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이 다시 불붙을 가능성이 제약업계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다.
경영권 분쟁을 봉합하기 위해 손을 잡았던 이른바 ‘4자연합’ 당사자들이 주주간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서로 가압류와 위약벌 소송에 나선 데다 실질적 의결권 지분을 둘러싼 해석도 엇갈리면서다.
▲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사진)은 최근 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을 상대로 주식 가압류를 신청했다. <비즈니스포스트>
6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의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가압류하면서 대주주 사이 물밑 힘겨루기가 한층 거세지고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7월29일 신 회장이 임 부회장을 상대로 신청한 한미사이언스 주식 100억 원어치의 가압류를 인용했다.
신 회장은 임 부회장이 4자연합 주주간계약에서 정한 의결권 공동행사 의무를 위반해 200억 원의 위약벌 책임이 발생했다며 이 가운데 100억 원을 보전하기 위해 가압류를 신청했다. 다만 가압류는 본안소송 판단에 앞서 채무자의 재산을 보전하는 절차로 임 부회장의 계약 위반 책임이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신 회장 측이 문제 삼은 것은 임 부회장이 에쿼티퍼스트와 환매조건부로 거래한 한미사이언스 지분 2.7%다.
임 부회장과 신 회장, 송 회장, 라데팡스파트너스의 특수목적법인 킬링턴유한회사는 2024년 11월28일 4자연합을 구성하면서 각자가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주식의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임 부회장이 당시 보유 지분으로 제시한 9.15% 가운데 2.7%를 에쿼티퍼스트에 넘긴 뒤 해당 주식이 시장에서 처분되면서 2025년과 2026년 정기주주총회에서 이 지분의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것이 신 회장 측 주장이다.
이를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의 재점화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다만 신 회장 측이 가압류를 계기로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임 부회장 측의 실질적 의결권 지분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향후 한미사이언스 지분 구도를 바꿀 변수가 계속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지고 있다.
에쿼티퍼스트는 임 부회장에게서 2.7%, 임종훈 사장에게서 3.44%, 송 회장에게서 0.46% 등 한미사이언스 지분 모두 6.6%를 넘겨받았다.
신 회장 측은 이 지분 대부분이 시장에서 매각된 만큼 송 회장과 임 부회장 측의 실질적 의결권을 계산할 때 제외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송 회장과 임 부회장 등 창업주 일가와 킬링턴유한회사를 비롯한 우호세력의 지분은 모두 40.86% 수준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에쿼티퍼스트에 넘어간 6.6%를 제외하면 실제로 공동행사가 가능한 의결권 지분은 34.4% 안팎이라는 것이 신 회장 측 계산이다.
이에 반해 신 회장과 신 회장의 개인회사인 한양정밀 측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조만간 더 높아질 예정이다.
신 회장은 임종윤 회장의 배우자와 친인척 7명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주식 360만4799주를 1727억 원에 장외 매수하기로 했다. 거래 예정 기간은 8월7일부터 11일까지다.
거래가 끝나면 신 회장의 개인 지분은 기존 22.88%에서 28.15%로 높아진다. 여기에 신 회장의 개인회사인 한양정밀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지분 6.95%를 더하면 신 회장 측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35.1%가 된다.
신 회장 측의 지분 계산을 그대로 적용하면 신 회장 측이 송 회장과 임 부회장 측보다 단순 수치상 약 0.7%포인트 앞서게 된다.
그동안 송 회장과 임 부회장 측이 신 회장 측보다 5%포인트 넘게 앞서 있다고 평가됐지만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만 따지면 양측의 우열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을 감안할 때 신 회장이 임 부회장 보유 한미사이언스 주식 일부를 가압류한 것은 단순히 임 부회장의 재산을 묶는 절차를 넘어 한미사이언스 경영권을 둘러싼 지분 힘겨루기의 변수로도 주목받고 있다.
▲ 한미약품그룹 대주주 연합이 법적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한미타워. <한미약품>
다만 신 회장 측이 공동행사가 가능한 의결권 지분이라고 제시한 34.4%는 에쿼티퍼스트에 넘어간 주식으로 대부분 시장에서 처분됐다는 판단과 나우아이비캐피탈 및 공익재단 보유 지분을 특정 진영의 우호지분으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을 반영한 수치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실제 의결권 구도는 향후 주주총회에서 각 주주가 어느 쪽과 공동행동에 나서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임종훈 사장은 최근 한미사이언스 지분 2.5%를 나우아이비 22호 펀드에 매각하면서 송 회장, 임 부회장과 함께 창업주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나우아이비 펀드가 확보한 지분을 송 회장과 임 부회장 측 우호지분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 나왔지만 신 회장 측은 공동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공시가 없는 만큼 특정 진영의 지분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맞서고 있다.
가현문화재단과 임성기재단 등 공익재단 보유 지분 역시 어느 한쪽의 우호지분으로 계산할 수 있는지를 놓고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신 회장 측 역시 이번 법적 대응을 4자연합 해체나 경영권 확보를 위한 행보로 해석하는 데에는 선을 긋고 있다.
4자연합 내부의 균열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송 회장과 임 부회장, 킬링턴유한회사는 신 회장이 주주간계약을 위반했다며 신 회장의 한미사이언스 주식과 부동산 등 220억 원 상당을 가압류하고 600억 원 규모의 위약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신 회장이 서울 반포동 시니어케어 사업 추진에 동의했다가 별도의 사전 협의 없이 입장을 바꿔 의결권 공동행사 약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신 회장 측은 서울성모병원의 사업 참여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투자를 철회한 것으로 정당한 경영 판단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재판부는 6월25일 해당 소송의 변론을 종결하고 10월1일을 1심 선고기일로 지정했다.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4자연합 주주간계약의 구속력과 당사자들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4자연합의 계약기간은 3년으로 알려졌다. 계약기간이 절반을 갓 넘긴 가운데 같은 계약을 근거로 당사자들이 서로 위약벌 책임을 묻는 상황이 된 셈이다.
아직까지는 경영권을 놓고 공개적 표 대결을 벌이기보다 주주간계약의 책임 범위와 실질적 의결권 지분을 둘러싼 물밑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에 가깝다.
하지만 양측 지분 차이가 크지 않은 데다 쌍방 가압류와 위약벌 소송 결과에 따라 연합 당사자들의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미사이언스 경영권 구도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법률대리인을 통해 “이번 건으로 4자연합에 본질적 균열이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무엇보다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의 전문경영인 중심 체제 확립과 준법경영을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