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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치 새. 먹는 견과류의 종류가 달라지면 이에 맞춰 부리가 진화하고 이것은 새로운 종의 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
초원에서 풀을 뜯는 임팔라의 무리를 보면 다들 몸집과 몸매가 엇비슷하다. 참새나 까치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를 봐도 개체는 종의 외형적 특징을 벗어나지 않는다. 바다의 고등어 같은 물고기도 한 개체를 다른 개체와 구분하기 어렵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비교해 키와 몸매, 얼굴이 매우 다양하다.
성격과 취향도 제각각이다. 정신적인 측면이나 예술적인 관심, 그리고 각 분야에서의 성취도 또한 다양하다.
이런 점에서도 인간은 특이한 동물이다. 영국의 시인 겸 화가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는 이와 관련해 “사람들 간의 차이가 동물 종들 간의 차이보다 더 크다”고 말했다.
인간은 왜 제각각일까. 다른 동물은 왜 자신이 속한 종의 다른 동물과 비슷하게 생겼을까.
아주 간단한 답을 생존의 조건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동물은 생사의 경계선에서 살아간다.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포식동물로부터 도망다녀야 한다. 포식동물의 생존도 만만치 않다.
목숨을 걸고 달아나는 동물을 잡는 일이 어찌 쉽겠는가. 생존을 위해 부단하게 움직이는 동물의 몸은 타고난 유전자의 형질을 유지한다.
반면 인간 중 대부분은, 그리고 인간은 생애의 대부분을,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 살아간다.
인간은 불을 이용하고 창으로 무장하면서 포식동물로부터의 방어력을 키웠고 농사를 지으면서 전보다 더 영양을 섭취하게 됐다.
이를 포함해 여러 요인이 어우러져 인간은 자연상태의 어느 동물보다 평균적으로 비만해졌다. 평균적으로 비만일 뿐, 인간 개인의 몸무게는 아주 넓게 분포된다. 고도 비만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극도로 마른 사람도 있다.
◆ 인간은 ‘사회선택’으로 다양해졌다
이는 체중의 차이만 설명한다. 다른 다양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의 답을 진화론에서 찾아보자.
우선 생물의 다양성이 자연선택을 통해 이뤄진다는 과학적 경향을 살펴본다.
자연선택은 결핍 상황에서 강하게 이뤄진다. 살기 좋은 환경에서는 개체 대부분이 살아남는 반면 먹을 게 부족한 시기엔 조금이라도 유리한 특성을 가진 개체가 선택된다.
그래서 자연선택과 진화에서 유리한 특성을 확보하는 것은 그 동안 간과된 틈새를 찾아내 선점하는 일이다.
같은 종의 개체는 물론 다른 동물도 먹지 않는 풍부한 먹이를 섭취할 수 있다면 큰 틈을 확보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가뭄이 심해 먹을 게 부리가 크고 단단한 핀치 새는 전에 먹지 못했던 견과류의 껍데기를 깨뜨려 씨앗을 먹을 수 있다. 반복된 가뭄은 부리가 큰 핀치의 부리를 더 크게 만든다. 이런 변화가 뚜렷해지고 먹이가 특정 견과류로 고정되면 큰 부리 핀치는 기존 종에서 벗어나 다른 종으로 갈라지기 시작한다.
여느 동물과 달리 인간의 다양성은 자연선택에 의해 빚어진 게 아니다.
인간의 다양성은 자연선택이 아니라 ‘사회선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에서 선택되면, 즉 사회에서 금전적으로 보상받는 역할을 하면, 개체로서 잘 살 수 있을뿐더러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성공적으로 넘겨줄 수 있다.
사회선택이 다양성을 장려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앞서 체중으로 설명한 것처럼 인간은 일정 단계를 지나서는 다른 동물에 비해 자연선택의 압력에서 자유로워졌다. 인간은 사회를 이뤄 농경과 목축 건축 등을 통해 자연을 자신에 맞춰 이용하게 됐다.
인간은 ‘자연’ 위에 제2의 환경인 ‘사회’에서 살게 됐다. 인간사회는 공동으로 자연을 활용하면서 역할을 나눴다.
모든 기술에 통달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지만, 저마다 자신의 분야에서 솜씨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많다. 전문화는 혁신을 낳았고 자연에 대응하고 자연을 부리는 사회 전체의 역량을 키웠다.
자연선택과 마찬가지로 사회선택은 기본적으로 다양성을 유도하는 것이다. 개체가 저마다의 역량으로 기여하는 사회는 성장하고 성장한 사회에서는 일이 더 나뉜다.
세분된 업무는 전문성과 효율이 향상되는 가운데 혁신을 낳는다. 혁신은 편익과 선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사람은 사회나 조직에 의해 선택되고 조직은 다시 다른 조직에 의해 선택된다.
사회는 개인과 조직으로 구성된다. 어떤 사회가 번영하는가. 구성원이 다양한 분야에서 능력을 쌓고 발휘하는 가운데 경쟁이 공정하고 활발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사회다. 다양성을 억누르는 사회는 변화를 선도하지 못한다.
