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중국 정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이폰에 사용되는 주요 부품을 BOE 등 중국업체에서 적극적으로 사들이려 하고 있다.
아이폰용 올레드패널의 최대 공급사인 삼성디스플레이와 메모리반도체를 주로 공급하던 삼성전자가 중국 부품업체의 추격에 마음을 놓기 더 어려워졌다.
▲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사장. |
23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BOE는 애플과 아이폰용 올레드패널 공급 계획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아이폰용 중소형 올레드 물량 대부분을, LG디스플레이가 올해부터 소량을 공급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BOE가 세 번째 공급사로 진입하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애플은 아이폰 양산 차질 가능성을 피하고 부품업체들의 가격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부품사 다변화에 적극적"이라며 "스마트폰 경쟁사인 삼성전자에 의존을 피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중소형 올레드시장 독점은 애플의 스마트폰사업에 큰 약점으로 자리잡았다.
애플은 지난해 삼성디스플레이의 올레드 수급에 차질을 빚어 '아이폰X' 출시를 계획보다 두 달 정도 늦췄고 패널 가격 협상에도 불리한 처지에 놓여 아이폰 가격을 크게 높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이폰X 판매량이 예상치를 밑돌며 부진하자 애플은 삼성디스플레이의 후발주자로 꼽혔던 부품기업에도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시장조사기관 관계자를 인용해 "애플이 BOE의 올레드패널을 사들이는 것은 중국 정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품질을 인증해준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첨단 부품산업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한국업체들의 아성을 무너뜨리겠다는 목표로 현지 부품기업들에 막대한 금액을 지원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BOE의 대규모 디스플레이공장 증설에 중국 정부가 90% 안팎의 투자금액을 지원해준 사례도 있다.
중국 부품업체들은 올레드패널과 낸드플래시 등 핵심 부품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까지 성공했지만 아직 주요 고객사들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지 못해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프리미엄 스마트폰 최대 기업이자 품질 검증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애플에 중국산 부품이 공급된다면 전자업계에서 충분한 기술력을 인정받는다는 의미가 있다.
애플이 가장 큰 스마트폰시장인 중국에서 정부 차원의 견제로 아이폰과 콘텐츠 판매에 고전하는 만큼 중국의 전자산업 육성에 힘을 실어주며 적극적으로 구애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애플은 일반적으로 부품 수급업체에 직접 관련 기술을 지원하는 사례도 많다. 애플이 BOE를 적극적으로 돕는다면 삼성디스플레이를 추격하는 속도가 더 빨라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애플은 BOE의 고객사일 뿐 아니라 전자산업에서 지도자 역할도 하고 있다"며 "애플에 올레드 공급을 눈앞에 둔 만큼 BOE가 기술 발전에 온힘을 다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화웨이 '메이트RS'에 탑재된 중국 BOE의 올레드패널. |
BOE 관계자는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이미 중국 화웨이를 포함한 대형 고객사들에 중소형 올레드 납품이 예정돼있다"며 "70% 이상의 생산수율을 달성해 대량 양산에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애플이 중국 정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결국 중국이 가장 공을 들여 육성하고 있는 현지 반도체기업과 부품 공급 논의도 활발하게 이어갈 공산이 크다.
일본 닛케이아시안리뷰에 따르면 애플은 올해 초부터 중국 국영 반도체기업 계열사인 YMTC의 낸드플래시 수급을 검토하고 있다. 충분한 양산 능력과 기술력이 갖춰진다면 실제 공급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의 올레드패널에 이어 애플을 최대 외부 고객사로 두고 있던 고용량 모바일 메모리반도체까지 중국에 불공정하게 물량을 빼앗길 위협에 직면하는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BOE의 성공은 곧 한국과 일본을 넘어서겠다는 중국 전자업계 전체의 성공이 될 수 있다"며 "첨단 부품사업에서 중국기업들에 좋은 선례를 남길 것"이라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