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18-01-26 15:2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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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 매각을 위한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연기됐다.
본입찰에 단독으로 뛰어든 호반건설의 제안을 받아들일지를 놓고 KDB산업은행 내부에서 교통정리가 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산업은행이 26일 대우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미루면서 그 배경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매각자문사로부터 호반건설이 제출한 최종입찰제안서의 평가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지만 대우건설 매각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일어나는 점을 감안할 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인수 희망금액으로 제시한 가격이 너무 적다는 이른바 ‘헐값매각’ 논란을 겪고 있어 산업은행이 고심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호반건설은 산업은행이 사모투자펀드 KDB밸류제6호를 통해 보유한 지분 50.75% 가운데 40%를 우선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주당 7700원가량에 사겠다고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총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조3천억 원이다.
산업은행이 2~3년 뒤에 나머지 10% 지분을 합의된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인 풋옵션까지 제안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산업은행이 매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금액은 1조6천억 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해 말 대우건설 매각공고를 낼 때 산업은행이 최소 매각가격으로 잡았던 2조 원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이며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인수와 유상증자에 쓴 3조2천억 원과 비교할 때 반토막 수준에 대우건설을 처분해야 하는 것이다.
산업은행이 지난해 정관을 변경해 대우건설을 시장가격에 매각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긴 했지만 제 값을 받지 못하고 졸속매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생겨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산업은행 내부에서 적정 매각가격에 합의하지 못해 일정을 연기하지 않았겠냐는 의견이 투자금융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지분의 분할매각을 놓고 특혜의혹이 일어나는 점도 일정 연기를 결정하는 데 작용했을 수도 있다.
산업은행은 애초 대우건설 지분 전체를 한꺼번에 매각하겠다고 공고를 냈다. 하지만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실사 막바지에 산업은행에 지분을 나눠서 인수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자 산업은행은 매각추진위원회를 연 뒤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인수후보기업의 제안에 따라 매각방침을 바꾸는 것은 인수합병시장에서 드문 일로 여겨진다.
산업은행이 보인 행보가 결과적으로 호반건설에 우호적 환경을 조성해준 것인데 이를 놓고 호남기업 밀어주기 아니냐는 의혹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정치권에서도 대우건설 매각에 강한 의혹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지금이 매각 적기인지 여러 가지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음에도 국내 굴지의 대우건설을 서둘러 시장에 내놓고 졸속으로 헐값에 팔아넘기려는 의혹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현재 매각상황을 보면 문재인 정권과 호반건설의 커넥션 의혹을 더욱 짙게 하고 있다”며 “3조 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된 대우건설을 특정인에게 헐값으로 넘기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산업은행은 석연찮은 의혹과 논란을 자초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산업은행은 정책금융기관이라는 특성상 정치권 반응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데 야당의 시선을 의식해 대우건설 매각속도를 조절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런 의혹과 관련해 “대우건설 매각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며 “몸집이 워낙 커 제안서를 신중히 검토하다 보니 일정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