◆ 작은 틈새를 확보한 차별화가 관건
사회선택에 대한 이런 고찰은 우리 자신과 타인을 포용하는 관점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다양한 존재다. 키 크고 잘 생긴 데다 공부도 잘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 내가 남과 같지 않거나 남보다 못한 부분이 많다는 것은 남다른 개성으로 사회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하자.
“사람들은 각자 천직을 갖고 있으며 재능은 소명”이라고 미국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말했다. 에머슨은 “누구나 자신에게 열린 길이 있으며 그쪽에 끝없이 정진하도록 묵묵히 이끄는 재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자연선택과 사회선택의 관점은 적자생존에 대해서도 전보다 느긋하게 생각하게 한다.
사실 진화론을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라는 말로 요약한 사람은 찰스 다윈이 아니었다. 이 말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허버트 스펜서가 처음 썼다.
진화론에 따르면 ‘가장 적합한(fittest)’ 개체라기보다 ‘더 적합한(fitter)’ 개체가 살아남는다. 또 그 ‘더 적합한’ 정도는 미세할 수 있다.
자연과 마찬가지로 사회도 틈새를 확보해 차이를 만든 개인과 조직을 선택한다. 그 틈새와 차이는 처음부터 큰 것일 필요는 없다. 남보다 월등하게 잘하면야 좋겠지만 차별화된 성과를 보여주면 될 때도 많다.
우월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차별화를 꾀해보자.
이와 관련해 떠오르는 주장이 있다. 세계시장이 통합되면서 자동차업체가 대형화 경쟁을 벌이던 199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자동차업계 안팎의 중론은 몸집을 키운 대여섯 개 업체만 살아남으리라는 것이었다.
결과는 판이했다. 자동차업계는 대형화되면서도 다양성을 유지했다. 시장에서 자신의 틈을 장악한 업체는 더욱 성장했다.
사회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불평등, 전쟁, 식민지 정복을 합리화한 스펜서의 ‘사회적 진화론’이 자연선택의 한 측면만 지나치게 부각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선택 과정에서조차 가장 강한 존재만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강한 존재만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사회는 다양한 존재를 선택한다. ‘약육강식하는 사람’보다 사회에서 도움을 주고 받는 공생적 관계를 실행하는 존재가 더 잘 산다. 그렇게 되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해야 한다.
글로벌사회에서도 다르지 않다. 국제사회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찾아 공생적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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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일 오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17 서울모터쇼를 찾은 시민들이 다양한 자동차와 부품 등을 살펴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뉴시스> |
◆ 사회적 존재로서 방황하고 번민할 수밖에
인간의 사회성은 실존적인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다른 동물은 무리를 이뤄 살더라도 역할 분화가 별로 없고 역할을 맡는 과정도 단순하다.
이에 비하면 인간의 사회적 역할은, 신분사회가 아니라면, 사전에 정해진 바가 전혀 없다. 자유도가 매우 높다.
동물 중 사람만 사춘기를 맞이하는 것도 이 자유도 때문으로 짐작된다. 사람은 수많은 길 가운데 하나를 스스로 선택해 걸어가기에 앞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번민하는 시기를 거칠 수밖에 없다. 직업을 바꾸거나 영역을 전환할 때에도 비슷한 정도로 고심하는 과정을 밟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방황과 좌절과 번민을 몇 차례씩 겪는다. 존재는 본질(목적)에 선행한다’는 실존주의의 선언이 나온 배경을 이런 측면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재능에 맞는 직업을 찾은 행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조너선 와이너는 책 '핀치의 부리'에서 다윈 시대의 목사 시드니 스미스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만일 삶의 다양한 부분들을 탁자에 난 구멍들(원형, 삼각형, 사각형, 타원형)이라고 하고 이런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비슷한 모양의 나무 조각이라고 하면, 삼각형 사람이 사각형 구멍에, 타원형 사람이 삼각형 구명에, 사각형 사람이 원형 구멍에 억지로 들어가려는 장면을 흔히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사무원과 사무실, 직원과 직무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자신의 직업을 위해 태어난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인간이 이토록 다양해지는데도 종(種)이 갈라지지 않는 것은 인간만큼 ‘교류’에 적극적인 종이 없다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은 가장 진화한 생물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처럼 진화한 사회적 동물은 없다. 인간 사회에서 우리는 저마다 고유한 존재다.
백우진은 호기심이 많다. 사물과 현상을 종횡으로 관련지어 궁리하곤 한다. 책읽기를 좋아한다. 글쓰기도 즐긴다. 책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글은 논리다』『안티이코노믹스』『한국경제실패학』『나는 달린다, 맨발로』를 썼다.
동아일보를 시작으로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 포브스코리아, 아시아경제 등 활자매체에서 기자로 일했다. 마라톤에 2004년 입문했고 풀코스 개인기록은 3시간37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