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신사들과 주요 플랫폼사들이 때아닌 `SK텔레콤 해킹 한파'를 만나 덜덜 떨고 있다. 반면 대형 법무법인들은 `물 들어왔으니 노 젖자'는 분위기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29도까지 오르는 등 계절이 여름으로 성큼성큼 달려가는 것과 달리, 국내 통신사와 대형 플랫폼 사업자들은 때 아닌 'SK텔레콤 해킹 한파'에 덜덜 떨고 있다.
반면, 대형 법무법인들은 '물 들어왔으니 노 저어라'고 들뜨는 모습이다. 덩달아 개인정보 보호 및 해킹 관련 업무를 해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개인정보보호위원회·경찰 출신들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또한 몇 년 전 게임·IT 개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요즘은 정보보호 전문가들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동안 기업 정보보호 부서와 종사원들은 '돈을 벌지는 못하면서 까먹을 궁리만 한다'며 홀대당해왔는데, SK텔레콤 해킹 사태를 계기로 정보보호 지출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봐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정보보호 책임자 지위가 올라가는 등 대접이 달라지고 있다.
30일 통신사와 대형 플랫폼 업체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사상 최악' 해킹을 당해 과기정통부 민관합동조사단(이하 조사단)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는 SK텔레콤은 물론이고 비록 '동의' 절차를 거친 것이긴 하지만 같은 잣대로 조사를 받고 있는 KT와 LG유플러스 역시 언제 어느 서버(컴퓨터)에서 어떤 악성코드가 튀어나올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네이버·카카오·쿠팡·배달의민족 등 대형 플랫폼 사업자들은 "사고는 통신사서 벌어졌는데 왜 우리까지 점검을 받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반면 대형 법무법인들은 물 만난 모습이다. 2010년 이후 이어지는 해킹 때마다 단체 손해배상 소송 등으로 비용 부담이 커지고 기업 이미지가 훼손되는 등 피해가 발생하며 '고객(클라이언트)'이 몰려들자 과기정통부·개인정보보호위·경찰의 개인정보 보호 관련 정책 및 법 집행 업무 경험자와 보안 전문가를 영입하는 흐름이 이번 SK텔레콤 해킹 사건을 계기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SK텔레콤 해킹 사건을 계기로, 정보보호 생태계에는 물론 대형 법무법인 쪽에도 본격적으로 '장'이 서고 있는 것이다.
조사단이 SK텔레콤 해킹 사건 조사 잣대로 다른 통신사와 주요 플랫폼 사업자들도 직접 점검하고 있다고 밝힌 뒤, 한 이동통신사 대외협력팀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만나 "요즘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이 팀장은 "솔직히 말해 해커들과의 공방은 늘 있는 일인데, 우리 통신망은 뚫리지 않았고, 심겨진 악성코드도 없다고 어찌 장담하겠냐"며 답답해했다. 그는 이어 "솔직히 통신 3사 모두 서버가 몇대나 되고, 어떤 기능을 하는 서버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조차 어렵다"며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뭔가 발견됐다는 얘기는 안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조사단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등의 보안 전문가들로 '통신 및 플랫폼사 보안 점검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KT·LG유플러스와 함께 네이버·카카오·쿠팡·배달의민족 같은 주요 플랫폼 사업자들의 해킹 피해 여부도 직접 점검하고 있다고 지난 26일 밝혔다.
조사단은 "BPF도어(BPFDoor)란 리눅스용 악성코드를 사용한 SK텔레콤 해킹 해커가 국내 다른 통신사 및 주요 플랫폼 사업자도 공격했을 것이란 추측이 이어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사단은 SK텔레콤 서버 점검에 사용한 악성코드 202종에 대한 백신을 사용해 이들 사업자 서버들의 감염 여부를 살피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단은 "SK텔레콤을 빼고는 실제 해킹이 일어난 게 아니어서 동의를 토대로 진행되는 현장 점검"이라고 설명했다.
