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트코인의 가격이 몇 개월의 시차를 두고 금값의 흐름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은 믿을만 할까.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채굴'로 얻어지는 두 자산의 상관관계가 주목을 받는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관세 전쟁이 조금은 잦아들 분위기다. 전후 사정 무시하고 미국의 이해에 과몰입해 ‘전쟁’을 촉발한 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풀어야 할 사람도 트럼프다. 다행히 4월 지나면서 그의 뒷걸음질이 뚜렷하다. 불가피한 행보다. 미국 경제는 망가졌고, 전쟁의 파트너인 시진핑은 끄떡도 없다.
트럼프는 평생을 그래온 것처럼 여전히 떠벌리고 있지만, 불 꺼진 야밤의 침실에선 홀로 시무룩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난 4월 관세 전쟁의 절정에서, 잊었던 경제의 본질 같은 걸 확인한 듯도 하다. 바다 깊은 곳에 묻힌 광물 자원을 두고 벌이는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경쟁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관세로 도발하는 미국에 중국은 희토류 통제로 맞섰다. 직후 두 나라의 관심은 급하게 심해로 옮겨 갔는데, 그곳에 묻힌 망간, 니켈, 코발트, 구리 때문이다.
몽상일지 모르지만 ‘채굴’에 대한 두 나라의 관심은, 경제의 깊은 곳에서 여전히 확고한 ‘실물’의 중요성을 환기해 주었다.
AI의 계산과 온갖 파생 금융 상품들로만 굴러갈 것 같은 테크 자본주의, 금융 자본주의의 깊은 곳에 아직도 ‘땅을 파는 일’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경제 불확실성 탓에 리스크 헤지의 최종 수단으로 유례없는 사랑을 받는 금의 존재도 그렇다. 금값이 치솟으면서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미국의 뉴몬트, 캐나다의 애그니코이글마인스 같은 기업들의 주가가 뛰었다.
둘 다 금 캐는 기업이다. 이런 기업들만 모아 구성한 상장지수펀드(ETF)의 수익률은 관세 전쟁의 절정에서 비약을 거듭했다.
여기에 비트코인(Bitcoin)이 가세한다. 비트코인은 여전히 등락을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자산이다. 그런데 미국 경제와 연동된 국채와 달러가 무너지자, ‘비트코인=안전자산’의 논리가 발호하기 시작했다.
금과 비트코인의 상관관계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4월의 막바지엔 가상화폐 전문매체 크립토퀀트가 “비트코인 가격은 몇 개월의 시차를 두고 금값 흐름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면서 분석인지 예언인지 모를 아리송한 주장을 시대의 복음인 양 내놓기도 했다.
하긴 가상화폐 추종자들이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으로 고집스럽게 불러오긴 했다. 비트코인과 금 사이에 공통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금처럼 비트코인도 ‘채굴’을 통해 얻는다. 블록체인의 장부에 해당하는 ‘블록’ 하나를 채굴할 때마다 보상으로 주어지는 게 비트코인이다.
물론 비트코인의 채굴은 ‘삽질’이 아니라, 성능 좋은 GPU를 활용한 꾸준하고도 집요한 ‘계산’으로 이뤄진다.
금, 비트코인 모두 무한한 ‘매장량’을 갖지 못했다. 미국 지질조사국 계산으로, 지구에 묻힌 금은 모두 26만 톤인데 거의 파내고 이제 5만 톤이 남았다. 앞으로 20~30년이면 금 채굴은 추억이 된다.
신비의 인물 사토시 나카모토에 의해 발행량이 2100만 개로 설정된 비트코인은 2140년에 동 난다. 금 채굴의 종언 후 정말, 비트코인은 금의 자리를 보충할까.
누구라고 훗날 달러와 금과 비트코인을 포괄하는 범 화폐 시장의 미래를 쉬이 예단하겠나. 하지만 이제 채굴의 범위를 실제 삽과 포크레인의 일로 한정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비트코인의 ‘채굴’이 은유의 차원만은 아니란 얘기다.
비트코인이 아니어도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른바 ‘시뮬라시옹(simulation)’이라고 일군의 비평가들이 부르는 ‘원본 없는 복제’의 사회를 살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디즈니랜드는 중세 유럽에 있는 고성(古城)의 모방이 아니라 그냥 디즈니랜드일 뿐이라고. 괜한 소리가 아닌 줄 이제 다들 안다.
비트코인도 다르지 않다. 블록체인의 장부(블록)들은 태생부터, (중앙집권적이어서 유일한) 원본 같은 걸 지닌 적이 없다. 채취하는 방식 역시 금이나 망간 니켈을 캘 때와 다르지만, 작동 원리와 효과에서 전통적 채굴과 다를 게 없다.
그게 바닷속이든, 집 앞 텃밭이든 실제 땅을 파는 일에서 평안을 찾는 개인 취향 때문에 크게 바라진 않지만, 향후 금과 비트코인의 연동 가능성을 호사가들의 입담으로 내치긴 어려울 것 같다. 경제의 단기적 불확실성과 무관하게 심각하고 흥미로운 주제다. 이지형 금융증권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