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죽마고우' 천신일과 '방통대군' 최시중.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세를 누리다 비리에 연루돼 수감되기도 했는데 이 전 대통령은 임기 만료를 앞두고 두 사람을 사면복권해 '역시'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말년이 편안하지 않다. 이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검찰 수사에 두 사람도 비켜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영화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 2009년 대감찰청 수사를 받고 나오는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왼쪽)과 2012년 방송통신위원회 이임식에서 눈물을 흘리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
5일 재계에 따르면 천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의 50년지기 친구로서 명절 때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라고 알려졌다.
천 회장은 이 전 대통령과 고려대 61학번 동기다. 60년대 한일회담에 반발했던 대학생들 모임인 6·3동지회에서 인연을 쌓았다. 이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회장으로 근무했을 때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기도 했다.
17대 대선 시기에 고대 교우회장을 맡으면서 대학 동문들의 지지를 이끌었고 특별당비 30억 원을 이 전 대통령에게 건넸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레슬링협회장이던 2008년 협회 공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횡령 혐의를 받았고 ‘박연차 로비’ 관련 검찰의 수사망에 오르기도 했다.
대한레슬링협회 부회장이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함께 협회 일을 봤다. 박진 전 한나라당 의원은 2008년 박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을 때 천 회장의 소개로 박 회장을 알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천 회장은 선박 기자재 납품업체인 임천공업 대표로부터 계열사 워크아웃이 빨리 끝나도록 도와달라는 청탁의 대가로 뇌물 26억여 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고 2011년 6월경 징역 2년6개월과 추징금 32억1060만 원형을 받았다.
그는 국세청의 세무조사 무마, 은행 대출 등의 청탁을 대신 해준다는 명목으로 21억 원 상당의 상품권, 현금, 철근, 철골 등을 받은 혐의도 있었다. 이 가운데 월급 4억 원과 상품권 2억 원을 수수한 사실이 유죄로 인정됐다.
형량의 47%를 보낸 뒤 13개월 가량을 남겨두고 2013년에 특별사면됐다.
천 회장은 1943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고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경남대 북한대학원 북한학 석사, 와세다대 법학 명예박사 과정을 마쳤다. 1982년 세중여행을 창업했고 삼성그룹의 물량을 확보하면서 상용여행분야에서 1위 자리를 지켜왔다.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은 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이자 ‘방통대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포항 인맥을 말하는 ‘영포라인’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하던 시기부터 서울시장과 대선후보 시기까지 이 전 대통령에게 정치적 조언을 했고 2007년 대선 때 선거캠프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였던 6인회의 멤버이기도 했다.
최 전 위원장은 2008년 3월 초대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됐고 야당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종편 채널 허가를 내주며 ‘방통대군’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2011년 방통위원장 연임에 성공했지만 2012년 1월에 측근이자 ‘양아들’이라 불렸던 정책보좌관의 수억 원대 비리 의혹이 터지자 중도하차했다.
2006년부터 2008년 사이 서울 양재동 복합물류단지 개발 시행사인 파이시티 측으로부터 인허가 청탁과 함께 8억 원을 받은 혐의로 2012년 구속기소됐고 징역 2년6개월에 추징금 6억 원 형을 받았다.
2심 선고 뒤 상고를 포기해 사면복권 대상에 올랐고 수감 9개월 만에 천 회장과 함께 특별사면됐다. 사면된 날 저녁에 바로 ‘난 무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 전 위원장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1963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고 동아일보에서 30년 동안 근무했다. 2007년까지 여론조사회사인 한국갤럽의 회장도 맡았다. [비즈니스포스트 임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