조사단은 "조사 과정에서 국민 피해가 있을 수 있는 정황이 발견되면 즉시 투명하게 공개하고, 침해 사건 처리 절차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 SK텔레콤 해킹 사태로 '특수'를 만난 대형 법무법인들의 러브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경찰 쪽 개인정보 보호 업무 및 해킹 담당 실무자급들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각 사업자들은 조사단 점검과 별도로 자체 점검도 하고 있다. 자체 조사 결과 뚫린 게 확인되면 한국인터넷진흥원과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즉시 신고하고 가입자 고객들에게 고지해야 한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담당부서 임직원들은 요즘 말 그대로 피를 말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대응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한 통신사 팀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지난 SK텔레콤 2차 중간조사 결과 발표 때 경험했듯이, 이번 해킹 건과 관련해서는 지켜보는 눈들이 많아 어떤 것도 숨길 수 없는 상황이다. 조사단 조사 과정에서 SK텔레콤은 추가로 뭔가 더 나올 것이고, KT와 LG유플러스도 뭔가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최악의 상황까지 감안해 대응 시나리오를 생각해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결같이 대선이 끝나고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서 SK텔레콤 해킹 사태도 소강 국면으로 넘어가기를 바라고 있지만, 헛된 희망이란 전망도 많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대선 뒤 SK텔레콤 해킹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뤄, 가입자 피해 보상과 재발 방지책이 탄탄하게 마련될 수 있게 하겠다고 벼르고 있어서다.
통신사들의 이런 불안감은 정보보호 업계, 보안 전문가, 대형 법무법인들의 '특수'로 이어지고 있다. 한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보안 점검은 정보보호 전문업체 일거리를 늘리고, 정보보호 투자 강화는 실력 있는 보안 전문가들의 몸값을 높이는 거 아니냐. 아울러 강도가 세진 정부 제재와 가입자 집단 손해배상 소송 등 법적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대형 법무법인을 찾는 발길도 잦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5대 법무법인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SK텔레콤은 이번 해킹 사건에 대한 법적 대응 전반을 법무법인 세종에, 개인정보보호위 쪽 대응은 따로 법무법인 광장에 맡겼다. 하지만 고학수 개인정보보호위 위원장이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이미 가입자들의 피해가 어마어마하게 발생했다"며 강도높은 제재 방침 등을 밝히는 등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되자 법무법인 김앤장을 추가로 투입했다.
앞서 김앤장은 최태원 SK 회장의 구속을 막지 못하고 최 회장과 노소영 나비센터 과장은 이혼 위자료 소송에서도 지며 사실상 최 회장과 SK그룹에서 손절당했는데 이번에 SK텔레콤 해킹 건으로 다시 기회를 잡았다.
SK텔레콤은 가입자들의 집단 손해배상 소송 제기 움직임에 대해서도 또다른 대형 법무법인에 맡겨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를 만난 대형 법무법인들의 과기정통부·개인정보보호위·경찰 출신 개인정보 전문가 영입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이미 5대 법무법인 모두 전직 장·차관급을 비롯해 각 기관 고위관료 출신들을 몇 명씩 '고문'으로 두고 있는데 더해, 요즘은 국과장 등 실무자급 출신들도 대거 끌어들이고 있다.
5대 법무법인 관계자는 "최근에도 과기정통부와 개인정보보호위 실국장과 경찰 실무자급 출신들이 5대 법무법인으로 여러 명 영입됐다"며 "경찰 실무자급들이 영입되는 것은 새로운 흐름"이라고 전했다. 경찰 실무자급 영입이 느는 배경에 대해서는 "해킹 사건에서 경찰 수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다. 내부자가 본의 아니게 해커와 공모 내지 해커 침입에 동조한 의혹 등이 불거지는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에서는 통신사·금융사·대기업과 대형 플랫폼사들이 인력과 조직을 늘리는 등 고객 개인정보 보호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보안 전문가를 책임자급으로 영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한 정보보호업체 관계자는 "2~3년 전 IT·게임 쪽 개발자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던 것처럼, 요즘은 정보보호 전문가들이 각 처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법무법인에 가 보니 해커 출신들도 '고문' 명함을 갖고 다니더라"고 웃었다.
과기정통부 출신의 5대 법무법인 고문은 "개인정보보호법 조항과 개인정보보호위 위원장의 발언 등을 보면 SK텔레콤에 대한 과징금(매출액의 3%)이 5천억원대에 이르고, 주민번호와 연계정보(CI)까지 유출된 것으로 드러나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며 "다른 통신사와 대형 플랫폼사들은 물론이고 금융사들과 기업 이미지를 중시하는 대기업들의 법률 검토 내지 대리 요청이 줄을 잇고 있으니, 대형 법무법인 쪽에서 보면 말 그대로 엄청난 장이 선 꼴"이라고 말했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