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2025-08-28 14: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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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7월에 이어 또 다시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한 박자 더 쉬어갔다.
역대 최대 수준으로 벌어진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차 탓에 선제적 인하가 부담스러웠던 상황에서 예상보다 단단했던 경기상황이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뒷받침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여전히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0%대에 머무는 만큼 다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의 움직임 등을 고려해 기준금리 인하를 재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창용 총재는 28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이후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경기가 예상보다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내수를 보면 건설투자 부진이 이어졌지만 민간소비가 추경과 경제심리 회복으로 개선세를 이어가고 있다”며 “수출도 미국의 관세 인상에도 불구하고 반도체와 자동차를 중심으로 예상보다 양호한 증가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이를 바탕으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8%에서 0.9%로 소폭 올려 잡았다.
경기 개선사항을 세부적으로 보면 2차 추경과 경제심리 개선으로 소비회복세가 예상보다 커진 점이 올해 전망치를 0.2%포인트 정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반도체 경기 호조가 예상보다 길게 이어지고 자동차 수출이 양호한 흐름을 보인 것도 전망치 0.2%포인트 추가 상향 요인이 됐다.
다만 부진한 건설경기가 전망치를 0.3%포인트 정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해 전체 개선폭은 0.1%포인트에 그쳤다.
이 총재는 이번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이전보다 더 낮게 나왔다면 경기부양을 위한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더욱 강하게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소폭이나마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기존보다 높게 나오며 7월에 이어 다시 한 번 숨 고를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 총재는 한국과 미국의 정상회담이 우려와 달리 별탈 없이 마무리된 점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높여 잡는 데 기여했다고 봤다.
그는 “금통위를 앞두고 정상회담이 열려 여러 걱정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런데 결과가 굉장히 긍정적이었고, 특히 8월 초 관세협상 결과와 큰 차이가 없어 다행스럽게도 저희가 준비하던 거에서 크게 전망치를 바꿀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만일 정상회담 결과가 8월 초 협상 결과와 다르게 나왔다면, 성장과 금융안정 사이 상충관계가 굉장히 심해져서, 이번에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결정을 내리기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다만 현재 국내 경제상황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는 점도 강조하며 한미 관세협상의 재촉발 가능성, 미국 공장 이전에 따른 노사 갈등,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 등을 경기 하방 요인으로 꼽았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경기 부양을 위한 구조적 변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총재는 “미국 같이 큰 나라도 2%가 넘는 잠재성장률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인구 고령화 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1% 밑으로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외국인 노동자 활용방안 등 중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이 총재가 다음 열리는 10월 금통위에서는 경기부양 등을 위해 기준금리 인하를 재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금통위에서도 이 총재를 제외한 위원 6명 가운데 5명이 향후 3개월 내 기준금리를 현재 2.5%보다 낮은 수준으로 내려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 총재도 “안정된 물가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내년 상반기까지는 낮은 성장세가 지속돼 기준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연준이 다음 금통위의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이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낮출 가능성도 한국은행의 10월 기준금리 인하 전망에 힘을 싣는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이는 현재 2%포인트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내외금리차가 커지면 국내 자금의 해외 유출로 이어져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이는 이 총재가 선제적으로 기준금리 인하카드를 선택하는 데 부담요인으로 꼽혔는데 미국이 10월 금통위 이전 기준금리를 먼저 내린다면 이런 부담이 사라지게 된다.
미국은 9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시장은 최근 ‘정책 조정’을 언급한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의 잭슨홀 연설 등을 바탕으로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 총재 역시 내외금리차를 주요 변수로 보고 통화정책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현재 내외금리차가 역사적으로 가장 큰 2% 수준인 상황에서 미국 금리가 어떻게 되는지, 우리 경기 상황에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견해도 많다”며 “내외금리차도 하나의 리스크요인으로 보면서 금리 정책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