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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뉴시스> |
대우그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무려 15년이 흘렀다. 김우중 회장이 그 대우그룹을 다시 역사 위로 끌어냈다. 대우그룹 해체과정을 놓고 논란에 불을 붙였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26일 ‘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을 냈다. 김 회장은 이 책에서 대우그룹의 마지막을 다시 세상으로 되돌려 냈다.
대우그룹은 한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그룹이었다. 삼성을 능가해 재계 순위 2위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대우그룹은 뉴밀레니엄을 맞이하지 못하고 대규모 분식회계와 IMF 경제위기로 한순간에 해체되고 말았다. 대우그룹의 몰락은 ‘대마불사’의 안일함에 경종을 올리고 그뒤 우리나라의 기업문화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김 회장은 책에서 대우그룹이 김대중 정부 경제관료들에 의해 기획적으로 해체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경제관료들은 김 회장의 이런 주장에 대해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 신장섭, 이헌재와 강봉균에 공개질문
이 책을 집필한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학교 교수는 이날 열린 ‘김우중과 대화’ 출판기념회에서 김 회장과 대우를 적극 옹호했다. 신 교수는 “김 회장은 세계를 경영한 민족주의자”라며 “김 회장은 기업발전을 추구하면서 항상 국가발전을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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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학교 교수 <뉴시스> |
신 교수는 또 "김우중법을 만들며 한국이 낳은 세계적 기업가를 3번 죽였다고 생각한다"며 "대우의 몰락이 첫 번째고 재판을 받으며 징역형과 23조 원을 추징 받은 게 두 번째로 희생자를 범죄자로 몰아가는 부관참시를 했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김 회장을 세번째 죽인 것이 '김우중법'이라고 했다. 김우중법은 고액 추징금 미납자가 다른 사람 이름으로 숨긴 재산을 몰수하거나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지난해 관련법 개정이 추진됐다.
신 교수는 대우그룹 몰락의 원인을 그룹 내부의 경영실패가 아니라 외부적 요인으로 돌렸다. 신 교수는 대우가 구조조정을 등한시해 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대우는 부실기업이 아니라 희생양”이라며 “김 회장이 한국경제를 관리체제로 바꾸기 위해 국제금융기관이 제시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반대했기 때문에 경제관료와 충돌하며 몰락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당시 경제관료였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대우그룹 해체와 관련한 공개질문도 던졌다. 이 전 부총리는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었고 강 전 장관은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었다.
신 교수는 두 사람에게 구조조정론만을 강요한 게 합당했는지, 근거도 없는 부채비율 200%를 기준으로 구조조정을 한 것이 바람직한 결과를 낳았는지 물었다. 또 대우차의 제너럴모터스(GM) 투자유치 협상이 깨졌다고 한 것과 대우차의 기술력이 없다고 한 이유 등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 대우그룹은 어떻게 몰락했나
1967년 설립된 대우실업을 모체로 하는 대우는 적극적 인수합병과 정부주도의 수출정책,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대우는 대우전자를 설립하고 한국기계공업(대우중공업),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대우조선)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김우중 회장은 1993년 ‘세계경영’을 내세우며 한국 주요 기업집단으로 성장한 대우그룹의 글로벌화를 이끌었다. 그 결과 1998년 말 해외법인 수가 400개에 육박할 정도로 몸집이 불어났다.
그러나 무리한 몸집불리기와 세계화는 IMF구제금융과 함께 독이 되어 돌아왔다. 차입금으로 경영을 유지해오던 대우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맞아 그룹이 해체됐다.
대우그룹은 계열사 실사 결과 26조 원에 이르는 자본잠식 상태였다. 나중에 검찰조사 결과 대우그룹의 분식회계는 41조 원이었고 재무구조는 악화할대로 악화한 상태였다.
대우그룹은 1998년 말 구조조정계획을 발표하고 구조조정에 나섰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GM과 인수협상이 실패하고 삼성그룹과 자동차-전자 빅딜협상도 실패하면서 끝내 회생하지 못했다. 김 회장은 전 재산을 포함해 10조 원의 자산담보를 출연했다. 당시 채권단이 지원한 자금은 4조 원이었다.
정부는 대우사태 관련 종합대책회의에 나섰고 김 회장은 대우그룹 차입금 현황을 발표하고 명예퇴진을 선언했다. 대우그룹은 구조조정에 나선지 1년도 안 돼 채권단 관리 아래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김 회장은 워크아웃이 결정된 후 중국으로 출국했다가 잠적했다. 1999년 말 김 회장과 대우그룹 사장단은 전원 퇴진했고 대우그룹은 해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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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뉴시스> |
◆ 김우중 “대우 몰락 책임은 경제관료”
대우그룹의 해체과정이 정치적 국제적 외압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은 그동안 꾸준히 나왔다. 정부와 정치권이 경제상황을 잘 판단했다면 대우가 충분히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장병주 대우세계경영연구회장은 2012년 ‘대우는 왜’라는 책에서 “정부가 대우 해외사업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외면했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김 회장은 이번에 출간한 책에서 대우그룹 기획해체설을 본격적으로 주장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대우그룹의 몰락 책임이 IMF를 수용한 경제관료들에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관료들이 대우를 부실기업으로 낙인찍고 회생기회를 막았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대우 유동성 위기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금융이 막혀 16조 원 조달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금융권이 구조조정으로 3조 원의 대출을 회수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유동성 위기는 “정부에서 갑자기 수출이 나쁘다고 수출금융을 막아 일어난 것”이라며 “우리 잘못으로 몰아붙이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주장했다.
