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사업 핵심 목표로 꼽던 90단 이상의 3D낸드 기술 확보에 성공하며 다시금 낸드플래시 기술력 우위를 증명했다.
하지만 낸드플래시업황이 나빠진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새 공정을 중심으로 생산 투자를 벌이기 쉽지 않아 기술 발전 성과가 온전히 나타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10일 기존의 64단(4세대) 3D낸드 공정보다 낸드플래시 메모리반도체의 성능과 생산 효율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는 90단 이상의 5세대 3D낸드 양산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이로써 2016년 12월 세계 최초로 64단 3D낸드 양산을 시작한 뒤 약 1년 반 만에 차세대 공정을 도입할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반도체기업들은 3D낸드를 처음 도입할 때부터 90단 이상의 공정을 '꿈의 기술'로 꼽아 왔다.
이 기술을 활용해 반도체 소자를 90단 이상으로 쌓아야 성능과 생산 효율 측면에서 기존의 평면 형태 낸드플래시와 분명한 차이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64단 3D낸드 기술을 확보한 지 약 1년 만에 생산 비중을 전체 낸드플래시의 5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로 초반부터 평택 반도체공장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설 투자를 벌였다.
이런 성과로 2016년 17조 원 정도에 그쳤던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매출은 지난해 약 26조 원으로 급증했다. 낸드플래시 호황에 따른 가격 상승과 출하량 증가 효과가 겹친 덕분이다.
삼성전자가 새로 확보한 90단 이상의 3D낸드 공정을 중심으로 이처럼 대규모 투자에 나선다면 경쟁사와 다시 기술 격차를 벌리면서 반도체사업에서 외형 성장을 추진할 수 있다.
그동안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차기 목표로 내놓은 90단 이상의 3D낸드 기술 개발에 차질을 빚고 있어 경쟁사들에 추격을 허용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이어져 왔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도시바메모리와 마이크론 등 반도체 경쟁사와 3D낸드 기술 격차가 좁혀지며 삼성전자의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시바메모리와 마이크론 등 반도체기업은 올해 상반기부터 64단 3D낸드 기술을, SK하이닉스는 72단 3D낸드 기술을 확보한 뒤 적극적으로 증설 투자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증권사 예상과 달리 적기에 기술 확보에 성공하면서 90단 이상 3D낸드 생산으로 경쟁업체와 확실한 차별화를 이룬만큼 선두를 지키기 유리해졌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90단 이상의 3D낸드는 반도체 생산효율이 64단 공정보다 30% 이상 개선됐다. 이론적으로 증설 투자에 들이는 돈에 비해 출하량 증가 효과가 이전보다 클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가 90단 3D낸드의 증설 투자를 본격화하면 낸드플래시 공급 과잉과 업황 악화가 더 심각해져 삼성전자에 타격이 되돌아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이미 64단 3D낸드의 공급 과잉으로 판매 가격을 낮춰 수익성에 악영향을 받고 있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경쟁사들의 시장 진입이 본격화되자 삼성전자가 점유율을 방어하기 위해 기업용 SSD 등 낸드플래시 제품 가격을 낮춰 내놓고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부터 약 30조 원 규모의 투자가 예상되는 평택 반도체 2공장의 착공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90단 이상의 3D낸드 생산라인 도입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상반기에 낸드플래시업황이 예상보다 빠르게 악화되면서 삼성전자는 투자계획을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새 공정기술을 완성하고도 본격적 생산을 시작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황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예고했던 평택 낸드플래시공장 투자 규모가 이미 기존 계획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는데 이보다 더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고 바라봤다.
하지만 90단 3D낸드 공정 도입이 늦어지면 삼성전자가 낸드플래시 경쟁사들의 추격을 방어하기 어려워져 뚜렷한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은 처지에 놓여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초반에는 우선 평택 기존 낸드플래시공장의 64단 3D낸드 생산라인을 90단 이상 공정으로 전환해 양산하고 있다"며 "추가 투자계획은 아직 논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낸드플래시시장 상황과 90단 이상 3D낸드에 대한 고객사의 수요를 우선 파악한 뒤 증설계획을 구체화하는 소극적 투자전략을 쓰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