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 />“에스키모의 언어에는 눈을 가리키는 단어가 수십 개로 발달해 있듯이...”<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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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이누이트어(에스키모의 언어)에 눈을 표현하는 단어가 400개나 있기 때문에 에스키모가 훨씬 섬세하게 눈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p>
<figure class="image" style="float:right;margin-right:0px; margin-left:15px; margin-top:30px; "><img alt="언어의 사회학, 왜 한국어에만 '억울하다'가 있을까" height="200" class='lazyload' data-src="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1709/20170928190923.jpg" width="300" />
<figcaption><table width=320><tr><td align='left' style='margin:0; padding:0px 0px; color:#306f7f; font-size:12px; font-family:verdana; letter-spacing:-0.1em; line-height:160%; table-layout: fixed; width:180px;'>▲ 백우진 한화투자증권 편집국 편집위원.</td></tr></table></fig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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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흔한 예로 에스키모는 ‘눈’을 가르키는 단어가 500개이며 서구 도시인과 다른 식으로 세상을 본다는 이야기가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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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용문구에서처럼 '에스키모의 눈' 이야기는 언어의 상대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자주 거론된다. 언어의 상대성이란 언어가 사회의 여러 환경을 반영하고 나아가 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세계관이나 인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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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키모 공동체에 눈을 뜻하는 단어가 많아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눈을 세분해 인식할 수 있다는 언어의 상대성 이론은 ‘사피어-워프 가설’이라고도 불린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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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사람들은 단어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다(지금도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언어의 상대성은 단어가 사고에 미치는 힘을 지닌다고 주장하는 셈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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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 한국어의 ‘억울하다’, 일본어에는 없어 </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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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에는 언어의 상대성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책은 에필로그에서 '억울하다'는 개념과 단어로 한국과 일본을 비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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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 모두 '억울(抑鬱)'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뜻은 다르다고 전한다. 한국에서 ‘억울하다’는 억울할 때 쓰는데, 일본에서는 ‘억울’을 심하게 기분이 침체된 상태를 가리키는 데 쓴다고 설명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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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일사전을 검색하면 '억울하다'의 대응어로 ‘悔しい(구야시이)’가 많이 제시된다”며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두 단어는 맥락과 뉘앙스가 다르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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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억울하다’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남의 잘못으로 자신이 안 좋은 일을 당하거나 나쁜 처지에 빠져 화가 나거나 상심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반해, 일본어의 ‘구야사이’는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남과의 경쟁에서 패하거나 남이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여 분하거나 유감의 심정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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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심리상태는 그래서 파장이 크게 차이가 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억울한 한국사람은 남을 원망하는 반면 억울한 일본사람은 설욕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며 분발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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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는 저자의 착안이 반가웠다. 나도 ‘억울하다’는 낱말이 다른 언어와 비교한 한국어의 차이 중 하나라고 생각해왔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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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다’는 말은 일본어에는 물론 영어에도 없다. 한영사전을 찾아보면 ‘억울하게 남의 죄를 뒤집어쓰다’는 ‘find oneself in the sorry position of being charged with another's crime’이라고 길게 번역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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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 언어는 사회문화를 반영, 영어에는 ‘때’가 없어</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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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두 단어의 파장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에 따라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도 다르게 나타난다는 언어의 상대성 논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단어에서 태도와 행동을 파악하기보다는 그 단어가 왜 배태됐는지 사회문화적인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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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는 사회를 반영한다. 어떤 사회에 있는데 다른 사회에는 없는 단어가 있다. 예를 들어 ‘때’에 해당하는 한 단어가 영어에는 없다. 영어로 때를 표현하려면 ‘dirt and dead skin cell’이라는 식으로 풀어내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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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때’라는 단어가 없다는 것은 영어권 사회 사람들의 몸에는 때가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영어권에는 때를 미는 문화가 없음을 뜻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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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일본과 영어권에는 없는 ‘억울하다’는 낱말이 있어서 한국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유독 억울해하는 것은 아니다. 또는 비슷한 상황에서 한국 사람들이 유독 억울해하면서 이 단어가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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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는 한국 사회에는 사람들을 억울한 상황으로 몰아넣는 구조나 문화가 있어서 그런 경우가 다른 문화권보다 더 자주 발생한다고 봐야 한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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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는 조선시대대로 일제 강점기 때에는 일제 강점기 때대로 독재시대에는 독재시대대로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수탈하고 고문하고 처벌하고 죽이며 억울하게 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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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 사람들의 타고난 심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억울해하는 사람들을 줄이려면 억울하게 만드는 제도와 문화를 없애야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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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 ‘에스키모의 눈 500가지’는 과장</strong><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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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언어의 상대성을 뒷받침한 에스키모의 눈 이야기는, 예컨대 눈을 가리키는 단어가 500개라는 주장은 과장이다. 에스키모 언어는 포합어로, 단어에 접사를 붙여 구(句)는 물론 문장도 만든다. 한 단어로 보이는데 한 문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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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에스키모 언어에서 눈을 가리키는 단어 중 상당수는 단어라고 보기 어려운 부류다. 이를테면 ‘녹다가 다시 얼어붙은 눈’이 에스키모어에서는 한 단어처럼 쓰이지만 이 표현이 굳어서 계속 통용되는 게 아니라 같은 대상을 다른 사람들은 ‘녹다 만 눈’이라거나 ‘눈 얼음’이라고 한다면 ‘녹다가 다시 얼어붙은 눈’은 단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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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재미난 부분은 연구자들은 에스키모어의 눈을 표현하는 단어의 수를 명시하지 않았는데 전문 연구자가 아닌 필자들이 그 수를 점점 더 불렸다는 사실이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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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키모 사람들이 아무래도 눈에 대해 좀 더 많이 얘기하고 눈에 대한 감각이 섬세할 것이다. 그러나 에스키모어에는 다른 언어보다 눈을 가리키는 단어가 현격하게 많다는 주장은 과장이지 싶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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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br />
위키피디아, 눈을 표현하는 에스키모 단어들 <a href="https://en.wikipedia.org/wiki/Eskimo_words_for_snow">https://en.wikipedia.org/wiki/Eskimo_words_for_sno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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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align=center><table border="1" cellpadding="1" cellspacing="1" style="height:91px; width:65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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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span style="font-size:small">백우진은 호기심이 많다. 사물과 현상을 종횡으로 관련지어 궁리하곤 한다. 책읽기를 좋아한다. 글쓰기도 즐긴다. 책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글은 논리다』『안티이코노믹스』『한국경제실패학』『나는 달린다, 맨발로』를 썼다. </span><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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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small">동아일보를 시작으로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 포브스코리아, 아시아경제 등 활자매체에서 기자로 일했다. 마라톤에 2004년 입문했고 풀코스 개인기록은 3시간37분이다.</span></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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