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22일 단통법 폐지에 이어 오는 9일에는 아이폰 신제품 발표도 예정돼 있지만, 이동통신 시장은 갈수록 침잠하는 모습이어서 번호이동을 통한 단말기 교체를 계획 중인 가입자들을 몸달게 하고 있다. 이미 번호이동 건수 등은 SK텔레콤 해킹 사태 발생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모습이다. |
[비즈니스포스트] "고객님! SK텔레콤이 고객 이탈 방지 차원에서 쓰던 단말기를 새 것으로 바꿔드리는 정책을 펴고 있어요. 삼성전자 최신 폴더폰으로 교체하는 것도 가능하니 이 참에 바꾸세요."
휴대전화 벨이 울리길래 받았더니 대뜸 'SK텔레콤 이동통신 마케팅센터'라며 속사포를 쏘듯 이런 제안을 늘어놓는다. "제 단말기 아직 쓸만 합니다"라고 거듭 말해도 "단말기를 새 것으로 바꿀 좋은 기회이니 이 참에 바꾸세요"라고 계속 채근한다.
전화를 끊은 뒤 문득 '이런 텔레마케팅 전화를 받는 게 얼마 만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단말기 교체 권유 텔레마케팅 전화를 받은 게 꽤 오래됐다. SK텔레콤 해킹 사태 발생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기자 가족들은 모두 SK텔레콤 이동통신을 쓰고 있고, 이전에는 거의 한 두 달 간격으로 텔레마케킹 전화가 걸려왔었다.
개인정보가 유출돼 텔레마케팅 업계에 돌아다니는 것 아닌가 의혹을 갖게 했다.
이후 이동통신사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오랫만에 텔레마케팅 전화를 받은 사실을 전하며 시장 분위기를 물었다. "SK텔레콤 해킹 사태 이전 모습으로 돌아갔다"는 설명이 주를 이뤘다. 이동통신 3사 간 번호이동 수치 증감 흐름을 근거로 내세운다.
통신 3사 간 번호이동 건수는 8월 중순 이후 8천여 건으로 줄었다. SK텔레콤 해킹 발생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지난 4월 SK텔레콤 해킹 뒤에는 이 업체 가입자 이탈 영향으로 하루 번호이동 건수가 1만~2만 명대로 높아졌고, 때로는 4만 명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SK텔레콤 번호이동 순감 내지 순증 건도 하루 평균 수십명 정도로 역시 해킹 사태 이전 모습으로 돌아갔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집계에 따르면, 지난 8월 번호이동을 한 이동통신 가입자는 64만4600 명으로 SK텔레콤 해킹 사태가 발생한 4월의 69만900 명보다 적었다.
단말기 유통법 폐지(7월22일) 뒤 SK텔레콤이 반격에 나서며 이동통신 시장이 달궈질 것이란 전망이 많았으나, 아직까지 현실화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럼 앞으로는?
이동통신 가입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점이다.
이동통신사 관계자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 이유로는 우선 KT와 LG유플러스의 올해 가입자 유치 목표가 SK텔레콤 해킹 사태 덕에 초과 달성된 점이 꼽혔다. 연말 인사 때 승진과 자리 유지 내지 성과급을 받는데 필요한 수치가 충분히 채워졌단다.
KT와 LG유플러스 쪽에선 애써 공격적 영업에 나설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방어 마케팅'만 해도 된다. 괜히 실적을 더 올려봤자 내년 목표치만 높아질 뿐이다.
시장이 달궈지려면, SK텔레콤이 빼앗긴 가입자 수를 되찾기 위해 단말기 보조금을 높이고, KT와 LG유플러스가 가입자 방어를 위해 따라 높이는 '장군 멍군' 식 마케팅 경쟁이 일어나야 하는데, 이동통신사 관계자들은 "기대하지 말라"고 입을 모은다.
SK텔레콤 쪽 역시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처지라는 게 이유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SK텔레콤 쪽에서는 영업이익 보호를 위해 마케팅 비용을 절감할 필요가 있고, 자칫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개인정보 유출 과징금을 감경받은 것으로 가입자 빼오기 마케팅에 나선다는 프레임에 말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할 수 있다"고 짚었다.
▲ SK텔레콤 해킹 사태에 대한 책임 추궁이 끝나기도 전에 KT와 LG유플러스 해킹 의혹이 불거져 이동통신 시장 경쟁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가입자 쪽에서 보면 '그 놈이 그 놈'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비즈니스포스트> |
더욱이 SK텔레콤은 '신뢰 회복' 모습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옛 집토끼'를 다시 데려오는 마케팅에 좀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2년 내 다시 돌아오면 기존 가입 연수와 T멤버십 등급을 유지시켜주기로 했다.
SK텔레콤 해킹 사태 발생 뒤, 사상 최악 수준의 해킹을 당한데다 사후 대처까지 바닥 수준인 것에 실망해 SK텔레콤을 이탈한 가입자 수만 110만 명이 넘는다.
다른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SK텔레콤이 당분간은 '야생 토끼'(경쟁업체 가입자)를 유인하기 위해 단말기 보조금을 지르는 등의 공격적 마케팅에 나설 것 같지는 않다"고 내다봤다.
오는 9일로 예정된 아이폰 신제품 출시를 계기로 시장이 다시 가열될 것이란 전망도 있지만, 그 역시 크게 기대할 게 못된다는 관측도 나온다.
SK텔레콤 측에서 보면, 10월로 예상되는 국정감사 때 해킹 사태에 대한 질책이 쏟아질텐데, 잡음을 일으켜 매를 벌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자칫 위약금 면제 기한 연장과 결합상품 위약금 면제 요구에 불을 붙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는 것이다.
SK텔레콤 해킹 사태에 대한 책임 추궁이 끝나기도 전에 KT와 LG유플러스의 해킹 의혹이 불거진 것도 시장 경쟁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된다.
한 이동통신사 임원은 "아직 뚫린 흔적 등이 분명하게 드러난 게 없긴 하지만, 소비자 정서 상으로는 이미 KT와 LG유플러스도 SK텔레콤과 같이 해킹 진흙탕에 빠진 꼴"이라며 "이동통신 이용자 쪽에서 보면 '그 놈이 그 놈'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