◆ 김우중 “경제관료들의 대우 제거 프로그램 있었다”
김 회장은 특히 대우가 몰락한 결정적 원인이 됐던 GM의 대우자동차 인수협상 결렬과 삼성과 자동차-전자 빅딜 결렬에도 정부가 책임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회장은 “대우자동차로 한국경제가 입은 손실은 210억 달러 이상”이라며 정부가 대우를 해체하고 대우자동차를 GM에 거의 공짜로 넘겼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경제관료들이 나를 제거하려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다”며 “김대중 대통령이 대우와 삼성의 자동차 빅딜을 적극 밀었으나 관료들이 빅딜이 깨질 상황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사재를 포함해 13조 원의 자산을 내놓았는데 정부가 약속한 10조 원 가운데 4조 원만 지원했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김 회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김 회장에게 경제대통령 역할을 맡겼다고도 주장했다. 김 회장은 수출을 활성화해 500억 달러 무역흑자 달성으로 IMF체제를 조기졸업하자고 주장했는데 이 때문에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충실히 따르는 관료들과 충돌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하루가 멀다하고 청와대로 대우그룹에 대해 나쁜 보고가 올라갔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1990년대 초부터 20년 가까이 세계경제가 호황이었다”며 “세계경영 투자를 멈추지 않았으면 큰 열매를 맺었을 것”이라며 경제관료들의 근시안적 태도를 지적했다.
김 회장은 그룹 해체 후 대우계열사들이 다 좋아졌다면서 그 수혜는 대우계열사를 인수한 외국투자가와 금융기관이 다 누린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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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뉴시스> |
◆ 이헌재 “대우해체는 시간싸움에서 졌기 때문”
김우중 회장과 신장섭 교수가 지목한 이헌재 전 부총리와 강봉균 전 장관은 대우그룹의 몰락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전 부총리는 책에 대해 “공식적 대응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전 부총리는 “책의 내용은 김 회장이 그동안 하던 얘기”라고 평가절하했다. 이 전 부총리는 “김 회장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며 이미 회고록에 대우와 관련한 내용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는 2012년에 낸 회고록 ‘위기를 쏘다’에서 “금감위가 대우를 처리한 방식은 당시로서 최선”이었다며 “DJ정부가 대우를 죽였다는 주장은 다 허튼소리”라고 일축했다.
이 전 부총리는 “대우가 해체된 건 시간싸움에서 졌기 때문”이라며 “대우는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었고 자산매각과 외자유치에서 5대그룹 중 꼴찌였다”고 설명했다. 이 전 부총리는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덧붙였다.
이 전 부총리는 1999년 대우 해체 이후 “대우사태는 기업회계 투명성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며 “김 회장에 대우의 정확한 사정을 공개할 것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못해 몰락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전 부총리는 김 회장의 경기고등학교 후배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 대통령 경제비서실에 근무하면서 김 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이 전 부총리는 김 회장의 지원으로 보스턴대학 경제대학원에서 유학생활을 한 후 대우반도체에 들어가 임원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러나 IMF가 터질 때 두 사람은 금융감독위원장과 전국경제인연합회장으로 다시 만나 구조조정을 두고 시각차를 드러내며 관계가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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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뉴시스> |
◆ 강봉균 “김우중은 정부 특단조처만 기대했다”
당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이었던 강봉균 전 장관도 김 회장의 주장을 반박했다. 강 전 장관은 “경제가 어려운 때라 관료들은 어떻게든 대우를 살려보려 애를 썼다”며 “일부러 어렵게 만들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강 전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이 김 회장과 대우를 좋게 보고 있었는데 경제관료들이 사적 감정으로 미워했다면 자리를 보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은 “대우 위기는 김 회장이 자초한 것”이라며 “대우는 다른 그룹들에 비해 자구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강 전 장관은 “대우는 정부가 특단의 조치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믿었다”며 “김대중 대통령과 가까웠던 것도 그 이유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은 김 회장이 IMF체제의 정책을 두고 관료들과 갈등을 빚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김 회장이 아무리 전경련 회장이라도 기업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는 상황에서 정부정책을 반대할 위치는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강 전 장관은 “김 회장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룹이 해체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전문경영인 없이 거대기업을 판단하다 보니 오판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은 그러나 “김 전 회장에게 돌팔매질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동정적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