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지금은 오히려 미국 경기침체 우려가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각) 메릴랜드주 앤드류스 합동기지로 돌아온 뒤 에어포스원에서 내린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지난해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트럼플레이션(Trumplation)이라는 말이 나왔다.
‘트럼프’와 ‘인플레이션’을 합성한 말이다. 고율 관세 등 보호무역주의, 감세, 재정지출 확대 등을 공약으로 내건 트럼프가 당선됐으니 트럼프 발 인플레이션이 초래될 것이라는 예상을 담은 신조어다.
그의 취임 10개월이 되면서, 예상과 달리 인플레이션이 아직은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대신 경기침체의 징후가 보인다. 인플레이션보다는 오히려 경기침체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지난 5일 발표된 미국의 8월 일자리 증가 및 실업률은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국의 고용 증가세는 8월 들어서도 크게 부진했고 실업률은 4.3%로 4년 반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노동부가 발표한 비농업 일자리 수는 8월에 2만2천 개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는 로이터가 조사한 전문가 예측인 7만5천 개를 크게 하회한다.
일자리는 지난 6월에 1만3천 개가 오히려 감소하면서 미국의 구직시장이 침체하는 등 경기가 냉각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런 일자리 감소는 지난 2020년 12월 이후 처음이었다. 7월 들어서 일자리는 다시 7만9천 개 늘었다가, 8월에는 그 증가세가 2만2천 개로 3분의1토막 난 것이다.
지난달 1일 트럼프 대통령은 노동부가 미국의 고용 상황이 지난 6월 등 최근 3개월 사이에 상당히 악화했음을 보여주는 통계치를 발표하자 해당 통계가 조작됐다며 전임 행정부가 임명했던 에리카 맥엔타퍼 노동통계국장을 해임했다.
그러고는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E. J. 앤토니를 후임 국장으로 지명했다. 이날 보고서는 맥엔타퍼 노동통계국장을 전격 경질한 이후 나온 첫 번째 보고서다. 하지만 미국 노동시장 냉각이라는 현실이 바뀌지는 않았다.
트럼프가 밀어붙이는 고율관세의 효과는 가을부터 물가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구직시장 냉각이 확인됨으로써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로 접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4월 사이 월 평균 12만5750명의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자가 발생했는데 지난 6~8월 동안에는 2만9천 명으로 줄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낸 제이슨 퍼먼은 미국 경제는 이미 둔화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11월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2.1%으로 예상됐는데 현재 1.2%다. 근원 인플레이션은 2.2%로 예상됐는데 현재 3.0%다.
8월 고용 수치가 나오자, 언론과 전문가들은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로이터는 전문가를 인용해 “경제가 경기침체 주변에 최대한 바짝 붙어서 미끄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리카 그로센 전 노동통계국 위원은 파이낸셜타임스의 “미국 일자리 성장이 멈추면서 도널드 트럼프의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8월의 고용 부진을 두고 “아주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라며 “경제에 노란불이 번쩍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미국 경제가 본질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있는 것”이라며 “3개월 평균 증가가 2만9천개라는 것은 우리 같은 규모의 경제에서는 기본적으로 증가세가 0임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로이터는 연준의 금리인하가 유일한 방법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전했다. 트럼프가 그동안 줄기차게 원하던 것이다.
트럼프는 8월의 고용 수치가 나왔던 당일인 지난 5일 집무실에서 “제롬 ‘투 레이트’ 파월은 오래 전에 금리를 낮춰야만 했다”며 “평소대로 그는 ‘너무 느리다’”고 소셜미디어에 적었다. 파월 연준 의장 이름의 중간에 ‘너무 느리다’라는 뜻의 ‘투 레이트’(too late)라는 중간 이름을 끼워 놓고 조롱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9월에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금리인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에 앞서, 시장에서는 연준이 9월부터 연말·연초까지 2달에 한 번씩 0.25%포인트 정도의 금리인하를 예상했는데 이제는 매달 금리인하를 점치고 있다.
오는 9월16~17일 정책회의에서 0.5%포인트 빅컷도 예상된다. 연준은 1년 전에 0.5%포인트 빅컷 금리인하를 했다.
문제는 금리인하로 가는 데 ‘장애’와 ‘부작용’이 널려 있다는 것이다.
우선 현재 연준의 정책금리인 4.25~4.5%는 1년 전에 비해 1%포인트 낮은 것으로 중립금리에 거의 근접했다는 평가이다. 즉, 성장을 자극하지도 않고 억누르지도 않는 금리 수준이라는 것이다.
▲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지난 7월30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의 금리 정책 성명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파월 의장은 지난 8월22일 와이오밍 잭슨홀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 연설에서 근래 들어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중립금리’가 상승했다고 말했다.
물가나 고용을 자극하지 않는 적정 수준의 금리인 중립금리가 상승했다는 말은 현재 금리를 쉽게 내릴 수 없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4%대인 현 금리가 중립금리임을 시사한 것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1년 전에 비해 줄어들었으나 연준의 목표치인 2%보다는 여전히 높고 현재 3%에 근접한다. 트럼프의 고율 관세 영향이 가을부터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금리를 인하하면 이미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는 증시 등 자산시장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 이미 증시 등 금융시장에서 버블이 심하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금리를 내리면 트럼프 행정부가 올인하는 가상화폐의 버블이 폭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커진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뒷받침하는 지니어스 법을 통과시켰다. 트럼프 행정부가 밀어붙이는 스테이블코인은 버블을 폭발시켜, 납세자의 돈으로 구제금융 사태를 야기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201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장 티롤은 스테이블코인을 미국 달러와 국채로 연계하는 것 자체가 위기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미 국채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을 내는 것이다. 미 국채는 마이너스 수익률이 나는 경우가 있고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그 수익률은 더욱 적어진다. 스테이블코인은 금리가 떨어지면 수익성이 악화된다.
이렇게 되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들은 더욱 높은 수익과 위험한 자산 쪽으로 유혹을 느낄 것이다. 이는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더욱 높일 것이다.
스테이블코인들은 발행 회사들의 주가가 고평가됐다는 지적으로 이미 버블이 우려된다. 가상자산 정보업체인 10x리서치는 대표적인 스테이블코인 중의 하나인 USDC의 발행사인 서클의 주가가 현재 선행 주가수익비율 153배에 거래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주가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금 등 대부분의 자산 모두가 정점을 찍는 상황이다. 그런데, 미국 경제는 이제 고율 관세에 의해 다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시지 않는 상황에서 고용침체, 그리고 금리인하로 버블 심화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럼프 시대의 경제 용어는 트럼플레이션이 아니라 트럼프와 경기침체(recession)을 합친 트럼프세션(Trumpcession, 트럼프 경기침체)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이는 1970년대 인플레이션 속에서 경기침체가 지속된 스태그플레이션에 더해 버블까지 끼어서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경제 상황이다.
트럼프세션은 인플레이션, 경기침체, 버블 폭발에 따른 전방위적 금융위기의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다. 정의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