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피씨엘 대표는 ‘과학보다 사업이 과학적’이라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다.
매출은 속일 수 없는 정확한 수치라는 것이다.
피씨엘은 면역진단 기술로 아직 10억 원이 채 안 되는 연매출을 내고 있는 적자기업인데 올해부터는 조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김 대표는 다중혈액진단키트인 Hi시리즈로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의 혈액진단키트 입찰을 노리고 있다.
이 수주를 따내면 피씨엘은 5년 동안 677억 원가량의 매출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입찰공고에 들어갔고 3월12일이면 입찰을 시작한다.
피씨엘은 입찰 경쟁에서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혈액관리본부는 헌혈된 혈액을 수혈하기 전 HIV 등 고위험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대량검사를 위해 자동화 분석장비가 필요한 만큼 입찰에 참가하려면 진단시약뿐 아니라 전용 장비까지 생산해야 하는데 현재 이 조건을 갖춘 곳은 피씨엘과 지멘스, 애보트 등 3곳뿐이다.
주목되는 대목은 대한적십자사가 지난해 입찰에서 의도적으로 국내기업을 배제하고 다국적기업인 지멘스와 애보트에 부당한 혜택을 줬다는 의혹으로 감사원으로부터 감사를 받았다는 점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또 지멘스나 애보트에 수주를 주기에는 대한적십자사도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피씨엘이 결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혈액관리본부와 거래를 따내면 Hi시리즈로 터키나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등 대형시장에 도전하겠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피씨엘은 면역진단 방식을 사용해 각종 질병을 검사할 수 있는 키트를 만든다
질병을 감지할 수 있는 진단방법은 크게 체내진단과 체외진단으로 분류되는데 체외진단은 다시 분자진단과 면역진단 등으로 나뉜다.
피씨엘은 이 가운데서도 혈액선별검사용 다중면역진단 제품을 제조하고 있다. 혈액 속에 항체가 만들어져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해 질병에 걸렸는지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세계에서는 면역진단이 분자진단시장 규모보다 3배 정도 크지만 국내 체외진단 기기회사들 대다수는 분자진단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면역진단 기술은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피씨엘의 자체 원천플랫폼 기술인 ‘SG Cap’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여러 질병을 동시에 진단할 수 있다 점에서 기존 기술과 다르다.
면역진단은 '바이오마커'라 불리는 단백질을 감지해 질병을 진단하는데 면역진단 키트에 이 단백질을 고정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단백질을 고정하기 위해 기존에는 엘라이제(ELISA)라는 플랫폼이 쓰이고 있는데 하나의 키트에 하나의 질병만 검사가 가능하다. 그러나 SG Cap 플랫폼은 최대 64개의 질병을 동시에 진단할 수 있다.
실제로 SG Cap 플랫폼을 활용한 피씨엘 Hi시리즈의 HI3-1 제품은 세계 최초로 에이즈와 C형간염을 동시에 찾아낼 수 있다.
다중암진단키트인 Ci-5도 간암, 대장암, 췌장암, 전립선암, 난소암 등 5개 암을 1시간 이내에 동시 진단이 가능하다. 이 역시 피씨엘이 세계 최초다.
현재 Ci-5는 유럽에서 임상을 마치고 유럽통합(CE)인증과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김 대표의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올해 상반기 유럽시장에 출시한다. 유방암, 위암, 폐암과 관련한 추가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진홍국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피씨엘은 독감진단키트(Ai)도 하반기부터 국내 중소형 병원에 납품한다”며 “제품들이 하나둘씩 성과를 나타내면서 2018년은 성장이 본격화하는 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세계 최대의 혈액선별시장인 미국 진출에도 본격 시동을 걸었다. 미국 체외진단기기시장 규모는 2020년이면 260억 달러(28조 원가량)까지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김 대표는 미국 영업망 강화를 위해 최근 글로벌 진단회사인 노바티스와 그리폴즈, 미국 적십자사 출신의 임원 2명을 영입하기도 했다.
피씨엘 관계자는 "이번에 영입한 임원들은 미국 적십자뿐 아니라 민간 혈액원과도 영업 네트워크가 있는 전문가들"이라며 "이들을 앞세워 미국 진출에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미국 코넬대 바이오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LG생명공학 기술연구원에 자리를 잡았다. 피씨엘의 원천기술들에 관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연구에 몰두하기 위해 2003년 동국대 의생명공학과 교수로 옮겨 면역진단 기술에 관한 논문을 썼다. 논문은 진단분야 국제학술지인 '클리니컬케미스트리'에 실렸고 김 대표는 이 연구기술을 들고 2008년 대학교 제자들과 함께 피씨엘을 세웠다.
피씨엘에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이에 따른 양산기술을 새로 개발하기까지는 8년이 결렸다.
김 대표는 LG생명공학 연구원 시절 진단에 쓰이는 DNA칩을 개발하면서 면역진단분야에는 ‘이노베이션(혁신)’이 없다고 느꼈다고 한다. 세계 30조 원 규모의 면역진단시장에서 독보적으로 쓰이는 엘라이제(Elise) 기술이 개발된 것은 무려 47년 전인 1971년이다.
지난해 피씨엘의 상장 기념식에서도 그는 "정체된 면역시장에서 혁신을 이루고자 피씨엘을 창업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2019년 매출목표를 280억 원 이상으로 잡고 있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3억6천만 원이다. 올해는 그의 혁신이 어떤 수치로 나타날지 주목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