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업계 수요에 따라 인문계열 정원을 축소하고 이공계열 정원을 늘리는 대학에 대규모 재정 지원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이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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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
경희대 총학생회, 한양대 총학생회, 동국대학교 사범대 학생회, 홍익대 미술대 학생회 등 대학생들은 26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업 중심 정원조정 선도대학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산업 중심 정원조정 선도대학 계획은 대학의 역할을 경제적 수요로 한정한 편협한 관점”이라며 “교육의 근본적 기능을 망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학평가와 구조조정은 대학사회를 획일화해 대학생들의 사고방식을 경직시킬 것”이라며 “대학생들이 취업기계나 산업시장의 상품이 되면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2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대학과 산업 사이의 인적자원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산업 중심 정원조정 선도대학’을 지정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정부는 산업 중심 정원조정 선도대학으로 선발된 대학들에 3년 동안 75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대학특성화사업 재정지원 규모인 2500억 원의 3배에 이르는 규모다.
황 부총리는 “정보기술 분야는 사람이 없어 외국에서 데려오는데 사범대 졸업생 2만3천 명 중 실제로 임용되는 숫자는 4600명”이라며 “우리나라에 독어독문학과가 49개 있는데 졸업하고 취업하는 학생이 얼마나 되느냐”고 지적했다.
황 부총리는 “모든 대학이 인문대학을 하면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26일 홍익대학교 앞 맥주집에서 열린 학생간담회 자리에서 “사회에 공대가 많이 필요한데 대학에 문과가 많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 조직의 두 축인 양 총리가 동일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는 기업에서 채용하는 인재가 이공계 출신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신입공채의 80% 이상을 이공계 출신으로 채웠다.
다른 대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학 졸업생은 문과와 이과 비율이 비슷해 인문사회계열 졸업생들의 취업난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막대한 재정지원을 미끼로 대학 계열별 정원을 조정하도록 압박을 넣는 것이 옳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지방대학을 중심으로 인문사회계열 학과통폐합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가속화해 인문학 기반을 고사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다.
지난해 폐과된 학과 137개 가운데 인문계열 학과는 41개로 전체의 29.9%를 차지했다. 2010년 인문계열 학과 폐과 비중이 11.7%였던 것에 비해 크게 늘어나 인문계열 학과가 갈수록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계열이 전체 폐과의 25.9%로 인문계열 다음으로 비중이 높았다. 전체 폐과 가운데 인문계열과 사회계열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양정호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특정 학과, 특정 학문을 줄이라고 하면 대학들이 자율적 조정을 할 여지가 없어진다”면서 “당장의 필요에 의해 기초학문을 없애면 학문적 기반이 부족해져 응용학문도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