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 4년차, CSO 직급 상승에도 '안전' 경영 우선 순위에선 갈 길 멀어
김인애 기자 grape@businesspost.co.kr2025-07-14 16:5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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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4년차에 접어들면서 안전최고경영자(CSO)는 대부분 건설사에서 전무 이상의 보직을 받으며 위상이 높아진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최근 발표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및 분기보고서를 살펴보면 10대 건설사 가운데 CSO가 이사회에 포함된 곳은 현대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단 두 곳에 그친다. CSO가 아직 안전과 관련해 보다 책임 있는 의사결정을 내리는 구조가 형성되기까지 갈 길이 먼 것으로 분석된다.
▲ 8일 폭염 경보가 발효 중인 서울 강남구 한 공사현장에 '체감온도 경보' 안내문이 설치됐다. <연합뉴스>
1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건설현장 근로자들의 안전한 근무환경을 보다 강화하기 위한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고용노동부는 건설현장 근로자 2시간 근무 20분 휴식을 의무화한다는 내용을 산업안정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이는 노동자 안전을 강화하려는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 방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대통령은 하청노동자 보호를 위해 원·하청 통합 안전보건관리체계 도입과 기업 '안전보건공시제' 단계적 도입을 공약을 내놓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열린 안전치안점검회의에서 "예측되는 사고 또는 사건이 발생하면 앞으로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며 안전을 보다 강화하려는 정부 기조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대표발의한 '건설안전특별법'에는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시공사에 1년 이하의 영업정지 또는 매출액 3% 이내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담았다.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대표발의한 건설기술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건설사들을 분기별로 공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런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과 달리 10대 건설사 CSO의 이사회 진입 여부를 살펴보면 안전 문제가 경영 의사결정에서 최우선순위에 아직 오르지는 못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 이후 CSO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면서 주요 건설사의 CSO들은 대부분 전무 이상의 고위 임원 직급을 받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 1월 27일부터 50인 이상 사업장(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에 먼저 시행됐다. 지난해 1월27일부터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공사금액 50억 원 미만 공사장 포함)까지 전면 적용됐다.
1분기 사업보고서를 기준으로 10대 건설사의 CSO는 안병철 삼성물산 부사장(미등기 임원), 황준하 현대건설 전무(사내이사), 신동혁 대우건설 상무(미등기 임원), 김정배 현대엔지니어링 상무(미등기 임원), 이길포 DL이앤씨 실장(미등기 임원), 이태승 GS건설 전무(미등기 임원), 김현출 포스코이앤씨 상무보(비임원), 박영천 롯데건설 전무(미등기 임원), 임재욱 SK에코플랜트 경영지원센터장(미등기 임원), 조태제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부사장 등이 맡고 있다.
다만 이 가운데 CSO가 이사회에 진입한 곳은 현대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단 2곳에 불과했다. 황준하 현대건설 전무 및 조태제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는 올해 재신임을 받으면서 각 건설사에서 2년 더 CSO역할을 맡게 됐다.
두 건설사는 CSO에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결정 권한을 부여함과 동시에 자리를 유지시켜 안전과 관련된 높은 신뢰와 책임성을 부여한 것으로 읽힌다.
CSO가 이사회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당장 기업의 안전과 관련된 성과와 직접적 관련성이 있는 지는 아직 명확하게 조사된 바는 없다. 다만 기업의 안전·보건 거버넌스와 경영책임 체계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된다는 시각이 건설업계에 많다.
CSO가 이사회에 포함돼 사내이사로 선임되면 안전 관련 정책과 예산, 인사 등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안전경영의 실효성과 책임성, 투명성이 크게 높아진다. 또한 안전과 관련된 법적·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도 유리해진다.
▲ 정경구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가운데)와 조태제 HDC현대산업개발 CSO(왼쪽)가 27일 곤지암역 센트럴 아이파크를 방문해 현장점검을 진행했다. < HDC현대산업개발 >
현재 국내 상황을 고려하면 최고경영자(CEO)는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하면 CSO의 존재 유무 및 CSO의 이사회 포함 여부와 무관하게 최종 책임을 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CSO의 이사회 포함 여부가 세간에서 CEO의 '책임 면피용'으로는 작용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만큼 CSO가 이사회에 들어가면 주요 경영방침에서 안전의 비중이 높아지는 데 도움이 될 공산이 크다.
다른 산업의 주요 대기업들에서도 이미 CSO가 이사회 진입하거나 대표이사까지 맡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자동차업계에서는 기아의 최준영 사장과 이동석 사장이 CSO로서 각자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정유업계에서는 김종화 SK에너지 사장과 김성민 GS칼텍스 부사장이 CSO 역할로 대표이사에 올랐다.
건설업의 안전사고가 이어지고 있어 건설사 경영에서 안전한 현장을 위한 노력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올해 1분기 건설업 사고 건수 및 사망자는 각각 63건 및 7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건수는 1건 줄었고 사망자는 7명 늘었다. 특히 대형사고의 영향을 받아 사고사망자 수가 늘었다.
부산 기장군 건설현장 화재로 6명이 사망했고 세종-안성 고속도로 교량 붕괴로 4명이 사망했다. 올해 지난 5월6일 기준 20대 건설사 현장에서는 총 13건의 중대재해로 16명이 사망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CSO가 이사회에 들어가게 되면 CEO에게 보다 안전이 고려된 의사결정을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인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