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조 원의 가계부채, 1600조 원의 기업부채, 1천조 원이 넘는 공공부채.’
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이홍규 교수는 새 책 ‘경제와 민주주의의 하모니’(소담출판사)에서 한국경제의 위기상황을 숫자로 압축해 이렇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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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규 카이스트 교수. |
수많은 기업들 가운데 몇 개 기업만 제대로 돌아갈 뿐 잠재성장률이 제로에 가깝고 4차산업혁명의 파고가 닥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현재 벼랑 끝에 선 우리 경제가 1997년 국가부도 위기상황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경제의 실패는 정부의 실패, 리더십의 실패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지속가능하려면 옳은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와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좋은 민주주의가 지속가능한 경제를 만들고 나쁜 민주주의는 경제를 지속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책은 3장에 걸쳐 2017년 우리 경제가 처한 위기상황이 어디에서 비롯됐고 30년 전인 1997년 외환위기 당시와 무엇이 같고 어떻게 다른지, 4차산업혁명이 산업현장 전반에 가져올 변화는 무엇인지, 올바른 민주주의를 가능하도록 하는 국가경영의 대안을 살핀다.
‘항산에 항심이 있다’고 했듯이 자본주의 경제에서 성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저성장의 늪에 빠지면서 저금리와 고부채 속에서 일자리는 줄고 세대간, 계층간 양극화로 갈등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저자는 이런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사회 전반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정부가 권한과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역량의 실패를 고쳐야 한다고 주문한다. 과거처럼 권위주의에 기반한 경제의 근대화, 물질의 근대화에서 벗어나 ‘민주적 자본주의’로 도약하는 것이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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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와 민주주의의 하모니'(소담출판사). |
이 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오리건주립대에서 MBA, 한국외국어대에서 경영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상공부에서 통상 및 산업정책을 담당했고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에서 국가개혁 과제를 수립하는 데 참여했다.
정치학자이자 경제학자이면서 공직생활을 거친 이력을 바탕으로 책에는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한 현실을 알리는 최근의 다양한 사례와 경제이론, 비판적 시각에서 나온 경험적 조언이 담겼다. 경제와 정치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뤄 가볍지 않은 책이지만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쉽도록 쓰였다.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권력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주권자로서 시민의 각성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 전환점이었다. 대통령 탄핵과 선거를 거쳐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눈높이도 어느 때보다 높아져있다.
저자는 책에서 “대통령의 실패는 국가의 실패이고, 국민의 실패이다”라고 했다. 견제가 작동하지 않는 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 장에서 ‘국민의 정신혁명이 최후의 보루다’라고 했듯이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을 어떻게 견제하고 감시해야 하는지 비판적 통찰을 얻는 데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