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단순히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천연가스 물량을 늘리는 것뿐 아니라 파이프라인을 이용한 가스(PNG) 도입 가능성도 급부상하고 있다.
정 사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9월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공동언론발표를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3년 중단된 북한을 지나는 러시아 가스관 사업을 재개하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신북방정책을 천명하며 러시아와 9가지 협력분야 중 하나로 가스를 들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남북러 가스관사업의 추진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지속하면서 완전히 대화가 단절돼 북한을 지나는 가스관을 놓는 일이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과거에 추진되다가 남북관계 경색으로 중단된 사업들이 재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문재인 정부 곳곳에서 남북러 가스관사업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3월30일 동북아 가스파이프라인 전력그리드 협력포럼에서 “한반도 안보여건이 개선되면 남한 북한 러시아 가스관사업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송영길 북방경제협력위원장도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이뤄져 가스가 북한을 통해 한국에 오는 기회를 만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맹성규 국토교통부 2차관은 3월12일 기자간담회에서 “러시아 가스관사업과 연계한 철도 개선사업을 검토하고 있다”며 “북한 철도 지하에 가스관을 매설하면 남북철도 연결과정 비용을 줄이고 실현 가능성이 빠른 사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한 북한 러시아 가스관사업은 첫 삽도 떠보지 못하고 중단됐으나 남북 철도는 실제 철도를 연결하고 운행까지 했을 정도로 사업이 진척됐다. 남북 철도와 가스관을 연계하면 사업 추진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
◆ 남한 북한 러시아 가스관 추진에 유리한 환경 조성
대내외 환경 역시 남한 북한 러시아 가스관사업 추진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연임 성공은 가스관사업의 호재라는 의견이 많다. 푸틴 대통령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천연가스 협력사업에 합의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그의 마지막 임기 안에 가스관사업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포스트도 3월6일 칼럼에서 “푸틴 대통령은 북한을 통해 천연가스관을 남한으로 연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가스관 사업이 실현되면 김 위원장이 러시아 핵우산으로 강력한 안전 보장 수단을 확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와 우리나라 양쪽 모두 가스사업 협력 의지를 품고 있는 만큼 가스관사업도 물꼬만 튼다면 예상보다 진행이 빠를 수 있다.
일각에서 통상 변수가 가스관사업에 명분을 더할 수 있다는 의견도 조심스레 고개를 든다. 미국의 보호무역으로 국내 철강사업자들이 피해를 보게 됐는데 이를 보전하기 위한 수요처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3월26일 미국과 철강 관세 면제를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세 면제 대신 수입할당량(쿼터)이 설정됐다. 판재는 2017년 대비 쿼터가 오히려 늘었으나 강관류는 2017년의 절반 수준으로 쿼터가 줄었다.
김 본부장은 “강관 감소폭이 큰데 수출선 다변화와 내수 확대를 정부 차원에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에너지용 강관은 미국 수출 의존도가 크고 내수 수요는 거의 없다. 보호무역의 악재에 부딪힌 세계 시장에서 수출선을 다변화하는 일도 어려울뿐더러 미국 수출 쿼터를 보전할 만큼 내수를 일으키는 일은 더더욱 힘들다.
하지만 남한 북한 러시아 가스관사업이 진행되면 1000㎞가 넘는 가스관이 필요해 에너지용 강관 수요를 크게 늘릴 수 있다. 보호무역으로 피해를 보게 된 철강업계에 기회를 주기 위해 정부가 남북러 가스관 사업에 속도를 낼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