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을 놓고 금융감독원과 생명보험회사의 갈등이 장기전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생명보험회사들에게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의 행정제재를 내릴 것으로 보이는데 생명보험회사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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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KDB생명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DB생명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논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두고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KDB생명은 매각을 앞두고 입찰자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여지를 줄이는 한편 금융감독원이 높은 수위 제재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7일부터 2주에 걸쳐 KDB생명과 현대라이프생명을 현장검사하고 있는데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미지급한 생명보험회사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장조사다.
금감원 관계자는 “KDB생명과 현대라이프생명을 마지막으로 현장점검을 마무리하고 행정제재와 관련한 법리적 검토를 시작할 것”이라며 “이르면 12월 말이나 내년 초에 행정제재수위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에서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미지급한 생명보험회사에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의 행정제재를 내릴 것으로 업계는 바라본다.
금감원이 이례적으로 삼성생명에 과중한 과징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10일 삼성생명이 보험금을 지급할 때 가산이자 12억9천만 원을 함께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징금 24억 원을 부과했다.
이 금액은 그동안 금감원이 내린 과징금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데다 보험회사가 미지급한 금액보다 과징금 규모가 더 큰 경우도 처음이다. 삼성생명이 금융감독원의 뜻과 달리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미지급한 '괘씸죄'가 적용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소멸시효가 지난 생명보험회사를 대상으로 강력한 행정제재를 가하겠다는 뜻을 여러차례 밝힌 상황에서 삼성생명의 과징금 사례를 따로 보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사실상 금융감독원이 생명보험업계에 마지막 경고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무거운 행정제재를 내릴 경우 생명보험회사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법원이 생명보험회사들의 손을 들어준 상황에서 쉽게 물러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2014년에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보험회사에 행정제재를 가했을 때 ING생명은 과징금 부과가 정당하지 않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 이 소송은 ING생명이 매각을 앞두고 스스로 취하하기 전까지 약 1년여에 걸쳐 진행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생명보험회사들은 금감원 제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판단하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며 “이 경우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대형 손해보험회사들이 행정제재 대상에 포함된 점을 감안하면 자살보험금을 둘러싼 논란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재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곳은 삼성생명(1585억 원)을 비롯해 교보생명(1134억 원), 알리안츠생명(122억 원), 한화생명(83억 원), KDB생명(74억 원), 현대라이프생명(65억 원) 등 6곳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