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사퇴 요구를 받은 립부 탄 인텔 CEO가 이전부터 이사회 구성원들과 의견 충돌로 갈등을 겪어 왔다는 보도가 나왔다. 결국 미국 정부가 인텔 경영에 사실상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관측도 고개를 든다. 립부 탄 인텔 CEO. |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사퇴 압박을 받는 립부 탄 인텔 CEO가 반도체 사업 전략 방향성을 두고 이사회와 갈등을 겪고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인텔 이사회는 반도체 제조업을 중단하고 TSMC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했던 반면 립부 탄 CEO는 이를 반대했던 만큼 트럼프 정부가 직접 개입한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8일 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갈등의 중심에 뛰어들기 전부터 립부 탄 CEO는 이미 이사회 멤버들과 갈등을 빚어왔다”고 보도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인텔 이사회는 반도체 제조 사업을 계속 유지할지, 완전히 철수해야 할지를 두고 립부 탄 CEO와 의견이 엇갈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인텔의 내부 갈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립부 탄 CEO의 이해충돌 문제를 이유로 들어 그를 해임해야 한다는 요구를 내놓으면서 새 국면을 맞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텔 CEO가 심각한 이해충돌 문제를 해결하려면 즉시 사임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정확한 배경은 밝히지 않았지만 최근 미국 정치권에서 립부 탄 CEO와 중국 공산당 및 중공군의 연루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오른 점과 연관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립부 탄 CEO가 경영을 총괄하던 반도체 소프트웨어 기업 케이던스디자인시스템스는 최근 미국 법무부와 소송에서 중국 군사대학에 제품을 판매한 혐의를 인정했다.
인텔은 현재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 무리한 투자를 벌인 뒤 첨단 미세공정 기술 상용화 및 고객사 수주에 어려움을 겪으며 심각한 재무 위기에 처해 있다.
3월 취임한 립부 탄 CEO는 반도체 업계에서 ‘베테랑’으로 평가받던 기술 전문가인 만큼 인텔의 부활을 이끌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립부 탄 CEO가 취임 직후부터 인텔 이사회 의장과 의견 충돌을 겪어 왔다는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인텔 이사회 의장은 인텔이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을 중단하고 이를 분사해 다른 기업들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는 방침을 제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더 나아가 파운드리 1위 기업인 TSMC이 인텔 반도체 제조사업을 인수하도록 하는 방안도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는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립부 탄 CEO는 미국이 해외 반도체 기업에 공급망을 의존하지 않으려면 파운드리 사업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앞세워 왔다고 내부 관계자들은 전했다.
인텔이 최근 반도체 제조 설비에 투자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 규모 자금 조달을 추진하고 있었다는 점도 언급됐다.
이러한 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립부 탄 CEO의 사퇴를 요구한 것은 미국 정부가 사실상 인텔의 사업 방향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TSMC는 미국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한 뒤 인텔 반도체 제조사업 지분을 인수하거나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방안을 논의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가 대만에서 제조하는 반도체에 고율 수입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에 대비해 인텔에 자금을 대는 방식으로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려 한 셈이다.
경주간 등 대만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대만 정부와 논의 과정에서 TSMC의 인텔 지분 인수를 관세 협상에 조건으로 앞세웠다는 관계자의 말도 나왔다.
트럼프 정부가 인텔 이사회의 손을 들어주며 립부 탄 CEO를 무력화하는 등 파운드리 사업 매각 계획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정황에 더 힘을 실어주는 요소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립부 탄 CEO는 4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만나 인텔의 회생 계획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트닉 장관은 이 자리에서 인텔이 애플과 같은 대형 파운드리 고객사를 확보할 현실적 방안을 두고 있다면 정부 차원에서 인텔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재 상황을 보면 미국 정부에서 인텔의 자체 회생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결국 미국 정부가 대만과 관세 논의에서 TSMC의 인텔 지분 인수 요구를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여 이를 실현시킬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에 점차 힘이 실리고 있다.
인텔이 반도체 제조업을 중단하고 외부에 매각하는 방안을 피하더라도 립부 탄 CEO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이겨내고 자리를 지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텔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성명을 내고 “회사 전략과 관련한 경영진 및 이사회의 입장은 일치한다”며 “적극적으로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