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시바의 반도체사업 매각을 반대하며 신경전을 벌이던 웨스턴디지털이 마침내 협상을 이끌어내며 오랜 분쟁을 마무리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 반도체의 지분을 확보해 영향력을 강화하는 조건으로 협상제안을 내놓은 만큼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에 나선 SK하이닉스의 입지는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다.
일본 지지통신은 4일 “웨스턴디지털이 향후 도시바 반도체의 지분을 얻을 수 있는 조건으로 매각중단 요청을 철회하고 법적 분쟁을 멈추겠다는 제안을 도시바에 내놓았다”고 보도했다.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가 동의 없이 반도체사업을 매각할 경우 합작법인 설립계약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미국법원에 매각 중단신청과 소송을 제기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다.
도시바는 웨스턴디지털과 법적 분쟁이 길어질수록 반도체사업 매각이 어려워지는 만큼 꾸준히 협상을 추진해왔는데 마침내 입장차를 좁힐 수 있게 된 셈이다.
블룸버그는 관계자를 인용해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은 완전한 협상안을 이끌어내기 직전 단계에 있다”며 “양쪽 모두 협력이 절실했던 만큼 마침내 분쟁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계약을 맺은 베인캐피털과 애플, SK하이닉스 등의 컨소시엄은 웨스턴디지털의 협상안을 달갑지 않게 여길 가능성이 높다.
웨스턴디지털이 지분을 확보하며 사업운영에 더 깊숙이 개입할 경우 컨소시엄이 도시바 반도체를 인수한 뒤 얻을 수 있는 실질적 효과가 더 불확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통신은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 반도체사업 경영에 갈수록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베인캐피털 컨소시엄 내부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인캐피털 컨소시엄도 도시바 반도체 인수에 웨스턴디지털의 반대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만큼 가능하면 합의점을 찾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SK하이닉스가 이런 협상과정에서 더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웨스턴디지털이 SK하이닉스의 참여를 베인캐피털의 인수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로 들어왔던 만큼 향후 도시바 반도체에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더 강력한 견제에 나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도시바가 SK하이닉스와 반도체기술 및 생산협력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도 밝힌 만큼 SK하이닉스가 대규모 투자로 얻을 이득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의 분쟁이 장기화되며 사업에 차질을 빚을 경우 낸드플래시 후발주자인 SK하이닉스가 단기간에 급성장을 노릴 기회를 만들 수 있었지만 이런 가능성도 낮아진 셈이다.
지지통신은 “웨스턴디지털과 도시바는 사실상 법적 분쟁 종결에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며 “베인캐피털 측과 웨스턴디지털의 협상도 마무리단계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