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면만 보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없다.”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은 10여년 전 반대를 무릅쓰고 항공사업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애경그룹의 사업영토를 생활용품에서 항공과 유통 등으로 넓혔다.
그동안 주도해온 사업들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으면서 올해는 ‘제2의 창업’을 내세우고 새 성장동력을 찾기위한 공격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애경그룹은 애경산업과 제주항공, 애경유화 등 ‘주요 계열사 삼총사’가 모두 승승장구하고 있다.
애경산업은 올해 1분기에 역대 1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특히 화장품부문에서 벌어들인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9%나 늘었다. 화장품 부문은 매출 비중이 꾸준히 오르면서 2015년 14.3%에서 지난해 48%까지 높아졌다.
이 회사는 채 부회장의 주도로 2012년부터 화장품사업을 강화해왔는데 그 결실을 보고 있는 셈이다.
올해 4월 새로운 기초화장품 브랜드 ‘플로우(FFLOW)’를 내놓는 등 앞으로도 화장품사업에 중점을 둔다. 지난해 9월 설립한 중국 상하이법인도 올해 본격적 성장을 시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윤규 애경산업 대표는 “2020년이면 화장품사업 매출 비중이 생활용품사업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항공 역시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애경그룹의 ‘간판’으로 자리를 굳혔다.
지난해 제주항공은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73.4% 뛰어 1천억 원을 넘어섰다. 국내 저비용항공사로는 처음이다. 매출 역시 9964억원을 거두면서 애경산업의 6289억 원, 애경유화의 9598억 원을 훌쩍 넘어 간판 계열사로 부상했다.
올해도 해외여행 증가추세 덕분에 실적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는 제주항공 매출이 올해 1조3천억 원대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애경그룹에서 매출 비중 20%를 돌파할 수도 있다.
채 총괄부회장의 9년 전 선택이 애경그룹의 오늘을 확 바꿔놓은 셈이다.
제주항공은 2006년 6월 첫 취항 이후 5년 내리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초기 투자비가 너무 큰 탓이었다. 2009년에는 더 이상 차입금을 늘리기 힘들어지면서 면세점사업과 제주항공, 둘 가운데 하나는 내려놔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다.
채 부회장은 제주항공을 선택했다. 그는 AK면세점 코엑스점을 롯데그룹에 매각하고 제주항공에 집중하는 승부수를 던졌는데 지금의 대성공으로 보답받았다.
애경그룹의 또 다른 주력 계열사 애경유화 역시 올해 사상 처음으로 매출 1조 원을 넘길 수 있다고 증권업계는 바라본다.
채 부회장은 2002년 애경그룹 부회장에 취임했다. 2006년부터는 총괄부회장에 올라 어머니인
장영신 회장 대신 그룹 경영을 이끌고 있다.
스스로를 잘 드러내지 않지만 재계에서 사업 다각화에 무척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채 부회장은 비누와 세제 등 생활용품과 화학을 주력사업으로 하던 애경그룹을 유통과 항공, 부동산 등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기업으로 키우고 있다.
다만 애경그룹은 그동안 보수적 기업문화와 소극적 마케팅으로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쓴소리를 들어왔는데 올해 들어서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애경그룹은 올해 8월 기존 사옥을 떠나 홍익대 부근에 새롭게 둥지를 튼다. 1956년 서울 구로구에서 애경그룹의 모태인 비누와 세제사업을 시작한 지 60여 년 만이다.
홍익대 부근 신사옥은 '
채형석 시대'를 알리는 상징이기도 하다. 채 부회장은 2008년부터 신사옥을 직접 구상하고 이전을 준비해왔다.
신사옥에는 지주회사 AK홀딩스를 비롯해 애경산업과 AK켐텍, AM플러스자산개발, AK아이에스, 마포애경타운 등 6개 계열사가 입주한다. 그동안 주요 계열사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었는데 대부분이 한지붕 아래 모이게 되는 만큼 채 부회장의 그룹 장악력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채 부회장은 올해 초 신년 임원 워크숍에서 “올해 '홍대 시대'를 열어 젊은 공간에서 ‘퀀텀점프’를 할 것”이라며 “새 도약의 시작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쾌적하고 효율적 근무환경에서 임직원들이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조용한 경영자`로 평가되던 채 부회장이 적극적 행보로 전면에 나섰다고 할 수 있다. 제주항공 등 그가 총대를 맨 신사업이 안정화된 만큼 새로운 출발을 할 시점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채 부회장은 올해 주요 계열사에서 1300여 명을 신규채용한다. 각 계열사들의 영업이익을 지난해보다 20% 개선히겠다는 목표를 잡고 4600억 원을 투자할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2016년 투자금액(1306억 원)보다는 253.8%, 지난해(2958억 원)보다는 56.2% 늘어난 규모인데 공격적 경영으로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채 부회장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우선 제주항공에 8대의 항공기를 추가 들여와 매출 1조 원 돌파라는 목표에 추진력을 달고 애경유화에도 공장 재정비와 증설 등 투자를 늘린다.
올해 3월 코스닥에 입성한 애경산업 역시 상장으로 마련한 자금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몸집을 키운다. 시설 및 설비투자에 100억 원, 해외 유통채널 확대에 50억 원, 브랜드 투자에 100억 원, 신제품 및 화장품 연구원 인력 충원에 50억 원 등을 계획하고 있으며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채 부회장은 최근 비상장 계열사 직원들에게 지주사인 AK홀딩스 주식을 반값에 살 기회를 주고 애경유화 임원들에게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을 제공하는 등 임직원들의 동기 부여에 힘을 쏟기도 했다.
애경그룹 관계자는 "연구개발 등 과감한 투자와 인수합병을 통해 새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목표"라며 "이뿐 아니라 안전과 환경에 투자해 윤리경영도 정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