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모인 시민들이 "왕은 없다", "의회는 헌법을 준수하라", "트럼프 대통령은 낙제점" 등이 적힌 손푯말을 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적 환경 기념일을 앞두고 반트럼프 시위 확산을 막으려 환경단체 견제에 나섰다.
구체적으로 미국 정부는 환경단체 등 비영리 단체와 교육기관들에 주고 있는 면세 혜택을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1일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22일 '지구의 날'을 앞두고 미국 정부가 환경단체들을 대상으로 한 새 행정명령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지구의 날은 1970년에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환경 문제를 향한 인식을 높이고 관련 활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게이로드 넬슨 미국 상원의원의 제안으로 제정됐다. 1990년대부터는 미국 외에 다른 나라들도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2009년에는 유엔(UN)이 공식적으로 국제 기념일로 지정했다.
한국도 환경운동연합 등 국내 환경단체들의 주도로 1990년대부터 지구의 날 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2010년대 들어서는 환경부가 직접 매년 4월22일을 전후해 일주일을 기후변화주간으로 지정하고 관련 행사를 운영해오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환경단체들이 받고 있는 세금 면제 혜택을 박탈하는 조치를 포함한 행정명령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미국 국내에서 활동하는 환경단체들은 국세법 면제 조항 501(c)(c3)에 의거해 세금을 일정부분 면제받고 있다. 공공의 이익 위해 사회 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들을 지원하기 위해 제정한 규칙이다.
다만 해당 규칙은 면세 혜택을 받고 있는 단체가 특정 정치인 또는 정당을 지지하거나 특정 정치적 목적을 염두에 둔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이 점을 들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석유, 가스, 석탄 채굴 정책에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며 면세 혜택을 폐지하는 행정명령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 기후대응과 친환경 정책을 축소하고 화석연료 생산을 확대하고 있는 트럼프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환경단체 '시에라클럽'은 16일(현지시각) 트럼프 정부가 폐지한 환경보호법을 두고 성명을 내어 "우리는 우리와 미래세대의 생명을 수호하기 위해 이 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구상하는 세계에서는 미래세대가 지금 우리가 누리는 것을 사진 너머에서만 볼 수 있게 될 것"이라 직격했다.
트럼프 정부는 면세 혜택 폐지에 더해 다른 조치들까지 동원해 환경단체들을 강도 높게 압박할 방침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 정부 관계자는 블룸버그에 익명을 전제로 "미국 비영리단체들의 활동에 대한 조사 및 자금 지원을 제한하는 방안 등 더 광범위한 조치들까지 검토하고 있다"며 "이같은 조치는 환경단체뿐 아니라 다른 문제를 다루는 비영리단체, 재단, 자선단체까지도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각) 백악관 공식성명을 통해 "현재 우리 행정부는 매우 부유하고 강하며 나쁜 행동을 하는 단체들을 겨냥한 몇 가지 조치를 발표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각) 백악관에 앉아 브리핑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행정명령을 추진하는 이유는 지구의 날 행사를 통해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는 것을 막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AP통신과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19일(현지시각) 미국 전역에서는 미국 독립전쟁 250주년 기념일 행사로 모인 사람들이 700여 건에 달하는 반트럼프 집회와 시위를 참여했다.
특히 수도인 워싱턴 D.C에서는 워싱턴 대통령 기념탑 주위로 시민 수천 명이 모여 "왕은 없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트럼프 대통령을 규탄했다.
이런 가운데 전국적 기념일이자 트럼프 정부에 반대하는 환경단체 회원들이 대거 결집하는 지구의 날 행사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시위가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AP통신은 미국 미네소타주 주도 세인트폴에서는 환경단체 회원들과 반트럼프 시위자들이 합세해 집회 규모가 더 커졌다고 보도했다.
이날 세인트폴에 위치한 미네소타주 의회 의사당 앞 광장에는 약 1만 명이 넘는 군중들이 모였다.
한 집회 참여자는 AP통신 인터뷰에서 "미국의 자유가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며 "난 우리 아이들이 이 나라가 어떤 기치를 들고 세워졌고 왜 그것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우릴 보고 배우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정부가 행정명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환경단체들은 향후 운영에 차질을 겪을 수 있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폴 미뇨 환경단체 '아마존 워치' 부국장은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은)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라며 "비영리단체들이 면세 지위를 잃는다면 자금과 자원을 모을 수 없어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