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서울대 교수 최재원 "스테이블코인 미국과 한국은 다르다, 우린 아직 공룡이 없다"
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2025-08-27 16: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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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미국과 한국은 다르다.”
27일 서울 여의도 ONE IFC에서 열린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발전방향’ 산학협동연구포럼에서 최재원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이렇게 강조했다.
▲ 최재원 교수가 27일 서울 여의도 ONE IFC에서 열린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발전 방향' 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미국에서 최근 지니어스법안(스테이블코인 국가 혁신 지침법) 등이 통과되며 국내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한국은 미국과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영화 ‘쥬라기 공원’을 예로 들어 미국과 한국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이미 제도권 밖에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이라는 거대한 티라노사우르스가 뛰노는 가운데 여러 법안을 통해 이를 쥬라기 공원이라는 제도권 안으로 가지고 오려는 것”이라며 “우리는 아직 공룡도 없는 상황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 공룡을 부화시키려고 하는 단계”라고 바라봤다.
달러 스테이블코인과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가장 큰 차이로는 ‘수요’를 들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에 대한 초과 수요를 바탕으로 미국국채 수요 증가와 달러 패권 강화 등을 이끌 수 있지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가상화폐 거래용으로도, 역외 송금용으로도 수요가 없어 필요성이 낮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지니어스 법안은 거대한 역외 스테이블코인의 미국 회귀를 유도하지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현재 수요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제도화의 명분과 실익이 비교적 약하다”며 “섣부른 제도화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공급자의 경쟁적 시장 진입 등에 따라 금융 안정성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향후 디지털자산 생태계에서 혁신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만큼 엄격한 규제 아래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진행해야 한다고 바라봤다.
그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아직 유전자 조작 단계지만 일단 나오고 나면 상황에 따라 랩터가 될 수도, 브라키오사우르스가 될 수도 있다”며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생태계 조성을 위한 필수 인프라로 생태계 미비에 따른 우수 인재와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서도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소비자보호 측면에서도 스테이블코인 관련 제도화가 시급하다고 바라봤다.
최 교수는 “국내 스테이블코인 입법이 시급한 이유 중 하나는 테더 등 역외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가 없다는 점”이라며 “미국의 지니어스법안처럼 국내법을 준수하지 않거나 국내 기준에 미달하면 국내 거래소 유통을 불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소비자보호와 금융안정 리스크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은 승자가 독식하는 네트워크 효과가 강한 시장으로 과도한 경쟁은 금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최소 자본금도 인터넷은행 수준으로 높이고 자본금 요건뿐 아니라 최소 자본비율 등의 규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바라봤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사실상 은행처럼 레버리지와 예대마진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만큼 자본 규모뿐 아니라 자본비율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발표자로 나선 윤성관 한국은행 금융결제국 디지털화폐연구실장은 “금융인프라 측면에서 스테이블코인은 근본적 한계를 지닌다”며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구축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미래 스테이블코인은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와 스테이블코인의 한 형태인 예금토큰(은행 예금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자산으로 발행한 것)이 중심이 될 것”이라며 “지금과 마찬가지로 결국 중앙은행이 최종 방어선(back stop)역할을 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날 포럼은 한국금융정보학회와 한국파생상품학회, 서울RISE성균관대사업단이 공동 주최했다. 포럼이 열린 ONE IFC 17층 중형강의실 70여 석은 행사 시작 전부터 가득 찼다.
학계뿐 아니라 국내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 카드사, 자산운용사 등 금융사 관계자들이 찾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금융권의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 윤창현 코스콤 사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ONE IFC에서 열린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발전 방향' 포럼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21대 국회의원으로 정무위에서 활동하며 가상화폐 제도화에 힘썼던 윤창현 코스콤 사장도 직접 포럼장을 찾아 스테이블코인 관련 논의에 힘을 보탰다.
윤 사장은 축사에서 “처음에는 비트코인이 달러를 대체한다고 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비트코인은 머니(통화)가 아니라 에셋(자산)이 돼 버렸고, 그 자리를 메꾸기 위해 지금은 스테이블코인이 떠올랐다”며 “시장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코스콤도 스테이블코인의 발행과 유통에 관심을 갖고, 스테이블코인과 시큐리티토큰(토큰증권)을 연결하고 결제일을 현재 T+2에서 T+0으로 앞당기는 작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며 “열심히 노력해서 많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한국금융정보학회장을 맡고 있는 송교직 서울RISE성균관대사업단 교수는 개회사에서 “스테이블코인의 본격 도입은 통화정책의 유효성, 금융시장의 안정성 등에 미칠 잠재적 영향력이 커 이에 대한 찬반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며 “스테이블코인의 발전방향을 지속해서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