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대(57) 법원행정처장이 24일 취임했다. 취임 첫 일성으로 사법부에 대한 믿음을 얻기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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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대 법원행정처장 |
박 법원행정처장은 이날 취임석에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는 있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며 "사법부가 국민의 마음과 믿음을 얻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 고민하고 설득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마이크로소프 창업자 빌 게이츠의 성공 비결을 언급하며 “창의적인 사고 없이 기존의 방식과 관행을 답습한다면 새로운 시대 상황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다"며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는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업무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박 법원행정차장은 사회적 약자 보호에 적극적인 판결을 많이 내렸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근무할 때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에게 군인 유족연금 청구권을 인정하고, 조선족 중국동포의 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판결을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수석부장 때는 언론사 노조 간부의 지방발령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인용하는 등 언론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대법관으로 일 할 때도 이혼 당시 채무도 재산분할 대상이 될 수 있는지와 관련해 전원합의체 사건 주심을 맡아 재산분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지로 부부의 양성평등과 실질적 공평을 지향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법원행정 업무에도 능해 법원행정처 송무국장 재직 때 재판의 틀을 바꾼 '신모델'을 구성하고 민사소송법 개정작업을 주도하는 한편, 공판중심주의를 기조로 한 '형사 신방식'의 구성과 추진을 주도했다. 2005년에는 '불법원인급여의 판단기준에 관한 구조분석'이란 논문으로 한국법학원의 법학논문상을 수상하는 등 법률이론에 매우 해박하다.
박 법원행정처장은 야간 고교 출신으로 대법관에 오른 인물이다. 1957년 9월5일 경북 영주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가난한 형편 때문에 고교 진학을 사실상 포기했으나 담임교사 등의 후원으로 1972년 당시 야간고였던 균명고(현 환일고)로 진학했다. 주경야독 끝에 이 고교 최초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고, 대학 4학년 때인 1979년 제21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5년 판사로 임용된 뒤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기획담당관을 거치고 사법연수원 교수, 법원행정처 송무국장, 서울고법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기획조정실장, 서울중앙지법 민사수석부장, 대전지법원장 등을 거쳐 2011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박 처장의 전임인 차한성(59) 대법관은 이날부터 대법관으로 복귀한 뒤 내달 3일 임기만료로 퇴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