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27일 일리노이주 메디나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 골프 대회 결승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국과 일본은 이란 전쟁 이후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처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미국발 에너지 공급 차질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으로 보인다.
5일 폭스뉴스와 뉴욕타임스 등 외신을 종합하면 미국 정부는 자국 내 연료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경유 수출 제한을 검토하고 있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9월24일 다섯 명의 취재원 발언을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에너지 가격을 낮추기 위해 경유 수출을 최대 90일간 금지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도 9월27일 일리노이주 메디나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 골프 대회 결승전에서 폭스뉴스를 통해 경유 수출 금지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경유 수출을 제한하려는 배경에는 중동발 에너지 수급 차질로 자국 내 연료비가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9월28일 기준 미국 내 경유 평균 가격은 1갤런당 6.45달러로 1년 전보다 74.8%가량 상승했다.
11월3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정부가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유권자들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경유 수출 제한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대통령은 1950년 제정된 국방물자생산법에 근거한 고유 권한으로 경유와 같은 핵심 물자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수출 제한이 경유에 그치지 않고 휘발유를 비롯한 미국산 정제유 전반의 수출 제한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공급 확대를 위해 경유 수출이 막힐 경우 미 정유사들이 정제 설비 가동을 줄이면서 휘발유 등 다른 연료 가격이 오히려 폭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서부석유협회의 조디 뮬러 최고경영자(CEO)는 폴리티코를 통해 “저장 탱크가 가득 차서 저장할 곳이 없어지면 정유소는 생산량을 줄여야 할 것”이라며 “이는 휘발유와 항공유 가격까지 상승할 우려를 부른다”고 말했다.
국내 수요 충당을 위해 경유 수출을 제한하면 결과적으로 원유 수요가 줄어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가격이 하락하며 원유 수출을 낮출 요인이 될 공산도 있다. 또 미국 정부가 국내 요인을 이유로 오랫동안 원유 수출을 제한했던 전례도 있다.
미국공영라디오(NPR)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1970년대부터 40여 년 동안 국내 석유 부족을 이유로 원유 수출을 금지한 뒤 2015년 셰일 오일 개발을 계기로 제한을 풀었다.
이번 경유 수출 제한이 실현돼 정유사들의 원유 처리량이 줄고 동시에 미국산 원유의 해외 수출 여건도 악화될 경우, 미국 정부가 국내 연료 가격 안정을 위해 원유 수출까지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 ▲ 미국 성조기가 9월22일 캘리포니아주 카슨에 있는 마라톤페트롤리엄 정유소 외벽에 걸려 있다. <연합뉴스> |
로이터에 따르면 더그 버검 미국 내무장관은 9월14일 휴스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에너지 회의에서 미국산 원유와 연료 수출 금지를 묻는 기자단 질문에 “에너지 가격을 낮출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수출 금지를 검토할 수 있다”면서도 "현재 시점에서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 말했다.
정제유를 넘어 원유의 수출 제한과 관련해서도 조건부로 추진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미국 정부가 자국 내 물가를 안정화하기 위해 원유 수출이라는 고강도 조치를 취할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은 2015년 12월 의회가 통과시킨 ‘통합세출법’에 근거해 지속적 원유 부족 등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최대 1년 동안 원유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 정부의 움직임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에너지 안보에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일본 등은 이란 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중동산 원유 공급이 불안해지면서 미국을 비롯한 국가로 조달처를 다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싱크탱크 사사가와 평화재단은 지난 9월7일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통계를 인용해 일본의 전체 원유 수입에서 미국산 비중이 2월 7%에서 6월 31%로 상승했다고 전했다.
한국의 미국산 원유 수입 비중도 같은 기간 18%에서 19%로 소폭 상승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정부 정책으로 에너지 공급처 다변화를 추진해 이러한 추세가 지속할 공산이 크다.
한국 산업통상부는 지난 9월23일 제6차 자원안보협의회에서 ‘제1차 자원안보 기본계획’ 등 4개 안건을 심의·확정했다.
해당 계획에 따라 한국 정부는 2035년까지 어느 한 지역에서 들여오는 원유 비중을 전체의 50%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현재 중동산 비중은 75%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본 정부 또한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낮추고 에너지 조달처를 다변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재검토하는 중이다.
한국과 일본의 원유 공급처 다변화가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와 맞물리면서 미국이 중동산 원유를 대체하는 주요 공급처로 자리 잡을 수 있지만 수출 제한을 비롯한 미국 정책 변화에 따른 리스크도 떠안을 공산이 크다.
이는 향후 미국발 원유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벤 케이힐 비상근 선임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미국 에너지부와 내무부 장관 모두 원유 수출 제한을 당장 시행하지는 않겠지만 이란 전쟁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언제 끝날지는 불확실한 상황”이라며 “유가가 급등할 경우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책 당국자들이 원유 또는 석유제품 수출 금지를 언제든지 검토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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