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들이 2023년 10월8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을 찾아 한글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10월9일은 제579돌 한글날이다.
한글날은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세종대왕의 성덕과 위엄을 기리기 위해 지정된 기념일이다. 아울러 이른바 '빨간 날'이며 대체공휴일이 적용되는 공휴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원래부터 빨간 날은 아니었다.
10월9일이 한글날이 되기까지, 법정공휴일이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글날의 유래와 역사를 살펴봤다.
◆ 제 첫 이름은 '가갸날', 원래 11월4일이었다.
세종 25년인 1443년, 한글은 창제 당시 이름이 '훈민정음'이었다. 양반들은 한글을 얕잡아 부르는 '언문'으로도 많이 불렀다. 개화기 때는 한글에 대한 가치가 높아지면서 '정음', '국문' 등의 명칭도 많이 사용됐다.
그러다가 1910년대부터 주시경 선생의 영향으로 '한글'이라는 말이 사용됐다. 주시경 선생이 만든 조선어연구회(현 한글학회)는 일제 강점기였던 1926년 처음 한글날을 제정했다.
▲ 주시경 선생. < KB국민은행 유튜브 채널 영상 가운데 '한글의 수호자, 독립운동가 주시경' 영상 갈무리 >
기념일은 조선왕조실록의 훈민정음 반포 기록을 바탕으로 음력 9월29일로 결정했다. 이는 양력 11월4일이었다. 명칭은 한글을 처음 배울 때 나오는 두 글자에서 따온 '가갸날'이었다.
그러다 2년 뒤인 1928년 명칭을 '한글날'로 바꾸면서 지금의 이름이 자리 잡았다.
한글날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 한글의 원리와 용법을 설명한 해설서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이 발견되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이 책에 훈민정음은 세종 28년인 1446년 '9월 상한(상순)에 완성했다'는 내용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조선어학회에서는 '9월 상한(상순)'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10일, 즉 양력 10월9일을 한글 반포일로 삼았다. 정부는 1945년부터 이날을 한글날로 기념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10월9일에는 한글 반포 500돌 기념으로 한글날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했다.
이후 1949년 6월4일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대통령령 제124호)이 최초로 제정되면서 국경일, 일요일, 추석 등과 함께 한글날도 법정공휴일로 법률에 명시됐다. 그러나 국경일은 아니었는데 당시 국경일은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등이었다.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한글날도 정권에 따라 적잖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 '한글전용의 아버지', 박정희
▲ 박정희 대통령. <대통령기록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11번의 '한글날 담화문'을 냈고 한글전용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한글전용은 우리말을 적을 때 한자나 영문을 쓰지 않고 한글만을 쓰는 것을 말한다.
1948년에 한글전용이 법에 명문화됐음에도 공문서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한자가 병용됐다. 박 전 대통령은 1968년부터 한글전용 작업을 시작해 1970년 전격 시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박 전 대통령은 1965년 한글날 담화문에서 "세계 어떤 민족도 제 나라 글자를 위해서 기념하는 날을 가지는 민족은 없다. 우리 민족만이 가진 특유한 자랑거리"라며 "우리가 글자만을 자랑하기보다, 그 글자를 통한 높은 문화를 자랑하고 또 그 문화를 통한 우리들의 높은 생활을 자랑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 "노는 날이 너무 많다",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한 노태우
▲ 노태우 대통령. <대통령기록관>
한글날은 1991년 달력에서 지워지는 '비운'을 맞았다. 10월에 통상 추석 연휴가 있는 데다 개천절(3일)을 비롯해 쉬는 날이 너무 많아 경제 발전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0년 한글날을 보름여 앞둔 9월22일 중앙일보 창간 25돌 특별회견에서 "한창 일해야 할 가을철에 쉬는 날이 너무 많아 수출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올해는 종전대로 공휴일로 지내고 내년부터는 기념일로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한글날은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이는 경영자총협회(경총)가 10월에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불만을 제기하자 이를 수용한 것이다.
◆ '국경일'의 노무현, '공휴일·세종대왕 동상'의 이명박
▲ 노무현 대통령<노무현사료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한글날을 국경일로 격상시키는 방안을 검토해 2005년 이를 실현했다. 법안 통과가 2005년 말이었던 탓에 첫 국경일 한글날은 2006년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한글날 경축사에서 "한글날이 국경일이 된 것을 계기로 우리말과 글을 더욱 아끼고 발전시켜 나가자. 그래서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여 나가자"라며 "정부도 한글의 정보화, 세계화를 적극 추진하는 등 국어의 보전과 발전에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없는' 서울 세종로에 세종대왕이 들어선 것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10월9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종대왕 동상 제막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영상역사관>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10월9일 세종대왕 동상 제막식에서 "세종대왕 같은 위대한 지도자를 가졌다는 것은 민족의 큰 자랑이다. 특히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은 겨레의 보물"이라며 "독립일이나 승전일을 기념하는 나라는 많지만 문자를 만든 날을 국경일로 기념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세종대왕 동상은 한 손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펼쳐 드록 있다.
이후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 국회가 '한글날 공휴일 지정 촉구 결의안'을 채택해 이듬해인 2013년부터 다시 법정 공휴일로 지정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공휴일에서 제외한 지 22년 만에 달력에 붉게 표시되기 시작됐다.
'세계 최고'의 문자 한글을 가진 대한민국. 그런데 요즘 '우리말 파괴' 현상이 자주 등장한다. 오늘만큼은 신조어나 외래어를 사용하기보다는 올바른 우리말 표현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