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채권을 사들이는 양적완화정책의 시행기간을 연장하면서 매입규모는 줄이기로 했다.
유럽중앙은행은 8일 통화정책회의에서 채권을 매달 대거 사들이는 양적완화 프로그램의 종료시점을 2017년 3월에서 12월로 연기하기로 했다. 기준금리도 현재의 ‘제로금리’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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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
채권매입 규모는 현재 매달 800억 유로인데 2017년 4월부터 400억 유로로 줄이기로 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통화정책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유럽중앙은행의 이번 통화정책 결정은 ‘테이퍼링’이 절대 아니다”며 “필요하다면 추가적인 완화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밝혔다.
테이퍼링은 양적완화정책을 통해 시장에 공급하는 유동성의 규모를 점진적으로 줄이면서 통화정책을 정상화시키는 방안을 뜻한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채권매입 규모를 매달 줄이는 방식으로 테이퍼링을 시행했던 점을 감안하면 유럽중앙은행의 이번 조치는 양적완화정책을 제한적으로 연장하는 쪽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유럽중앙은행은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국가들의 평균 물가상승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채권매입정책의 시행기간을 연장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중앙은행은 2018년까지 유로존의 연간 물가상승률을 2%로 올리는 목표를 세웠는데 올해 물가상승률은 0.2%에 머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러 나라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점도 유럽중앙은행의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최근 개헌투표 부결에 책임지고 물러나기로 하면서 이탈리아의 유럽연합 탈퇴(이탈렉시트) 가능성도 있다.
내년에는 영국이 3월에 유로존과 접점 없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하드 브렉시트’를 할 가능성이 있다. 네덜란드 총선(3월), 프랑스 대선(4~5월), 독일 총선(9월)도 줄줄이 치러진다.
도널드 존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에 취임한 뒤 어떤 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드라기 총재도 “다음해 유로존 국가들의 선거일정 자체가 불확실성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다른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일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중앙은행이 드라기 총재의 발언과 달리 테이퍼링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도 증권업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12월에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며 일본은행(BOJ)도 대규모의 유동성 공급에서 채권의 수익률곡선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선회했는데 유럽중앙은행도 같은 노선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구혜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유럽중앙은행은 테이퍼링을 완만하게 진행하면서 지속가능한 통화정책을 실행해 경제부담을 최소화하는 현실적인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통화완화의 속도를 서서히 줄이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