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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왼쪽)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제일모직이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며 상장작업에 들어갔다.
제일모직은 상장에 필요한 지분을 신주발행과 구주매출을 통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구주매출에 삼성SDS 때처럼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참여한다.
재계는 제일모직 상장으로 삼성그룹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한편 순환출자 해소라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 공모규모 1조5천억 원, 시총 7조 원대 전망
제일모직은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위한 증권신고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다고 31일 밝혔다.
제일모직이 공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희망 공모가격은 4만5천~5만3천 원으로 확정됐다. 제일모직은 상장 주관사인 KDB대우증권 등과 협의해 결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공모주식 수는 2874만9950 주다. 제일모직은 공모주식 수와 희망공모가를 고려하면 공모규모가 1조2937억4775만~1조5237억4735만 원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제일모직은 공모 주식 가운데 1천만 주를 새로운 주식 발행으로 마련한다. 발행 될 신주 규모는 상장 뒤 전체 발행 주식수(1억3500만 주)의 7.4% 정도다. 업계는 기존주주 지분가치가 희석될 수 있기 때문에 신주발행을 10% 미만으로 제한했다고 분석한다.
나머지 1874만9950주는 기존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매각하는 구주매출 방식으로 조달한다. 삼성카드와 삼성SDI, KCC 등 제일모직 주요 주주들은 제일모직 구주매출에 참여한다고 30일 밝혔다. 이들이 처분할 지분은 총 15%다.
삼성카드는 보유하고 있는 제일모직 지분 5%(624만9950주) 전량을 내놓기로 했다. 삼성카드는 “재무구조 개선 및 투자재원 확보를 위해 주식을 처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삼성SDI는 보유 지분 8% 가운데 절반인 4%(500만 주)를 처분한다.
노상수 삼성SDI 재무팀장 삼무는 30일 열린 3분기 실적설명회에서 “앞으로 에너지부문과 전기차용 투자가 늘 것으로 보여 투자재원 확보가 필요하다”며 “또 평소 관계사 지분을 처분하는 게 쉽지 않은 만큼 이번 기회에 매각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제일모직 지분 17%를 보유한 KCC는 6%(750만 주)를 내놓는다. KCC는 “투자자금 일부를 회수하기 위한 것”이라며 “주식매각 차익을 어떻게 활용할지 논의중”이라고 설명했다.
공모가가 최상단인 5만3천 원으로 정해질 경우 제일모직의 시가총액은 최대 7조1550억 원 수준이 된다. 강원랜드에 이어 유가증권시장 39위에 해당하는 상장사가 탄생한다.
제일모직은 국내 및 해외 투자설명회(로드쇼)와 공모가격 확정 등의 절차를 거쳐 12월18일 상장된다.
◆ 삼성 계열사가 구주 매출에 참여한 까닭은
삼성카드와 삼성SDI가 제일모직 지분을 내놓으면서 내세운 명분은 재무구조 개선과 투자재원 마련이다.
하지만 금융업계 전문가들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삼성그룹이 벌이고 있는 순환출자 구조 정리작업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삼성카드가 제일모직 지분을 전량 처분하면서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제일모직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가 끊어졌다.
또 금융사인 삼성카드가 비금융사인 제일모직 지분을 보유하지 않게 됨에 따라 금산분리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게 됐다.
삼성SDI도 제일모직 지분 절반을 매각하면서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제일모직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다소 느슨해지게 됐다. 삼성SDI가 나머지 500만 주를 처분하면 삼성그룹이 보유한 순환출자 구조 중 큰 줄기 하나를 더 정리할 수 있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말부터 업무 연관성이 높은 계열사끼리 묶기 위한 지분정리 작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12월 삼성엔지니어링과 상호협업을 강화하기 위해 삼성SDI로부터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204만주를 매입했다.
올해 4월 삼성전기와 삼성정밀화학, 삼성SDS, 제일기획 등이 삼성생명 지분을 모두 매각하면서 삼성생명→삼성전자→비금융계열사→삼성생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가 끊겼다.
같은달 삼성전기와 삼성물산, 삼성중공업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카드 지분 전량을 취득했고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화재 지분 전량을 넘겨받았다. 삼성생명을 정점으로 하는 금융계열사의 수직계열화가 어느 정도 완성된 것이다.
◆ 헐값매각 논란은 없을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등 총수일가는 삼성SDS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제일모직 구주매출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5.1%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고 이부진, 이서현 사장은 각각 8.3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3.72%를 보유한 주요주주다. 계열사 가운데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가장 높다.
제일모직은 삼성그룹의 뼈대라 할 수 있는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제일모직으로 이어지는 핵심 순환출자 구조의 정점에 있다. 이 때문에 향후 삼성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삼성카드와 삼성SDI가 제일모직 지분을 팔면서 상장 뒤 제일모직 주가가 크게 오를 경우 막대한 상장차익을 누리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삼성카드와 삼성SDI가 재무구조 개선과 투자재원 마련이 시급하다고 설명했지만 주주들로서 아쉬울 수밖에 없다.
삼성전기는 곧 상장을 앞둔 삼성SDS 지분을 상장 전 모두 팔기로 결정하면서 헐값매각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재용 부회장 등 총수일가가 지분을 그대로 보유하는 상황에서 굳이 삼성전기만 지분을 팔아야 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민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