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을 1.5% 이내로 묶은 총량관리 방식을 손질할 것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잔금대출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에 실수요자 혼란이 이어지는 데다 대통령 지시로 특정 사업장의 잔금대출을 허용한 선례까지 생기면서 기존 규제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7월29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7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공개 부동산정책 점검 2차 회의에서 정부의 부동산 공급 확대 정책을 뒷받침할 금융지원 방안을 보고한다.
최근 시장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잔금·중도금·이주비대출 관련 규제완화 등 방안도 주요 논의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잔금대출 등과 관련)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다만 아직 공개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이번 점검회의에서는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을 관계부처와 공유하고 세부방안은 금융권 협의 등을 거쳐 별도로 마련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금융당국이 잔금과 중도금대출, 이주비대출 등 실수요 목적의 집단대출을 가계대출 총량관리 예외로 인정하거나 별도의 한도를 부여하는 방안에 무게를 싣고 있다.
실제 금융당국은 올해 입주를 앞둔 가구들의 잔금대출을 연간 가계대출 총량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당장 다음 달 입주물량 1만4342가구를 포함해 2026년 하반기 전국에서 8만6352가구가 입주를 앞두고 있다.
이 위원장은 그동안 가계대출 총량규제와 관련해 엄격한 기조를 유지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금융위는 올해 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목표를 2025년 실적(1.7%)보다 강화한 1.5%로 설정하고 가계대출 억제 정책에 힘을 실었다.
이 위원장은 7월15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가계대출 총량관리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심사 강화를 부동산금융 핵심 정책으로 보고했다.
다만 그 뒤 대통령 주재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수원 매교역 팰루시드 사례가 부각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잔금대출 보완책 마련을 직접 주문하면서 금융당국이 실수요자 보호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당시 “이미 확정된 계약을 믿고 진행했는데 사후에 정책을 변경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며 “경계를 그을 때 그 선상에 있는 사람들이 최소화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7월27일 다시 열린 부동산정책 토론회에서 가계대출 규제 강화 과정에서 일부 주택 실수요자가 피해를 입는 사례를 보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은행권과 신속히 합의해 대출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실수요자, 청년, 신혼부부 등의 불편은 ‘핀셋’ 조치를 통해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 이재명 대통령이 7월23일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청와대>
금융위는 다음 날인 28일에는 5대 시중은행 여신 담당 부행장을 긴급 소집해 잔금대출 관련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당국이 올해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강화한 가운데 은행권의 대출 공급 여력은 사실상 바닥을 보이고 있다.
7월30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정책성 대출 제외)은 650조2636억 원으로 집계됐다. 2025년 말(644조9700억 원)과 비교해 5조2936억 원 늘었다.
2026년 연간 대출 증가 목표치(약 4조3천억 원)를 이미 넘어섰다.
이에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대폭 축소하고 우대금리 조정, 비대면 대출 제한 등을 통해 대출 공급을 조이고 있다.
시중은행에서 밀려난 수요가 인터넷전문은행으로 몰리면서 카카오뱅크 주택담보대출은 접수 시작 직후 마감되는 이른바 '오픈런' 현상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입주를 앞둔 수분양자들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잔금대출은 신규 투자 목적의 대출이라기보다 이미 체결한 분양계약을 이행하기 위한 자금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일반 주택담보대출과 동일하게 총량관리 대상에 포함되면서 실수요자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주택 사전청약 당첨자들도 당초 안내받았던 대출 조건과 달라진 금융지원 방안을 통보받으면서 계약 포기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등 실수요자 혼란이 확산하고 있다.
다만 총량규제 예외를 지나치게 확대하면 가계부채 관리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온다.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관리 기조는 유지하되 투기 목적 대출과 실수요 대출을 구분하는 방향에서 균형점을 찾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총량규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집단대출 공급을 확대하는 데는 사실상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당국의 실수요자 대책 발표 등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