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현 기자 hsmyk@businesspost.co.kr2025-10-14 16: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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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HBM 실기, 파운드리 적자 누적 등 2023년부터 시작된 '반도체 위기'를 최근 상당히 진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오는 27일로 취임 3주년을 맞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3년부터 이어진 '반도체 위기'를 진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5월 반도체(DS) 부문 수장 전격 교체 등 인사 개편과 함께 근원적 메모리반도체 기술력 회복에 집중한 결과가 최근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에서 나타나고 있고, 올해 들어 해외 광폭 경영 행보로 테슬라 등 빅테크로부터 수십 조 원의 장기 반도체 공급 계약을 따내는 등 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회복의 발판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메모리 시황 호조와 함께 삼성전자 DS 부문은 올해 3분기 13개 분기 만에 처음으로 7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산됐다. 올해 2분기 4천억 원에 불과했던 DS 부문 영업이익의 대반전을 기록한 것이다. 올해 4분기 DS 영업이익은 3분기보다 더 많은 8조5천억 원에 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근 HBM3E 12단 제품의 엔비디아 인증 통과를 앞두고 있고, 늦어도 내년 초 HBM4 인증을 획득하며 그동안 HBM 시장에서 경쟁사에 밀렸던 '실기'를 내년부터 본격 만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2나노 파운드리에서도 테슬라에 이어 빅테크 대형 수주를 노리고 있어 삼성전자 반도체 '어닝 서프라이즈'는 내년 메모리 슈퍼 사이클과 함께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14일 삼성전자는 2025년 3분기 매출 86조 원, 영업이익 12조1천억 원의 잠정실적을 발표했다. 이는 직전 분기보다 매출은 15.33%, 영업이익은 158.55% 늘어난 수치이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선 각각 8.72%, 31.81% 증가한 수치다.
삼성전자 3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는 반도체 부문에서 비롯됐다.
SK증권은 반도체를 담당하는 DS 부문이 3분기 전체 영업이익 12조1천억 원의 약 60%에 달하는 영업이익 7조1천억 원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메리츠증권은 삼성전자 반도체가 전체 영업이익의 56% 수준인 6조6천억 원을 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번 DS부문의 실적은 2022년 2분기 9조98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낸 이후로 13개 분기 만에 최대 실적이다. DS부문은 2023년 반도체 시황이 악화하며 한 해 내내 적자를 기록했고, 2024년에는 HBM 경쟁력에서 밀리며 ‘AI 붐’의 수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2025년 3분기 삼성전자 반도체가 만들어 낸 실적 반전은 지난해 이재용 회장의 과감한 인사 개편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2024년 5월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으로 일하던 전영현 부회장을 DS부문장과 메모리사업부장에 선임했으며, 같은 해 12월 DS부문 미주총괄로 일하던 한진만 사장을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으로 발탁했다.
2000년부터 2017년까지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 D램 설계팀장, 개발실장, 전략마케팅팀장, 메모리사업부장 등을 담당한 전 부회장은 설계·개발·사업 모두를 경험해 적임자로 꼽혔다.
전 부회장은 HBM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HBM 제작의 기초가 되는 D램 공정의 재설계를 지시하기도 했다. 또 엔비디아 본사를 여러 차례 방문하며 직접 삼성전자의 HBM 경쟁력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적자 행진을 이어가던 파운드리 사업부를 개선하기 위해 한진만 사장을 파운드리사업부장으로 선임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첨단 3나노(㎚·1㎚는 10억분의 1m) 공정에서 대만 TSMC에 밀리며 점유율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한 사장은 D램과 플래시 메모리 설계팀을 거쳐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개발팀장, 전략마케팅실장 등을 역임해 반도체 기술 전문성을 갖췄으며, 미국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DSA총괄 부사장으로 일하며 북미 고객사 대응 경험이 풍부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 회장은 파운드리 고객사 확보를 위한 행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최근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와 테슬라의 163억 달러(약 23조 6천억 원) 규모의 2나노 공정 반도체 장기 공급 계약은 이 회장의 작품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 7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파트너십이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 논의하기 위해 삼성전자 회장과 고위 경영진과 화상회의를 했다”고 밝혔다.
이외에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올해에만 닌텐도의 메인 반도체와 애플의 이미지센서, 퀄컴의 모바일 어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주요 고객사 수주에도 성공했다.
이 회장은 지난 7월 말에서 8월 초 HBM 협력을 위해 엔비디아 미국 본사를 직접 방문, 젠슨 황 CEO와 회동하며 차기 HBM4 공급에 대한 논의를 하기도 했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2025년 8월2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윌라드 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리셉션에서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28일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과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해 주요국 정상 및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들과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황 CEO와의 공식 회동도 성사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어닝 서프라이즈’는 4분기부터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신증권은 삼성전자가 올해 4분기 매출 81조6400억 원, 영업이익 12조1400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4분기 DS 부문 영업이익이 8조5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또 올해 전체 영업이익은 35조6천억 원, 내년 영업이익은 58조6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3분기 SK하이닉스를 제치고 다시 메모리반도체 매출 점유율 1위를 탈환했다. 삼성전자의 메모리반도체 매출은 직전 분기보다 25% 급등한 194억 달러(약 27조7400억 원)에 달했다.
최정구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연구원은 “범용 D램과 HBM의 회복세가 이어지며 4분기에도 삼성전자가 메모리 시장에서 1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빅테크 기업들의 AI 투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에서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실적은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내년 6세대 HBM4의 엔비디아 공급을 노리며 HBM에서도 SK하이닉스를 빠르게 추격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글로벌 8대 빅테크 기업의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올해 600조 원 수준에서 2026년 741조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HBM 실기, 파운드리 적자 누적 등으로 위기감이 팽배했던 삼성전자 DS 사업 부문은 최근 자신감을 회복한 듯한 모습이다.
이를 반영하듯 이날 삼성전자는 중장기 성과 창출에 대한 임직원 동기부여를 위해 성과연동 주식보상(PSU·Performance Stock Units) 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올해를 기점으로 2028년까지 3년 뒤 주가 상승 폭에 따라 임직원에 자사주를 비례해 지급키로 했다. 이달 중 클래스(CL) 1~2 직원에는 200주, CL 3~4 직원에는 300주씩 3년간 분등 지급하는 약정을 맺고, 3년 뒤 주가 상승 폭에 따라 지급 주식 수량을 추가로 배정하는 방식이다.
주가 상승 폭에 따른 지급 배수는 오는 15일 기준주가와 2028년 10월 13일 기준주가를 비교해 상승률이 ▲ 20% 미만 시 0배 ▲ 20~40% 미만 시 0.5배 ▲ 40~60% 미만 시 1배 ▲ 60~80% 미만 시 1.3배 ▲ 80~100% 미만 시 1.7배 ▲ 100% 이상 시 2배다.
삼성전자는 올해 1월부터 임원들을 대상으로 초과이익성과급(OPI) 주식보상제를 시행 중인데, 이를 일반 직원들로 확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아직 삼성전자의 반도체 위기가 끝났다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3분기 큰 폭의 반도체 실적 개선 시황 개선 영향이 큰 것으로, 아직 완전한 위기 극복이라고 말하긴 어렵다"며 “내년 HBM4 공급 실적이 어떻게 나오는지, 파운드리 2나노 공정 수율(정품 비율) 향상과 추가 대형 계약이 이어지는지 여부가 위기 극복과 기술 리더십 회복의 판단 잣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