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수천만 원을 호가하던 수입산 동결건조기를 국산화해보겠다는 일념으로 무역회사를 뛰쳐나온 29살 청년이 온몸으로 부딪치며 5년 만에 자체 생산에 성공한다.
홍성대 일신바이오베이스 대표이사 이야기다. 동결건조기는 약재나 식품 등을 저온에서 건조해 원료의 손상없이 분말 형태로 만드는 데 쓰인다. 전 세계적 바이오산업 성장에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대표적 바이오장비다.
홍 대표는 국내 바이오 관련 기업들을 상대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매출처를 확대하는 데 힘 쏟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일신바이오베이스가 유럽과 미국 등 해외에서 동결건조기 공급을 늘리기 위해 현지 판매업체와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 현지 딜러를 통해 여러 유럽국가에서 제약 관련해 동결건조기 수출 기회를 찾고 있다. 미생물 등 바이오 관련 재료를 보관하는 초저온냉동고도 해외에서 판매처를 확대하기 위해 힘 쏟고 있다.
일신바이오베이스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에서 공급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에 집중하고 있다”며 “현재는 매년 한두 건 정도의 수출 실적을 내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일신바이오는 동결건조기를 국산화한 첫 회사이자 국산 동결건조기시장에 유일한 중견기업이다. 한 두 곳의 영세업체가 더 있지만 경쟁한다고 보기 힘든 수준이다. 현재 국내 동결건조기시장은 외국계 회사들이 70%를, 일신바이오베이스가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새 공장을 증설하거나 증설 계획을 발표할 때마다 일신바이오 주가가 급등했는데 국내 업체 가운데 절대적 위치에 있어 공급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거래를 한 적은 없다.
전 세계에서 몇 년 새 블록버스터급 바이오치료제들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다양한 바이오시밀러(복제약) 개발 경쟁이 일고 있는 지금이 홍 대표에게는 어느 때보다 큰 기회일 수 있다.
홍 대표가 지금의 바이오 ‘붐’을 예측하고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가 처음 동결건조기사업을 접한 곳은 첫 직장으로 다닌 한 외국계 무역회사였고 회사가 판매한 동결건조기가 고장 나면 고치는 엔지니어로 일했다.
우연히 한 대학에 동결건조기를 공급하는 데 따라갔다 한 대에 수천만 원이 나간다는 사실을 안 뒤 충격을 받고 회사를 차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기껏해야 수백만 원 정도가 정가인데 수입산밖에 없어 과도하게 프리미엄이 붙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홍 대표는 제품을 수리하며 구동과정을 훤히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자체적 생산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퇴사 뒤 3년 동안 독학을 거쳐 일신엔지니어링(현 일신바이오)을 창업했다.
처음부터 쉽진 않았다. 동결건조기 개발을 위해 산업용 초저온냉동고의 온도인 영하 140도까지 내리는 기술을 개발해야 했는데 여러 시행착오 끝에 5년이나 걸렸다.
이후 이름을 일신랩으로 바꿔 법인으로 등록하고 삼성그룹 등에서 투자를 받으며 고객사를 늘려나갔다. 식품제조회사, 제약사, 바이오기업 등 국내외에서 잇달아 수주했다.
홍 대표가 특히 주목하는 분야는 바이오산업이다. 2009년 회사이름을 일신바이오베이스로 바꾸면서 바이오의약품이나 헬스케어식품 등 바이오기업들을 향한 영업을 강화했다.
동결건조기는 양산해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에 맡게 주문제작하고 설치까지 하는 수주 방식이기 때문에 어떤 기업에 하느냐에 따라 판매가격도 달라진다. 바이오기업에 공급할 때는 일반산업용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기술과 재료가 들어가기 때문에 가격도 비싸다.
일신바이오베이스 관계자는 “때에 따라서는 해외 바이오기업에 동결건조기 한 대를 10억 원에 판적도 있다”며 “바이오산업 특히 해외를 위주로 판매처를 늘려나가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동결건조기시장은 2014년 3조 원에서 2020년 5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홍 대표는 1959년 태어나 외국계 무역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88년 일신바이오베이스(당시 일신엔지니어링)를 창업했고 1994년 일신랩으로 회사이름을 바꿔 법인으로 등록했다.
2007년 코스닥에 상장했으며 2009년 일신바이오베이스로 이름을 바꿨다.
홍 대표는 2002년에 우수자본재개발 산업포장을, 2003년 자랑스런중소기업인상을 받았으며 2006년부터 한국과학기기협동조합 이사도 맡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대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