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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곁에는 항상 김용환 부회장이 있다. |
전국경제인연합회 신축회관 준공식이 지난해 12월17일 열렸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감기 때문에 함께 하지 못했다.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이 정 회장을 대신했다.
준공식은 정 회장에게 특별히 감회가 깊은 행사였다. 1977년 아버지 정주영 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맡을 당시 번듯한 건물 하나 없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전경련 회관은 그래서 정주영 회장이 사재를 털다시피 해 지은 건물이다.
정 회장은 그 건물을 다시 지은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으니 아쉬움이 무척 컸을 것이다. 더욱이 이날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까지 참석했다. 정 회장은 김 부회장으로 하여금 그 감회와 아쉬움을 대신하도록 한 것이다.
김용환 부회장의 위상을 어김없이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몽구 회장이 그만큼 김 부회장을 아낀다는 뜻이다. 김 부회장은 현대차 안팎에서 그룹의 2인자로 꼽힌다. 1956년에 태어났으니 올해 58살이다. 74살인 정 회장이 여전히 진두지휘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에서 ‘젊은’ 부회장이다.
최연소의 나이로 부회장에 오른 뒤 만 4년이 넘도록 2인자의 자리는 한결같다. 김 부회장은 정 회장이 있는 곳에 항상 함께 한다.
지난 4일 정 회장이 5개월 만에 유럽을 방문해 현지공장을 돌며 품질경영 점검에 나선 출장에도 김 부회장은 변함없이 동행했다. 지난달 27일 체코의 산업통상부 장관과 노동사회부 장관이 현대차 본사를 방문하는 자리에도 정 회장과 함께 김 부회장이 이들을 맞이했다.
정 회장은 2인자를 허용하지 않는 ‘제왕’이다. 여러 명의 측근 부회장들을 두고 힘을 나눠 준다. 이들의 적절한 견제를 통해 힘을 정 회장 한곳으로 모아 그룹을 통치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정기인사에서 부회장 인사를 거의 하지 않는다. 힘이 한쪽으로 과하게 쏠린다 싶으면 내친다. 현대차그룹 정기인사에서 부회장 승진인사는 2009년 연말 인사에서 김용환 당시 현대차 사장과 정진수 현대모비스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런 현대차그룹에서 정 부회장이 2인자로서 한결같이 건재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물론 능력이다. 김 부회장은 시쳇말로 현대차그룹에서 학연도 인맥도 거의 없이 출발했다. 물론 오너 가문과 핏줄도 연결되지 않는다.
김 부회장은 경기 평택 출신으로 경기 구리 인창고와 동국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83년 현대차에 입사했다. 현대차그룹의 실세와 연결되는 ‘줄’로 꼽히는 ‘현대정공(지금의 현대모비스)’ 출신도 아니다. 현대차에서 고단한 해외영업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김 부회장은 2001년 현대차 유럽사무소장을 거쳐 2003년 기아차 해외영업본부 부사장을 거쳤다. 김 부회장이 기아차 해외영업본부 부사장으로 보여준 실적은 놀랍다. 2004년 전년 대비 해외 판매량을 41.2% 늘렸고 2005년 10%, 2006년 3.7%를 성장시켰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기아차는 현지법인을 대거 확충해 공격적 영업 활동에 나섰다”며 “국내 생산물량이 해외법인에 바로바로 떨어지면서 주재원들의 업무 강도가 매우 높았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의 전환점은 2007년 12월 현대차 해외영업본부장 사장으로 중용된 시점이다. 당시 정 회장은 해외판매에 그룹의 역량을 집중했지만, 판매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정 회장은 기아차 해외영업본부 부사장으로 실력을 발휘한 김 부회장에게 현대차 해외시장 공략을 맡겼다. 정 부회장은 정 회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현대차 해외시장 확대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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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 |
김 부회장은 2008년 현대차 기획조정실 사장이 됐다. 전략과 안살림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기획 감사 정책 인사 등의 업무를 맡았고 이를 깔끔하게 처리했다.
김 부회장을 두고 실세 중에 실세, 정 회장의 최측근이라는 말은 그때부터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그리고 2009년 연말 정기인사에서 일약 부회장이 됐다. 5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다. 모두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김 부회장은 2010년 현대건설 인수전을 진두지휘하면서 왜 그가 그토록 김 회장의 총애를 맡는지 그 해답을 스스로 내놓았다.
현대그룹으로 넘어간 현대건설을 되찾아오는 것은 정 회장의 숙원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야 계동사옥도 되찾을 수 있었다. 현대건설 인수는 한마디로 적통을 다시 한번 과시하는 일이다.
