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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요타 아키오 토요타자동차그룹 사장 |
도요타 아키오 토요타자동차 사장이 드디어
2009년 리콜 사태의 종지부를 찍었다
. 급발진 사고가 터진 지
5년만이다
. 아키오 사장은 사상최대 액수의 벌금을 물어야 하지만
, 그래도 그동안의 골칫거리에서 벗어나 마음 편히 달릴 수 있게 됐다
.
토요타는
19일
(현지시각
)미국 법무부와 벌금
12억 달러
(1조
2828억 원
)을 내고
5년간 끌어온 급발진 관련 수사를 매듭짓기로 했다
. 이 금액은 미국 정부가 자동차 업계에 매긴 벌금 중 최고다
.
미국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이날
“토요타가 지난
2009∼2010년 도요타와 렉서스의 급발진 문제에 대해 정부를 포함한 소비자에게 거짓정보를 제공한 사실을 인정했다
”며
“우리 모두를 속인 수치스런 행위를 했다
”고 신랄히 비판했다
.
토요타는 벌금과 함께
3년 간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 형사처벌은 피한 셈이다
. 토요타는 미국 정부의 독립적 감시기구를 통해 생산 판매를 감독받기로 했다
.
토요타는 고속도로교통안전국
(NHTSA)로부터
6600만 달러의 벌금을 별도로 부과받았다
. 게다가 미국 소비자와의 소송도 남아있다
. 현재
80여 건의 소송이 제기된 상태고 관련 문제가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
급발진 사고는 지난
2009년
8월 캘리포니아주의 고속도로에서 일어났다
. 일가족
4명을 태운 렉서스
ES350차량이 도로를 벗어나 폭발해 전원 숨진 것이다
. 당시 토요타는 사건의 책임을 부인했다
. 토요타는 수차례 공식 성명서와 언론 보도를 통해 급발진의 원인이 차량 운전석 바닥매트에 의한 작동오류나 운전자의 미숙한 운전실력라고 말했다
.
그러나 토요타가 일부 모델의 브레이크와 가속페달 등에 결함이 있다는 점을 알고도 숨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 그러면서도 소송을 제기한 소비자들과 비밀 합의를 하는 등 이중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
오너
3세인 도요타 아키오
(58) 사장은 취임 첫해인
2009년 급발진 사고로 곤욕을 치렀다
. 토요타의 최대 위기이기도 했다
.
“토요타의 모든 차에 내 이름이 들어가 있다
. 차가 상처를 입으면 나도 상처를 입는다
.” 2010년
2월 미국 하원청문회에서 아키오 사장은 이렇게 말하며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
. 청문회가 끝난 뒤 토요타 공장으로 와서 눈물을 보였다는 말들이 있다
. 그 후 아키오 사장은 토요타를 처음부터 다시 일으키기 위해 여러 전략들을 진두지휘했다
.
2010년 말
‘렉서스
LFA’라는 수퍼카를 출시했고
2012년에는 소형 스포츠카
‘86’을 부활시켰다
. 특히
86은 아키오 사장이
‘달리는 즐거움을 소비자에 돌려주겠다
’는 각오로 만든 첫 번째 스포츠카다
. 토요타가 기본기에 충실한 차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아키오 사장 자신이 직접 개발부터 테스트까지 모두 참여했다
.
또 토요타의 최강점인
‘품질
’을 되살리기 위해 초창기
‘카이젠
’ 시스템을 부활시켜 생산라인을 모두 다시 점검했다
. 생산자 개개인의 능력에 힘을 실은 조직력으로
‘저스트인타임
(JIT)’과 자동화 생산방식을 끌어올렸다
.
급발진 사고가 발생한 지
5년이 지나고 아키오 사장은 지난해 역대 최고의 실적을 보여줬다
. 토요타는 지난
4일 지난해 영업이익 예상치를 전년도 대비
82% 늘어난
2조
4000억 엔으로 밝혔다
. 2007년 이후 최대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 토요타는 올해 판매목표도
1천만 대를 넘어선
1032만 대로 잡아 놓고 있다
.
이런 실적은 지난해 엔저현상과 일본내 생산단가 인하
, 일본 소비개선의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 하지만 아키오 사장이 그동안 토요타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해 온 보상과 맞물린 결과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