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이 차세대 TV인 OLED에 집중하겠다고 나섰다. TV 부문에서 삼성 따라가기가 아니라 앞서가기로 역전을 꾀하겠다는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승부사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발언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지만 OLED 시장이 더디게 성장하고 있어 이 승부수가 통할지 관심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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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 |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은 7일 경기도 파주 LG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올해 OLED에 집중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한 사장은 “경쟁사들은 아직 OLED 투자에 소극적이지만 우리는 계획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한 사장은 한편에서 아직 OLED는 시기상조라는 우려가 나오지만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시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이미 지난해부터 중국의 주요 TV업체들에 OLED패널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하이센스와 TCL, 창홍 등 중국 TV 제조사들은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2014에서 LG디스플레이 패널을 장착한 제품을 선보였다. 한 사장은 “올 하반기 중국 국경절 시즌이 되면 본격 양산이 시작될 것”이라며 “내년 말이면 의미있는 실적개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형 설비투자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2월부터 약 2조 원을 투자한 생산라인은 올해 하반기 본격적으로 가동이 시작된다. LG디스플레이는 이 라인이 가동되면 월 2만6000장의 8세대 (2,200x2,500mm) OLED 패널 추가 생산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의 생산라인에서 월 8천 장 정도의 생산이 이뤄지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약 4배 이상 생산 규모를 늘릴 수 있게 된다. 한 사장은 생산물량이 늘게 되면 OLED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가격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사장의 각오는 상당히 비장하다. 그는 주총장에서 “OLED 시장 선도를 통해 실적이 개선되면 적절한 배당을 할 예정이니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3년 연속 무배당을 한 데 대한 사과다. 일단 돈을 버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한 사장은 OLED에 대한 공격적 투자를 해야 삼성전자에 내준 세계 TV시장 점유율 1위 타이틀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삼성전자의 행보를 그대로 따라가는 기존의 전략으로는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스마트폰 사업에 뒤늦게 뛰어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무선 사업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디스플레이시장에서 LG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도 OLED에 집중하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TV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독주를 이어가고 있고 중국과 일본 업체들의 추격은 거세다. 특히 LG로선 무서운 속도로 기술격차를 따라잡고 있는 중국 업체들과 엔저를 등에 업고 시장 확대에 나선 일본 업체들이 부담스럽다. 김성인 키움증권 상무는 “중국과 일본의 견제 및 성장으로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의 미래가 예상보다 어둡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LG디스플레이는 27조330억 원의 매출과 1조1,633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매출은 줄었지만 영업이익이 27.5% 증가한 것이 고무적이다. 하지만 증권가에선 LG디스플레이의 올해 실적이 중국과 일본 업체들의 성장세로 인해 약 30% 가량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두 나라 업체들과 단가경쟁에서 이기기 어렵고 TV 수요도 예상보다 부족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그 근거다.
이런 상황에서 한 사장은 다른 업체들이 OLED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과감한 투자를 통해 디스플레이 위기를 탈출해야 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분석된다. 최대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일러야 올 하반기에나 본격적으로 시설투자에 나설 수 있다. 중국 업체들은 현재OLED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지만 아직 3년 정도의 기술격차가 있다.
한 사장의 이런 결정에는 그룹의 전폭적 지원이 자리잡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지난 4일 임원 세미나에서 “우리가 승부를 걸기로 정한 분야는 직접 사업책임자와 깊이 논의하며 제대로 추진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LG전자는 일찍부터 OLED TV를 신성장사업으로 지정했다. 하현회 LG전자 HE(홈엔터테인먼트)부문 사장은 CES2014에서 신형 OLED TV를 선보이며 “OLED TV를 기반으로 TV사업의 재도약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그만큼 OLED에 거는 그룹의 기대가 크다.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아직은 대량생산을 위해 기술개발이 더 필요하다. 현재 OLED는 10개를 생산하면 3개 정도는 불량이다. 여전히 LCD에 비해 낮다. 불량률을 낮추기 위한 기술 개발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가격 문제와 더딘 시장 성장세로 연결된다. 지난해 12월 출시한 LG전자의 55인치 OLED TV 가격은 약 1190만원이었다. LCD 패널을 탑재한 제품보다 무려 3배 이상 비싸다. LG전자는 시장 규모를 키우기 위해 해당 모델의 가격을 600만 원 수준으로 인하했다. 이렇게 되면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다.
한 사장은 내심 삼성전자가 OLED에 빨리 뛰어들어 시장규모를 키우는 데 일조하기를 기대한다. 홀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전자가 참여해야 OLED 시장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아직 본격 참여를 주저하고 있다. 윤부근 삼성전자 CE(소비자가전)부문 사장은 CES2014에서 “OLED TV의 상용화는 3~5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