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84제곱미터'와 '세입자'가 그리는 방식은 다르지만 청년 세대가 상상하는 대표적인 주거지로써 아파트는 짜증스럽고 무시무시한 공간이라는 점은 같다. <네이버 영화> |
[비즈니스포스트] 작년에 블랙 핑크의 멤버인 로제와 브르노 마스가 듀엣으로 부른 ‘아파트’가 세계적인 히트곡이 되었다. 국내 많은 연예인들이 따라 부르는 현상도 나타났다.
가사를 보면 아파트라는 게임을 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 게임은 진행을 위해 ‘아파트’라는 단어를 시작 혹은 중간에 반복하는 방식이다. 게임에 노래까지 나올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특별하다.
한국 최초의 아파트는 일제 강점기인 1935년 내자동에 지어진 미꾸니아파트이고, 광복 이후 최초의 아파트는 1958년 건설된 종암아파트라고 한다.
본격적인 아파트 건축은 1960년대 들어서 시작되었고, 아파트 단지라는 개념은 1962년 완공된 마포아파트에서 출발한 걸로 알려졌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파트는 한국 사회에서 특별한 주거 형태였지만 1980년대 이후 아파트 보급률도 높아지고 무엇보다 중산층 주거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시대마다 대중문화 속 아파트에 대한 이미지나 의미는 달라져왔다.
2010년 이후 청년세대가 주인공인 한국영화에서 아파트는 주로 열패감과 분노의 표출 공간으로 소환되고 있다.
장르가 달라져도 담고 있는 의미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가령 청년세대의 주거 문제를 유랑하는 주인공 미소(이솜)의 시선으로 담아 낸 <소공녀>(전고운, 2018) 같은 경우 부모 세대의 도움 없이는 다다를 수 없는 공간으로 아파트가 그려진다.
설사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했더라도 빚의 굴레에 빠져 아파트는 더 이상 안식의 공간이 아닌 감옥이 되는 현실을 보여 준다.
<84제곱미터>(김태준, 2025), <세입자>(윤은경, 2024)는 장르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청년세대가 당면한 실존적 문제를 흥미롭게 파고들고 있다.
일본영화 리메이크작 <스마트 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2022)로 데뷔한 김태준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84제곱미터> 역시 스릴러다. 아파트 층간 소음을 소재로 영끌족인 주인공 우성(강하늘)이 겪는 수난과 아파트에 숨겨진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연쇄살인마가 살고 있다거나 좀비가 출몰하는 등의 아파트 재난 서사들이 다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층간소음, 주차문제 등 보다 일상적인 다툼거리가 주요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84제곱미터>를 비롯해 올해 개봉한 <백수 아파트>(이루다, 2025), <노이즈>(김수진, 2025) 모두 아파트 층간 소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
아파트 층간 소음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심한 경우 살인 사건까지 발생하는 사례들이 뉴스에 종종 올라오기에 남의 일 같지 않은 문제다.
<84제곱미터>의 우성은 남해에서 농사를 짓는 어머니 땅까지 저당 잡히는 등 있는 대로 대출을 끌어 모아 24평 신축 아파트를 구입한다.
때는 바야흐로 2021년, 우성은 점찍은 아파트 계약을 위해 헐레벌떡 부동산으로 달려가는데 한 시간 사이 매매가가 1억이 올랐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 값은 언제나 우상향이라 믿는 우성은 매매 계약서에 덜컥 도장을 찍는다.
꿈에 그리던 서울 아파트를 소유했다는 잠깐의 기쁨 뒤로 그가 감당해야 할 무시무시한 후폭풍이 밀어닥친다.
아파트 값은 떨어지고 대출 이자는 올라가는 최악의 상황 때문에 퇴근하고 배달 알바까지 해야 하는 우성을 가장 악랄하게 괴롭히는 것은 새벽마다 윗집에서 들려오는 괴상한 소음이다.
게다가 아랫집은 매일 조용히 해달라는 내용을 적은 포스트잇을 우성의 현관문에 덕지덕지 붙여놓고 있다. 분노가 극에 달한 우성은 소음의 정체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에 불타서 직접 조사에 나선다.
<세입자>는 장은호의 단편소설 [천장세]를 각색한 작품으로 SF, 코미디, 호러가 혼합된 독특한 장르 영화다.
주거난이 더 극심해진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월월세에 천장세까지 유행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신동(김대건)은 아파트 월세에서 쫓겨날 상황이 되자 월월세 제도를 이용해 계약을 유지할 계획을 세운다. 월세 세입자가 다시 월월세를 주었다면 집주인은 두 세입자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다는 임대차 법을 교묘히 활용하려는 속셈이었다.
신동이 쾌적한 주거 지역으로 옮겨 갈 기회를 노릴 수 있는 자격요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당분간 월세 계약을 유지해야 한다.
월월세 공고를 내긴 했지만 사실 내 줄 방도 없는 집이라 편법을 쓸 요량이었던 신동은 뜻밖에도 바로 다음 날 월월세로 들어오겠다는 신혼부부의 등장에 당황한다. 이들 부부는 화장실을 월월세로 얻겠다고 제안한다. 당장 쫓겨날 위기는 모면했지만 월월세 세입자가 들어온 이후 신동은 계속 섬뜩한 일을 겪게 되고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위 두 편의 영화는 각기 다른 의미로 반전의 결말을 보여준다.
<84제곱미터>는 아파트라는 공간에 대한 탐욕과 그것의 실체를 파헤치려는 의욕이 광기로 변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고, <세입자>는 끔찍한 통제사회의 가혹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낙오된 청년들의 비극을 호러 관습 안에 담아냈다.
방식은 다르지만 청년 세대가 상상하는 대표적인 주거지로써 아파트는 짜증스럽고 무시무시한 공간이라는 점은 같다. 이현경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인문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평론집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와 '봉준호 코드', '한국영화감독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등의 공저가 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3),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 '꿈 그리고 뉘앙스'(2021)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 대해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