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실탄 시급, 보스턴다이내믹스 상장 전 몸집 키우기 직접 나선다
윤인선 기자 insun@businesspost.co.kr2025-08-20 14: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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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미국 로봇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사업 확대에 직접 나설 전망이다.
정 회장이 보스턴다이내믹스 상장 후 보유 지분을 처분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승계 자금을 마련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 몸값을 높이는 데 그가 직접 발벗고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미국 로봇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사실상 기술개발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 '로보틱스 앤드 인공지능 연구소(RAI)' 이사회에 직접 참여할 전망이다. 정 회장은 RAI 경영에 직접 참여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상장 전 기업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정 회장이 올해 3월26일 미국 조지아주 엘라벨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 준공식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정 회장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창립주와 공동 설립한 미국 '로보틱스 앤드 인공지능 연구소(RAI)' 이사회에 이사 멤버로 들어가 주요 사업과 개발 현안을 직접 챙길 것으로 보인다.
20일 관련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정 회장이 RAI 이사회에 이름을 올리고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시너지를 내는 데 적극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RAI(Robotics and AI Institute)는 2022년 보스턴다이내믹스 창립자 마크 레이버트가 설립한 연구소기업으로, 설립 당시 현대차그룹이 출자에 참여했다.
현대차 2025년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 이사회는 올해 5월30일 정 회장의 RAI 이사 겸업을 승인했다. 정 회장은 그동안 현대차 외에 기아, 현대모비스 등 국내 그룹 계열사 이사로 이름을 올렸지만, 해외 관계사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취재 결과 현재 RAI는 이사회를 구성 중이며, 이사회 구성이 끝나면 정 회장도 이사회 멤버로 활동할 것으로 확인됐다.
RAI는 보스턴다이내믹스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현대차그룹이 2021년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 뒤, 이듬해인 2022년 RAI를 설립했다.
최근에는 보스턴다이내믹스와 RAI의 협업도 구체화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올해 2월 RAI와 강화학습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3월에는 협업 결과물의 데모 버전을 영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그동안 개를 닮은 4족 보행 로봇 ‘스팟’을 대표작으로 내세웠지만, 이제는 휴머로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대표 제품으로 내세우며 이 분야 사업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기술 브레인 역할을 하는 RAI 중요도가 커진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미국에 210억 달러(29조3729억 원)를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보스턴다이내믹스와 RAI 협업으로 강화학습 기반의 지능형 로봇 개발 사업에도 투자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로이드 로봇 ‘아틀라스’. <현대차그룹>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 성공은 정 회장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경쟁력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사업으로 보스턴다이내믹스 상장 전 몸값을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순환출자 구조의 그룹 지배구조를 해소하고, 자신의 그룹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사실상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대폭 늘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모비스 지분은 현재 0.33%에 불과하다. 정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지분 가운데 현대모비스 지분율이 가장 낮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합쳐도 7.71%밖에 되지 않는다.
현대모비스 지분 인수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현대모비스 지분은 20일 기준으로 기아가 17.90%, 현대제철이 6.00%, 현대글로비스가 0.71%를 보유하고 있다.
정 회장이 이 계열사들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모두를 확보하려면 19일 종가인 30만2천 원 기준으로 6조8216억 원이 필요하다.
자금 마련을 위한 현금 확보 방안으로 가장 유력하게 꼽히는 것이 보스턴다이내믹스 상장 후, 정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이 회사의 개인 지분을 처분하는 것이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할 때 개인자금 2389억 원을 들여 지분 21.9%를 확보했다.
기업 총수가 개인 자격으로 기업 인수합병에 참여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당시 정 회장이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실탄을 마련하기 위해 보스턴다이내믹스에 직접 투자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올해 상반기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보스턴다이내믹스 몸값이 예상만큼 오르지 못하면서 상장 추진이 연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정 회장 입장에서는 보스턴다이내믹스 상장을 계속 미룰 수는 없는 문제다. 시장 가치가 높아지는대로 곧 상장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이 개인 자금까지 투자한 만큼, 보스턴다이내믹스 상장 가치를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일 것”이라며 “RAI 이사회에 참여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 가치를 빠르게 끌어올리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