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준(57)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14일 차기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내정됐다. 법조인 출신으론 처음이다. 법률 전문가로서 방통위의 규제 업무와 이용자 보호 정책에 힘을 쏟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원장은 그동안 주로 대통령의 최측근인 언론계 출신이 맡아왔기 때문에 업무경험이 없는 판사 출신 내정은 매우 이례적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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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내정된 최성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최 내정자는 이날 내정된 직후 기자들과 인터뷰를 통해 "방통위원회 업무 중 상당부분이 법을 다루고 집행하는 것"이라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재판하듯 방송통신 이용자의 눈높이에 맞춰 정책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인 출신인 그를 두고 방통위의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아 업무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 내정자도 이러한 시선을 의식한 듯 "방송이나 통신 분야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특허법원에 근무하며 지적재산권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고, 법원에서도 관련사건을 많이 처리해 왔다"며 '방송통신 전문가와 법률가 등으로 구성된 각 위원들과 서로 보완하며 이끌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오랜시간 법을 다루며 훈련해 온 법관의 영역이 오히려 보탬이 되지 않을까 여겨진다"며 "기존에 이 분야에 종사하지 않았던 게 오히려 방통위의 독립성과 공정성 확보에 보탬이 될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내정자는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했다. 2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1986년 판사로 임용됐다. 이후 특허법원과 서울중앙지법의 수석부장판사, 춘천지방법원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최 내정자는 지적재산권 분야의 전문가로 꼽힌다. 지적재산권 관련 재판을 주로 맡았으며 50여 편의 지적재산권 관련 논문 등을 저술했다. 지적재산권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 정보법학회 회장을 5년간 역임해 정보통신분야에 대한 기초지식을 갖고 있다. 이 학회는 과거 정보통신부 유관 단체로 정보화 법제도 개혁에 대한 학술 활동을 주로 했다.
최 내정자가 청문회를 거쳐 방통위원장으로 임명되면 최초의 법조인 출신 방통위원장이 된다. 그동안 주로 언론인 출신의 대통령 최측근이 임명됐던 관행을 크게 벗어났다. 최시중 전 위원장은 언론인 출신이며 이계철 전 위원장은 정보통신부 차관 등을 거친 통신 관료 출신이었다. 임기 만료를 앞둔 이경재 현 위원장도 언론인 출신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통위원장에 법조계 인사를 내정한 데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방송 통신 관련 분야에서 경험보다는 규제와 보호 등 '법과 원칙'을 우선했다는 평가도 있다. 정치적 논리 등에 휘둘리지 말고 방통위를 끌어가야 한다는 뜻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평소 법과 원칙을 강조했고 창조경제의 핵심으로 IT와 방송의 융합을 꼽아왔다.
특히 방송통신사업자의 인허가, 공정거래 질서 확립, 과징금 부과 등 방통위의 주요 업무를 고려해 법률전문가의 전문성과 합리적 일처리를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KBS 수신료 인상, 미디어랩 지정 등 정치적 논란이 많을 것으로 예측되는 현안들이 쌓여있는 만큼 비정치인 출신으로서 공정한 판단을 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발탁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가 앞으로 공정거래위원회처럼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민 대변인이 직접 언급한 '이용자 보호'와 관련해 방통위가 앞으로 업체의 불법행위 규제나 담합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 구제에 한층 더 힘을 쓸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 내정자가 낙하산 논란을 피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시중 전 위원장과 이경재 현 위원장은 임명 때부터 방통위원장 자리에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를 앉혀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박 대통령도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다시 낙하산 논란이 나올 경우 크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방통위는 방송 등과 관련해 예민한 자리다.
따라서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 내정자가 김용철 전 대법원장의 사위로 김 전 대법원장이 김기춘 비서실장과 가까운 사이인 점을 들어 의심의 눈길로 보기도 한다. 국회 청문회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청문회에서 현직 판사를 행정부 요직으로 옮긴 것도 삼권분립 원칙을 깬 것이라는 논란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경재 현 방통위원장은 사실상 경질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 위원장은 지난 3월 취임해 방통위원장을 지낸지 1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방통위가 이동통신사들의 보조금 경쟁과 단말기 유통 구조를 바로잡지 못한 점이 박 대통령으로 하여금 낮은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는 분석이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렸다. 최성준 내정자에 대해 새누리당은 "전문성을 겸비했다"며 기대를 나타냈고, 민주당은 "어리둥절한 인사"라며 비판했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최 내정자는 평생을 공정한 법의 잣대를 적용해 온 경험을 토대로 방송통신정책에 있어서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수행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정애 대변인은 논평에서 "축구감독이 필요한데 아이스하키 감독을 배치한 것처럼 어리둥절한 인사"라며 "방송과 통신에 대한 어떠한 전문성도, 경력도 찾아볼 수 없어 방송 공공성 문제 등 산적한 현안을 조율하고 해결해 나갈 적임자인지 회의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