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부동산신탁회사의 설립 인가를 추진하면서 9년 만에 신규 사업자가 시장에 들어올 길이 열리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가 하반기에 부동산신탁회사 1~2곳의 설립을 인가할 방침을 세우면서 대형 금융회사들의 사업 참여가 예상되고 있다.
금융위가 최근 내놓은 ‘금융업 진입규제 개편방안’을 살펴보면 부동산신탁시장의 경쟁도를 상반기 안에 평가하고 신규 회사의 설립 인가절차를 3분기 안에 착수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방안이 그대로 실행되면 2009년 코리아신탁과 무궁화신탁이 설립된 뒤 9년 만에 신규 회사가 시장에 들어오게 되는 셈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부동산신탁과 같은 신탁업은 투자자의 재산을 단순 관리하는 사업이라 위험도가 낮은 점을 감안해 진입장벽도 완화하는 것”이라며 “부동산신탁회사는 관련 법안을 따로 개정하지 않아도 신규 인가를 할 수 있어 3분기 안에 관련 절차를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9년 동안 부동산신탁회사 11곳 체제가 유지되면서 이 회사들의 순이익은 늘어난 반면 경쟁은 상대적으로 침체됐다고 판단해 신규 인가를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신탁은 부동산 소유자가 소유권을 신탁회사에 맡기고 신탁회사는 소유자의 뜻에 신탁회사 자금과 전문지식을 결합해서 맡긴 부동산을 효과적으로 개발·관리하고 그 이익을 돌려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1990년 4월 부동산 투기대책 가운데 하나로 도입됐다. 부동산신탁 활성화를 통해 부동산 인식을 '소유개념'에서 '이용개념'으로 바꾸고 토지공개념 제도를 정착하기 위해 실시됐다.
부동산신탁은 2016년 이후 이어진 부동산 가격의 상승에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분야로 꼽힌다. 이에 힘입어 부동산신탁회사들도 쏠쏠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부동산신탁회사들은 2017년에 순이익 5061억 원을 올렸고 2016년보다 28.7% 증가했다. 신규 회사가 마지막으로 설립된 2009년의 전체 순이익 907억 원과 비교하면 9년 사이에 순이익이 457.9% 급등한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부동산신탁시장이 호황을 누린 반면 진입장벽은 높아 사실상 독과점 체제가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은 이전부터 종종 나왔다”며 “금융위가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경쟁촉매 역할을 할 신규 회사의 설립을 허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한금융지주와 NH농협금융지주는 신규 부동산신탁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 유력후보로 꼽힌다. 우리은행도 금융지주사 전환을 염두에 두고 부동산신탁회사 설립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부동산신탁은 비이자이익을 내기에 좋은 시장이고 은행 등과 시너지도 내기 편하다”며 “금융지주사가 자회사로서 부동산신탁회사 설립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KB금융지주가 KB부동산신탁, 하나금융지주는 하나자산신탁을 부동산신탁 계열사로 두고 있는 전례도 있다. 두 회사는 계열 은행과 협업해 안정적 순이익을 내는 ‘알짜 자회사’로 꼽힌다.
증권사들도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부동산금융을 강화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부동산신탁회사 설립을 추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부동산금융시장의 강자로 꼽히는 메리츠종금증권이 부동산신탁회사 설립에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미래에셋대우와 KTB투자증권 등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반면 기존 부동산신탁회사들은 신규 회사의 설립 인가에 부정적 태도를 지키고 있다. 부동산신탁시장의 호황을 불러왔던 부동산가격 상승세가 점차 가라앉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2월 기준 6만903가구로 집계돼 1월보다 1799가구 늘어났다. 미분양 주택규모가 2017년 8월 이후 매달 늘어났다.
정효섭 한국기업평가 금융1실 선임연구원은 “부동산신탁회사의 수주 성장세는 2017년 들어 둔화되고 있다”며 “부동산 경기가 앞으로 하락하면 부동산신탁업계의 위험 관리 능력도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 호황기에 주요 부동산신탁회사들은 자체신용으로 자금을 차입해서 신탁받은 토지 등 부동산을 개발하는 ‘차입형 신탁사업’으로 수익을 올렸다. 수수료율이 5%대로 높고 신탁회사가 일부 공사대금을 부담하기 때문에 리스크도 크다. 이른바 ‘고위험·고수익’ 구조다.
반면 중소형 부동산신탁회사는 자금 차입없이 부동산의 관리, 처분, 분양관리 등을 맡는 '비차입형 신탁사업'에 주력해 왔다. 비차입형은 수익률이 차입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지만 안정성이 높은 장점이 있다.
신규 부동산신탁회사가 추가로 인가돼 대형 금융회사가 시장에 새로 진입하면 그동안 비차입형 신탁사업에 주력해 왔던 중소형 부동산신탁회사들의 경영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자기자본을 투자하는 차입형 신탁사업은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신규 부동산신탁회사는 초기 2~3년 동안 비차입형 신탁사업부터 진행해 경쟁이 치열해 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