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회장은 20일 오전 9시52분 서울대병원에서 7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지난해 4월 뇌수술을 받은 뒤 후유증이 악화되면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LG그룹은 지난주 구 회장의 병색이 짙어지자 구 상무를 LG그룹 사내이사로 선임하기로 하는 등 경영권 승계를 서둘러 준비했다.
LG그룹의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구 상무를 전면에 내세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한편 그룹 총수의 공백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구 상무가 당장 LG그룹을 이끌기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 40세라는 젊은 나이도 문제가 되지만 더 큰 걸림돌은 경영자로서 구 상무의 경험 부족이다.
구본무 회장은 41세이던 1986년 회장실 부사장으로 그룹 경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에 비하면 그룹 경영과 관련해 구 상무의 경험은 거의 없다. 구 상무는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에 대리로 입사해 실무 능력을 쌓아왔지만 그룹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를 경험하지는 못했다. 최근에야 실무책임자 자리에 오른 만큼 경영능력을 입증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구 상무가 지주회사 LG의 이사로 취임한 뒤 그룹 전체의 운영을 파악하는 일에 나서겠지만 상당 기간 구 부회장과 전문경영인 6명의 역할이 더욱 강화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LG그룹은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생활건강 등 핵심 계열사의 부회장들을 중심으로 전문경영인체제가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
하현회 LG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들은 모두 나이가 60대인 데다 차 부회장을 제외하고 30년 넘게 LG에 몸담은 정통 ‘LG맨’ 출신이다.
지난해 말 임원인사에서 ‘세대교체’ 대신 60대 이상의 부회장단들을 대거 유임한 것 역시 구 상무가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물려받을 때까지 보필하는 역할을 염두에 뒀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또 이들 대부분은 구 회장 생전에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LG그룹 오너일가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며 현장경험을 쌓아온 만큼 당분간 경영일선에서 구 상무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경영 승계와 관련해서는 지주회사인 LG의 하현회 부회장의 역할이 클 것으로 보인다. 하 부회장은 구본무 회장의 의중을 잘 알고 이를 충실히 실행해 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기획력과 풍부한 현장경험을 함께 갖춘 핵심 전문경영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구 부회장 역시 구 상무가 그룹 총수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오너 일가를 대변하는 후견인으로서 역할에 충실할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의 장자승계 원칙으로 볼 때 구 부회장이 구 상무를 대신해 그룹 총수를 맡거나 총수 대행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구 부회장은 구 상무의 순조로운 경영권 승계를 돕다가 2선으로 물러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구 부회장이 계열분리를 통해 독자적 경영체제를 구축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LG그룹이 경영권을 후대에 넘겨줄 때마다 형제 및 형제의 자손들은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 독립해왔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가 1968년 타계했을 때 구자경 현 LG그룹 명예회장은 불과 44세였지만 창업주의 첫째 동생인 고 구철회 락희화학 사장은 1970년 곧바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구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을 당시에도 구 창업주의 동생들인 고 구평회 LG상사 회장과 구두회 호유에너지 회장 등이 모두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비즈니스포스트 윤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