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초격차’를 꿈꾸는 강소 스타트업이 있다. 바이오, 헬스케어, 모빌리티, 반도체, AI, 로봇까지 시대와 미래를 바꿀 혁신을 재정의하며, 누구도 쉽게 따라오지 못할 ‘딥테크’ 혁신을 만든다. 창간 12년, 기업의 전략과 CEO의 의사결정을 심층 취재해 온 비즈니스포스트가 서울 성수동 시대를 맞아 우리 산업의 미래를 이끌 [초격차 스타트업] 30곳을 발굴했다. 연중 기획으로 초격차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지속 가능한 기술적 혁신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한다. |
▲ 이진모 에어빌리티 대표.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지난 6월, 안전 줄에 묶인 기체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수없이 반복된 실패와 설계 수정 끝에 마침내 하늘을 나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기체 시험비행이 아니었다. 한 스타트업이 미래 항공 모빌리티 시장을 향한 힘찬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이진모 에어빌리티 대표의 이력은 치열한 시간의 흔적이다.
카이스트 기계공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한 이 대표는 미국 카네기멜론대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단 3년 6개월 만에 마쳤다. 일반적인 6년 과정에 비해 월등히 짧은 기간으로 탁월한 연구 역량과 성실함을 증명한, 더 나은 성장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현대자동차에 들어간 뒤에는 소음·진동 전문가로서 세계 최초 ‘로드노이즈 능동소음 제어 기술’을 이끌었다. 이어 MIT 미디어랩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차량 내 감정 인식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땅 위를 달리는 자동차가 아닌 하늘을 나는 무언가를 생각하게 됐다.
“대기업 연구소에서 보내는 시간도 나름대로 의미 있었지만, 제 인생이라는 자산을 더 밀도 있게 쓰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2023년 에어빌리티는 창업했다.
에어빌리티가 세상에 내놓은 첫 기체는 ‘AB-U60’. 활주로 없이 헬리콥터처럼 수직으로 뜨지만 하늘에서는 비행기처럼 시속 200㎞의 속도를 내며, 한 번 충전으로 100㎞ 이상 비행할 수 있다.
올해 2월 첫 실물이 공개된 AB-U60은 단순한 드론이 아니다. 불법 드론을 무력화하는 안티드론 솔루션, 산불이나 홍수 같은 재난 현장의 긴급 정찰, 의약품과 구호물자 수송까지 항공 모빌리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심지어 소화탄과 탐지 센서, 전자전 장비같은 임무 장비를 싣고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다.
하지만 에어빌리티의 시선은 이미 더 큰 목표를 향하고 있다.
“AB-U60은 단순한 무인기가 아니라, 앞으로 개발할 2인승 개인 전기항공기 AB-M1300의 설계를 축소 적용한 모델입니다. 유인기에서 출발해 무인기로 역설계한 셈이죠. 개인항공기 시장을 선도하는 것이 장기 목표입니다.”
▲ 에어빌리티가 세상에 내놓은 첫 기체 ‘AB-U60’. <에어빌리티> |
첫 비행 성공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기체는 처음 안전줄에 매달려 ‘탯줄 비행’이라는 놀림을 받았다. 제자리에서 뜨고, 자세를 제어하며, 불안정한 균형을 찾아갔다. 그리고 지난 6월, 마침내 줄을 끊고 자유롭게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때 느낀 건 단순한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내 아이가 태어난 듯, 우리가 만든 항공기가 비로소 자기 힘으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었죠.”
이 대표는 혼자가 아니었다.
국방과학연구소 출신의 전투기·무인기 전문가, 현대차에서 미래 모빌리티 디자인을 책임졌던 디자이너, 그리고 스타트업 경험을 쌓은 동료들. 다섯 명의 창업팀은 각자의 경력을 내려놓고 한 지점에서 만났다.
그는 이를 “인생의 큰 행운”이라고 표현했다.
“민군 겸용 항공기라는 무거운 길을 걷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사업화, 제품화 모두 균형 있는 팀이 필요했습니다. 이 멤버들이 함께였기에 불가능해 보였던 도전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에어빌리티는 창업 2년 만에 민간 투자 40억 원과 정부 R&D·사업화 과제 30억 원을 확보했다. 2025년 4분기에서 2026년 상반기 사이에 추가 투자 유치를 통해 AB-U60 양산과 AB-M1300 개발을 본격화하고, 2028년경 상장도 검토 중이다.
동시에 중소벤처기업부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와 딥테크 육성 프로그램 딥테크팁스에도 선정되며 성장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 에어빌리티 서울 서초구 연구소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
그의 경영 철학은 ‘존중과 배려’다.
“스타트업은 공동창업자, 임직원, 투자사, 고객 등 이해관계자가 많아 의견 충돌이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서로의 선의를 믿고 배려해야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습니다.”
10년 뒤, 그는 한국의 유인 전기항공기 산업을 선도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한국은 조선업으로 세계 최고가 됐고, 이제 미국에 기술을 전파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민간 항공은 아직 보잉과 에어버스의 무대이지만, 전기항공기에서는 한국이 도전할 차례입니다. 우리가 만든 항공기가 선진국 하늘을 누비는 모습을 꿈꿉니다.”
서울 서초구 탑성말길의 연구소에서 만난 이진모 대표의 눈빛은 이미 10년 뒤를 향해 있었다. 이제 막 탯줄을 끊고 세상에 태어난 항공기처럼, 그의 꿈도 더 높은 하늘로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