김 부회장은 이 일을 맡아 매일 회의를 열어 인수전의 방향을 제시했다. 당시 그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김 부회장은 상황 전반을 장악하고 명확히 방향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건설을 현대차그룹 소속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2011년 4월1일 정 회장은 마침내 계동 사옥에 모습을 나타낸다. 1999년 왕자의 난으로 현대차를 이끌고 2001년 양재동 사옥으로 옮긴 지 11년 만의 귀환이었다.
정 회장은 김 부회장의 마중을 받고 계동사옥에 도착해 “11년 만이다. 감회가 새롭다”고 짧게 말한 뒤 아버지 정주영 회장이 썼던 집무실에 들어갔다. 2012년 3월 현대건설 주총에서 김 부회장은 정 회장과 함께 사내 이사로 선임됐다.
이런 능력이 현대차그룹에서 김 부회장이 2인자로서 굳건히 자리하도록 하는 비결의 전부는 아니다. 현대차그룹에 매우 성실하다거나 혹은 탁월한 기획력이 있다거나 매사에 철저하다거나 하는 능력들을 지닌 임원들은 차고 넘친다.
김 부회장에게는 또 다른 것이 있다. 2010년 1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신년회를 마치고 정 회장은 밖으로 나와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이 많이온 날이었다.
정 회장의 차가 도착하자 정 회장 곁에서 꼼짝없이 서있던 한 사람이 튀어나와 차문을 열어줬다. 정 회장이 차에 오르자 반대편으로 가 문을 열고 곁에 앉았다. 바로 김 부회장이었다.
김 부회장은 ‘실무형 2인자’다. 그림자처럼 정 회장을 따라 다닌다. 그리고 항상 정 회장을 편안하게 해준다. 2인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참모형, 후견인형, 역할분담형 등등.
하지만 김 부회장은 실무형 참모 같은 역할로 2인자의 자리에 있다. 정 회장이 항상 김 부회장을 찾는 것도 바로 이런 ‘능력’ 때문이다. 쉽게 말해 “오너의 생각과 시각을 가장 명확하게 파악하고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인 것이다.
특히 김 부회장은 입이 무겁다. 기획총괄 부회장으로서 그룹의 모든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데도 그는 지금껏 단 한건의 사고를 낸 일이 없다고 한다.
현대차의 한 임원은 “정 회장이 출근부터 귀가할 때 함께 다닐 수 있기 때문에 힘이 있는 것인데 정 회장 앞에서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할 줄 알기 때문에 더욱 그 힘이 강해진다”고 말했다.
2011년 4월 정 회장은 아들 정의선 부회장과 함께 미국 센트럴코넷티컷 대학 존 밀러 총장과 산책을 했다. 그 자리에 당연히 김 부회장도 함께 했다.
자리를 마치고 정 회장은 차에 오르다 “김용환 부회장은 어디 있느냐. 같이 타고 가자”고 했다. 정의선 부회장은 김 부회장을 불러 “모시고 가시라”고 했다고 한다. 그만큼 정 회장에서 김 부회장은 편한 존재다.
김 부회장은 신중하고 겸손하다는 평가를 현대차그룹 내부에서 받는다. 회장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는 2인자가 이런 평가를 받기는 쉽지 않다.
그룹 내부에서 적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속승진을 했지만 단계를 밟아왔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이 모나지 않다는 뜻이다. 모 나지 않으면 정 맞을 일도 없다.
하지만 김 부회장도 역시 2인자다. 현대차그룹은 권력 교체기에 있다. 정몽구 회장에서 정의선 부회장으로 경영권이 넘어가는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 과연 정의선 부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은 뒤에도 김 부회장이 2인자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지난 2월 최한영 현대차 상용담당 부회장이 전격적으로 물러났다. 최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의 가신그룹 가운데 한명이다. 현대그룹 왕자의 난 때 정 회장 곁을 지켰고 2004년 그룹 전략조정실 사장을 지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정기인사를 한 지 한달이 약간 넘은 시점에서 퇴진했다. 후진을 위한 용퇴라고 그 이유를 밝혔지만, 사실상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앞두고 가신 정리작업이라는 분석이 훨씬 설득력있게 나왔다.
김 부회장은 정의선 부회장과도 의사소통이 원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 인재 스카우트 작업에서 정 부회장과 손을 잘 맞추고 있다고 한다. 현대기아차의 디자인에 큰 변화를 만들어 내면서 정 부회장의 '디자인 경영'에 토대를 만들어줬던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 총괄사장의 영입도 김 부회장의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부회장의 글로벌 영업 능력과 그룹 전반을 꿰뚫고 있는 기획능력은 정 부회장으로서도 쉽게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2인자는 2인자일 뿐이다. 권력이 승계되고 나면 잠시 머물다 사라질 수도 있고 대를 이어 2인자 자리를 유지할 수도 있다. 그 2인자의 운명 앞에 김 부회장도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