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
현대자동차가 가맹 카드사에 복합할부금융 상품에 대한 수수료율 인하를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당국은 현대차가 KB국민카드와 복합할부 수수료율 협상 과정에서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데 대한 법적조치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즉각 “법적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현대차는 복합할부 수수료율 인하를 요구하면서 그 명분으로 산업계와 소비자의 이익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실상 자동차 할부금융시장에서 현대캐피탈의 점유율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번 수수료 협상에서 현대차와 KB국민카드에 소비자 피해가 없도록 합의를 볼 것을 강하게 주문했다. 복합할부가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는 상품인지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 금융당국, ‘우월적 지위 악용’ 현대차 고위층 겨냥
12일 금융감독원 관계자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현대차가 KB국민카드와 벌인 복합할부 수수료율 협상에서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데 대해 검찰고발 및 공정거래위원회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
현행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르면 대형 가맹점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낮은 수수료율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돼있다.
또 공정거래법에서도 거래상의 지위를 이용해 계속 거래관계에 있는 사업자와 거래를 중단하는 행위를 불공정 행위로 규정하고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대차가 지난 10일 KB국민카드와 협상에서 복합할부 상품 취급을 중단하라고 압박했다”며 “이는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행위”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지난달 말 KB국민카드의 가맹계약 종료를 앞두고 복합할부 수수료율 1.0~1.1%까지 대폭 낮춰달라고 요구했다. 현대차는 애초 복합할부 결제대금의 1.85%를 가맹 카드사에 수수료로 내왔다.
반면 KB국민카드는 복합할부 수수료율을 1.75% 이하로 낮추면 적격비용 이하로 낮아져 여전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협상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두 회사가 팽팽히 맞서면서 협상 마감시한은 이달 10일로 한 차례 미뤄졌다가 오는 17일로 다시 연기됐다.
금융당국은 직접 고발과 제소에 나설 경우 그 대상에 현대차 고위층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 현대차가 물러서지 않는 진짜 이유
현대차는 이날 즉각 입장자료를 내고 “법적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현대차는 “여전법과 공정거래법 관련 조항에 대해서 내부는 물론 외부 법률자문사를 통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졌다”며 “합법적 이유와 절차로 KB국민카드와 협상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
|
|
▲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 |
KB국민카드와 가맹 계약기간이 만료돼 갱신하지 않는 데 대해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현대차는 설명했다.
KB국민카드가 계약연장을 요청해 오면서 계약이 종료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했고 여신전문금융업법 등에서 명시된 적격비용에 따라 수수료율 조정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다만 복합할부의 경우 일반 카드거래와 달리 적격비용의 주요 요소인 자금조달비용, 대손비용 등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전보다 낮은 수수료율을 요구했다고 현대차는 강조했다.
현대차는 복합할부가 자동차업계는 물론 산업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고려해 수수료율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복합할부를 그대로 두면 할부, 현금, 어음 등으로 지불하는 아파트 중도금, 선박, 대형상용차, 기계, 의료기기까지 복합할부 유사상품이 일반화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산업계는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카드사에 추가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고 결국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차가 낮은 수수료율을 요구하는 이유가 산업계나 소비자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대캐피탈의 시장 지배적 입지가 약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복합할부가 도입되면서 자동차 할부금융시장에서 현대캐피탈의 점유율은 점차 줄고 있다. 현대캐피탈의 현대기아차 할부금융 점유율은 2011년 86.6%에서 지난해 74.7%로 떨어졌다.
현대차가 카드사에 복합할부 수수료율 인하를 압박하는 것은 복합할부 수수료 부담이 점차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복합할부 수수료는 2010년 164억 원에서 지난해 872억 원으로 4배 이상 늘었다. 이 기간에 현대차가 부담한 수수료는 모두 1872억 원에 이른다.
◆ 소비자에게 복합할부는 득일까 실일까
복합할부가 일단은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는 상품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복합할부는 소비자가 자동차를 구입할 때 캐피탈사와 할부약정을 맺고 캐피탈사가 권유하는 카드로 일시불 결제하면 캐피탈사가 해당금액을 카드사에 완납한 뒤 소비자로부터 매월 할부금을 받는 방식이다.
|
|
|
▲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
이때 카드사는 1.9% 가량의 수수료를 가맹점으로부터 받아 0.33%포인트 정도만 남기고 1.37%포인트를 캐피탈사에 주고, 나머지 0.2%포인트를 고객에게 포인트 또는 캐시백 형태로 되돌려준다. 캐피탈사는 자신의 몫 가운데 0.37%포인트를 고객에게 부과하는 할부이자를 인하하는 데 활용한다.
그 결과 복합할부를 이용해 신차를 구매하는 고객은 연 1%포인트 이상의 금리할인 혜택을 볼 수 있다.
복합할부는 기존 할부금융에서 카드사가 끼어든 형태이기 때문에 완성차기업 입장에서 불필요한 카드 수수료 비용이 발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현대차를 비롯한 자동차업계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코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는 상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완성차기업들의 카드 수수료 비용이 증가한 탓에 차종별 할인, 무이자 할부, 할부금리 할인 등의 혜택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복합할부를 이용하지 않는 고객에 대한 역차별 논란도 일 수 있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이에 앞서 “복합할부를 두고 협상 당사자들에게 소비자 피해가 없도록 하라는 의지를 강하게 전했다”고 밝혔다.
현대차와 KB국민카드가 오는 17일 수수료율 협상에 수수료율에 대한 합의를 보지 못할 경우 당장 그 다음날부터 KB국민카드로 현대차를 구매할 수 없게 된다. 또 KB국민카드는 물론 다른 카드사 가맹계약 종료로 이어질 수 있다.
신한카드는 내년 2월, 삼성카드와 롯데카드는 내년 3월 현대차와 가맹 계약기간이 끝난다. [비즈니스포스트 임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