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초격차’를 꿈꾸는 강소 스타트업이 있다. 바이오, 헬스케어, 모빌리티, 반도체, AI, 로봇까지 시대와 미래를 바꿀 혁신을 재정의하며, 누구도 쉽게 따라오지 못할 ‘딥테크’ 혁신을 만든다. 창간 12년, 기업의 전략과 CEO의 의사결정을 심층 취재해 온 비즈니스포스트가 서울 성수동 시대를 맞아 우리 산업의 미래를 이끌 [초격차 스타트업] 30곳을 발굴했다. 연중 기획으로 초격차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지속 가능한 기술적 혁신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한다. |
▲ 강희진(왼쪽부터), 윤세용 로보톰 대표.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천장에서 침대가 내려오자 거실은 바로 침실로 변했다. 이윽고 벽면이 움직이니 드레스룸이 펼쳐진다.
‘로보틱스 가구(Robotics furniture)’가 적용된 공간은 마치 살아 움직이듯 모습을 바꾼다.
로보틱스 가구는 윤세용, 강희진 대표가 지난 2022년 창업한 로보톰에서 ‘스테이지핸즈(Stagehands)’ 브랜드를 통해 내세우는 솔루션이다. 로봇과 가구를 결합한 말로 사용자의 요구에 맞춰 변화하도록 설계된 가구 등을 통해 상황과 용도에 따라 가변적인 위치, 형태를 유지하며 공간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게 해 준다.
“건축, 부동산 관련 사업을 해보면서 공간의 가치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공간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변화를 주면 공간의 효율성, 가치를 높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윤 대표가 공간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는 중에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은 로보톰을 창업하자는 결심에 한층 힘을 보탰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사람들이 ‘집에 갇혔다’는 표현을 많이 썼습니다. 저는 이런 인식이 충격적인 큰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에 오래 있으면 갇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잖아요? 왜 그런지 생각해 보면 집이 좁거나 기능을 잘 못하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주거 공간이 부족한 도심의 문제죠. 이걸 좀 해소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로보톰의 로보틱스 가구들은 우선 일상 주거공간에의 적용을 목표로 두고 개발되어 출시했다.
강 대표는 로보톰의 제품이 일상에서 밀접하게 사용되는 제품인 만큼 다양한 상황에서의 안전성을 비롯해 사용의 편의성, 디자인 등 다양한 특면에서 고도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로보틱스 가구들은 집에서 밀접하게 움직이는 구조물이니 구동할 때 조용해야 하고, 살짝 부딪혀도 바로 멈춰야 하고, 집안의 다른 인테리어와 위화감도 없어야 하는데 이 조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정말 세세하게 많은 기술들이 요구됩니다. 어린아이나 어르신 혹은 반려동물이 있는 상황까지 고려해도 이용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고도화했고, 이 정도로 고도화 수준을 높여야 판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보톰의 기술은 중소벤처기업부의 ‘2025 초격차 스타트업 1000+’의 민간검증 트랙 4개사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는 등 혁신성을 인정받고 있다.
가구 기업을 비롯해 주요 건설사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GS건설은 로보톰에 직접 투자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국내에는 로보톰과 같이 가구 혹은 인테리어에 로보틱스 기술의 접목을 시도하는 기업이 없다. 로보톰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인 셈이다.
퍼스트 무버로서 겪는 어려움이 녹록치 않으리라 짐작되지만 윤 대표는 오히려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저희와 비슷한 기업은 아직 국내에 없습니다. 게다가 설치형 로보틱스 가구는 건축 구조도 아니고 가구도 아니다 보니 규제의 사각지역 영역이 있어요. 하지만, 안전과 품질, 소비자 만족도를 위해 저희가 자체적으로 연구를 통해 내구도는 몇 만 회 구동 이상, 소음은 몇 데시벨 이하 등은 되어야 납품이 가능하다는 기준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저희가 설정한 기준을 정책 마련 단계에서 제안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업계 표준을 세워가는 것도 목표 가운데 하나입니다.”
▲ 바닥과 천장을 수직으로 이동하는 침대 씰리(왼쪽)와 벽면 이동형 가구인 월리의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
인터뷰를 마친 뒤 로보톰 내 마련된 체험 공간에서 실제 로보틱스 가구가 설치된 공간을 살펴봤다.
로보톰의 스테이지핸즈는 현재 천장에서 내려오는 침대인 씰리(Ceily)와 벽면 가구가 움직이며 수납공간을 만들어 주는 월리(Wally) 등을 선보이고 있다.
씰리의 작동 버튼을 누르고 천장에서 육중한 침대가 바닥으로 내려오기 시작하자 바로 ‘어?’하고 감탄사가 나왔다. 무의식적으로 자그마한 모터 소음이라도 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침대가 움직이는 동선에 사람이 들어가자 바로 작동을 멈췄다. 멈춘 상태에서 손가락으로 가볍게 힘만 주어도 침대를 다시 천장으로 올리거나 바닥으로 내릴 수 있다.
스테이지핸즈 쇼룸에 방문하기 전에 영상으로 이미 구동되는 장면을 봤음에도 실제로 접한 로보틱스 가구는 기대 이상으로 완성도가 높았다. 가구나 장치가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그 자체가 내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반응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감탄하는 기자에게 강 대표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로보톰의 브랜드인 스테이즈핸즈는 안 보이는 곳에서 주인공을 위한 최고의 무대를 만드는 기술자들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우리 기술은 뛰어나지만, 기술이 주인공이 아닌 로봇이 만들어준 공간에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공임을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저희 제품으로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보고 싶습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