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세실업이 8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섬유패션클럽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의류 전시회를 열었다. 사진은 김익환 대표이사 부회장(왼쪽)과 손지연 한세실업 R&D 본부 이사가 질의응답 시간에 답변하는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휴머노이드와 로봇이 미래의 우리 삶 속으로 파고든다면 그 로봇이 입을 옷은 한세실업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익환 한세실업 대표이사 부회장이 기자간담회 단상에서 가장 먼저 꺼낸 화두는 ‘로봇이 입는 옷’이었다. 낯선 소재였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고객사 주문을 받아 옷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아직 열리지 않은 미래 의류 시장까지 먼저 제안하는 제조기업으로 평가받겠다는 것이다.
한세실업은 8일 서울 강남구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섬유패션클럽에서 ‘웨어 더 퓨처’ 미디어 데이를 열고 휴머노이드 로봇을 위한 미래 의류 구상을 공개했다.
이번 전시는 지주사 한세예스24홀딩스, 의류 제조기업 한세실업, 패션 계열사 한세엠케이가 함께 준비했으며 12일까지 진행된다. 이날 행사에는 김 부회장이 직접 참석해 한세실업의 미래 의류 전략을 설명했다.
김익환 부회장은 이날 발표에서 한세실업이 단순 제조기업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한세실업은 서울, 뉴욕, 바르셀로나 등 세계 곳곳에서 140명 이상의 디자이너를 두고 글로벌 고객사에 디자인을 먼저 제안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사업은 고객사가 주문한 제품을 정해진 가격과 납기에 맞춰 생산하는 구조다. 가격 경쟁력, 품질 관리, 납기 준수가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반면 경쟁력 있는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소재와 디자인, 기능, 생산 방식까지 먼저 기획하고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한세실업이 이번 간담회에서 로봇 의류를 꺼낸 것은 바로 이 지점을 보여주기 위한 행보로 읽힌다.
로봇 의류는 당장 대규모 매출을 만드는 제품군은 아니다. 하지만 한세실업이 “단순히 주문만 받아 옷을 만드는 회사”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기에는 상징성이 큰 소재일 수 있다.
| ▲ 한세실업이 8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섬유패션클럽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의류 전시회를 열었다. <비즈니스포스트> |
로봇이 옷을 입는다는 개념은 아직 낯설다. 하지만 의류기업 관점에서 보면 질문은 의외로 현실적일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생활 공간과 산업 현장으로 들어오면 표면 보호, 내구성, 움직임, 위생, 안전성 등을 고려한 새로운 형태의 ‘웨어’가 필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사람이 옷을 입는 이유를 보호, 개성, 효율로 나눠 설명했다. 몸을 보호하고 각자의 역할과 정체성을 드러내며 환경에 맞춰 효율을 높이는 기능이 옷에 있다는 것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게 되면 이 기능은 로봇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아이를 가르치는 로봇, 노인을 돌보는 로봇, 공장에서 사람 대신 작업하는 로봇은 각각 다른 환경과 역할을 갖는다. 이 경우 로봇 의류는 장식이 아니라 사용 환경에 맞춘 기능성 제품이 될 수 있다.
한세실업이 이 같은 미래 의류 구상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보는 배경에는 3D 디자인과 AI 역량이 자리하고 있다.
한세실업은 국내 의류업계에서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인 2019년 3D 디자인팀을 만들었다. 한세실업에 따르면 3D 디자인 도입 이후 연간 약 50만 장에 달하던 실물 샘플을 약 30만 장 수준으로 줄였다.
한세실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디자인 업무에도 AI를 접목하고 있다. 한세실업은 2023년부터 연구개발 조직 안에 AI 전담팀을 두고 디자인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이날 발표 화면에는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젠슨 황과 김석환 한세예스24홀딩스 부회장이 함께 있는 사진도 등장했다. 한세예스24그룹 차원에서 AI와 로보틱스 분야를 미래 성장 방향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김 부회장은 한세실업의 다음 단계가 AI와 로보틱스에 있다고 봤다. 로봇 의류는 이 흐름을 의류기업의 언어로 풀어낸 결과물인 셈이다.
한세실업이 변화 방향을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할 이유도 있다. 최근 의류 OEM 업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한세실업은 올해 1분기 매출 4672억 원, 영업이익 105억 원을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비슷하지만 영업이익은 48.5% 줄었다.
미국 고객사 의존도가 높은 한세실업에게 미국 소비 경기와 관세, 고객사 재고 조정은 피하기 어려운 변수다. 옷을 잘 만들고 싸게 공급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환경이 된 것이다.
| ▲ 한세실업이 8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섬유패션클럽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의류 전시회를 열었다. <비즈니스포스트> |
고객사들의 요구도 달라지고 있다.
낮은 단가뿐 아니라 빠른 납기, 안정적 공급망, 차별화된 제품 제안력이 함께 중요해지고 있다.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고객사는 시장 변화에 먼저 대응해 줄 수 있는 파트너를 원한다.
이런 흐름에서 이날 간담회의 초점은 로봇 옷 자체보다 한세실업의 변화 방향에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김 부회장이 강조한 것도 휴머노이드 로봇 의류 제품 자체보다 한세실업이 미래 사용 환경에 맞는 의류를 먼저 기획할 수 있는 회사라는 점에 가까웠다.
손지연 한세실업 R&D 본부 이사의 발표에서도 초점은 로봇 의류의 완성도보다 한세실업의 제안력에 맞춰졌다. 아직 시장이 열리지 않은 영역을 먼저 상상하고 기존 기능성 의류 기술을 그 시장에 맞춰 다시 제시했다는 점에서다.
손 이사는 이번 전시가 “휴머노이드와 로봇이 우리 곁에 온다면 어떤 옷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며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단계는 아니지만 그동안 사람을 위해 개발해 온 기능성 의류 기술이 미래의 새로운 영역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한세실업은 이번 전시 의류에 냉감, 고신축, 고내구성 등 기존 기능성 소재 기술을 반영했다. 로봇에서 발생하는 열을 고려해 통풍이 잘되는 그물형 소재와 공기 순환 구조를 적용했다. 관절 부위에는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도록 신축성 있는 원단을 활용했다.
로봇이 교육, 돌봄, 산업 현장 등 사람과 가까운 공간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교육 현장용 의류에는 부드러운 인상과 활동성, 돌봄 현장용 의류에는 청결함과 친밀감, 산업 현장용 의류에는 내구성과 보호 기능에 집중했다.
믈론 로봇 의류가 실제 사업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휴머노이드 보급 속도와 사용 환경, 안전 기준, 소재 표준 등이 아직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세실업 관계자는 “한세실업은 단순 OEM 기업을 넘어 한발 앞선 디자인과 패션 트렌드를 고객사에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글로벌 OEM 기업으로 성장해 왔다”며 “그동안 축적해온 디자인, 소재, 기능성 의류 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미래 의류 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제안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