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KB국민과 신한, 하나, 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잔액이 3월 이후 지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미국 상호관세 정책에 따른 국내 수출기업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건전성 관리에 나서는 모양새다. 상호관세 불확실성이 여전한 만큼 당분간 중소기업대출 건전성 관리가 4대 은행의 주요 과제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 4대 시중은행이 3월 이후 중소기업 대출을 조이고 있다. |
18일 4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전날 기준 중소기업 대출(소호대출 포함) 잔액은 540조2486억 원으로 3월 말보다 4826억 원 줄었다.
4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3월에도 1조4774억 원 감소했는데 2달 연속 감소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다.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1월에는 2290억 원 줄었고 2월에는 4254억 원 증가했다.
3월에는 4대 시중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도 1조4222억 원 줄면서 3월 기업대출(대기업+중소기업) 잔액은 3조 원 가까이 감소했다.
이런 흐름은 전 은행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의 3월 말 기업대출 잔액은 1324조3천억 원으로 2월보다 2조1천억 원 줄었다. 3월 기준 기업대출 잔액이 감소한 것은 2005년 이후 20년 만이다.
3월은 1분기의 끝자락으로 기업의 연초 투자 확대 계획 등에 따라 대출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2024년과 2023년 3월에는 각각 10조4천억 원과 5조9천억 원 규모로 잔액이 늘었다.
3월 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자 중소기업 대출을 중심으로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이 유예되며 한숨 돌렸다지만 향후 정책이 현실화해 수출이 줄어든다면 수출 중심의 국내 중소기업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현재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은 어느 때보다 큰 상황으로 평가된다.
전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미국의 관세 정책을 놓고 “비유하자면 갑자기 어두운 터널에 들어온 느낌”이라며 향후 경기의 불확실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올해부터 4대 은행이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을 위해 위험가중자산(RWA)을 반영한 보통주자본(CET1)비율을 더욱 주요한 지표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도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4대 은행 기업대출은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이뤄져 있다. 4대 은행 기업대출 물량 가운데 중소기업 비중은 80%에 이른다.
중소기업은 위험가중자산을 산출할 때 적용되는 가중치가 상대적으로 높아 대출이 늘면 위험가중자산이 커지면서 보통주자본(CET1)비율이 떨어지는 효과를 낸다.
이는 기업대출을 적극 늘리던 지난해와 사뭇 다른 분위기로 평가된다.
4대 은행은 지난해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확대 속도 조절을 주문하면서 가계대출 대신 기업대출을 늘리는 데 힘을 실었다. 4대 금융의 실적발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대 은행의 기업대출이 9% 늘어나는 사이 가계대출은 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일각에서는 어려울 때 주요 은행이 중소기업의 돈줄을 조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전날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이 총재는 이날 한국 경제가 어두운 터널에 들어온 것 같다며 경기침체를 경계했다. <연합뉴스> |
이에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의 기업 대출 숨통을 트여주기 위해 기업대출의 위험가중자산 가중치를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가중치가 하향 조정되면 시중은행은 보통주자본비율 하락 부담이 줄어들면서 일정 부분 기업대출을 늘릴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관세충격이 큰 수출기업, 협력업체 및 산업단지 인접 자영업자 등의 현장 애로를 면밀히 파악하겠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금융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4대 은행은 국내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으며 면밀히 상황을 검토해 지원을 이어나가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4대 은행은 미국의 상호관세 발표 이후 이미 각각 수조 원 규모의 상호관세 피해 기업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4대 은행 한 관계자는 “이미 지주 회장이 주관하는 ‘상호관세 피해 지원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매일 상황을 점검하고 지원대책을 수립하고 있다”며 “향후 상호관세 흐름과 국내 중소기업 상황에 맞춰 실효성 있는 대책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다른 4대 은행 관계자는 “올해부터 위험가중자산 대비 이익률을 고려한 지표를 새로 만들어 성과평가(KPI)에 반영하고 있다”며 “이미 발표한 지원 방안을 성실히 이행하며 우량자산 중심의 기업대출 확대 전략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