주목을 받았다.
김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인류가 ‘옛날에는 암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더라’며 놀랄 날이 올 것"이라며 "하임바이오의 대사 항암제는 암 정복을 위한 첫 비행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거 아무도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누빌 날을 상상하지 못했듯이 항암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하임바이오의 대사 항암제는 국립암센터 수석연구원인 김수열 박사가 2015년 최초로 발견해 이듬해 학계에 보고한 ‘암 세포 에너지 대사’ 연구결과에 기초를 두고 있다.
김 대표는 이 연구결과에 바탕한 항암제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고 30억 원에 기술을 사들여 하임바이오를 세웠다.
그는 국내에서 손꼽는 인중합체(생명체를 가동하는 화학에너지의 구성요소) 전문가다. 경희대 생물학과를 나와 미국 스탠포드 의과대학에서 포스트닥(박사후 연구원)을 수료하면서 DNA 복제와 인중합체분야를 연구했다. 1959년 노벨상을 수상한 아서 콘버그 교수의 지도를 받기도 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경희대 한의대에서 생화학 주임교수를 맡았다. 경희대 한의대에 처음으로 생화학 교실을 만든 주인공이 바로 그다. 바이오가 의학의 기초학문인 만큼 한방분야에서 표준화되지 않은 약효와 약리 등을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5년에는 교수를 그만두고 하임바이오를 설립해 항암제 개발에 뛰어들었다. 실패하는 회사들이 우후죽순이지만 그만큼 성공에 확신이 있었다.
그는 하임바이오의 대사 항암제가 미국의 MD앤더슨 암센터나 하버드 의대 등보다 5년은 앞서있다고 자부한다. 기술 개발을 마치면 한국이 세계 최초의 '암 치료제 원천 기술 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지금까지의 암 치료제는 암의 진행을 늦출 뿐 근본적으로 암 세포를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며 “하임바이오는 몇 년 안에 최초의 암 치료제를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임바이오는 현재 폐암과 뇌암, 위암, 대장암, 췌장암 등의 치료를 목적으로 비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국립암센터,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과 함께 임상 1상도 준비 중이며 하반기 비임상이 끝나는대로 임상시험 승인 신청(IND)을 제출하기로 했다.
김 대표는 특별한 치료제가 없는 뇌종양 등 희귀암과 관련해서는 ‘개발단계 희귀의약품’ 등록과 ‘항암제 조건부 판매 허가’ 신청을 통해 시판 시기를 최대한 앞당길 계획을 세워뒀다.
"라이트 형제는 불가능이라는 연막을 그대로 날아서 통과했다." 에디슨 다음 가는 발명왕으로 꼽히는 '찰스 케터링의 말이다. 김 대표 역시 이륙을 꿈꾸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