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 고급브랜드 제네시스 전기차 모델들이 극심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가 하이브리드 판매 강화 전략을 펼치면서 제네시스 브랜드는 기존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첨병에서 하이브리드차 판매 핵심으로 완전히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제네시스 GV60. <현대자동차> |
[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 전기차(EV) 라인업이 국내에서 심각한 판매부진 겪고 있다. 높은 가격에 보조금 수혜도 적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의 직격탄을 맞은 모습이다.
제네시스는 기존 현대차, 기아 등 현대차그룹 3사 가운데 가장 공격적 전기차 전환 전략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최근 현대차가 하이브리드차(HEV) 판매 강화 전략을 들고 나오면서, 전기차 전환기 제네시스 브랜드 역할이 기존에 없던 하이브리드차 풀라인업 구축을 통한 그룹사 점유율 방어로 완전히 새롭게 짜여지는 형국이다.
9일 현대차 판매실적 자료를 종합하면 올해 들어 8월까지 G80 전동화 모델과 GV60, GV70 전동화 모델 등 제네시스 전기차 라인업 3종은 국내에서 합산 999대가 판매되는데 그치며, 전년 동기보다 판매량이 81.3%나 감소했다.
지난해 제네시스 전기차 모델 합산 국내 판매량이 6394대를 기록하며 2022년(1만1266대)보다 43.2% 줄어든 점을 고려하면, 지난해 전기차 '캐즘'이 세계 전기차 시장을 덮친 뒤 올해까지 바닥을 모르는 극심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셈이다.
제네시스는 2021년 7월 브랜드 첫 전기차 G80 전동화 모델에 이어 같은해 9월 전 용전기차 GV60, 2022년 3월 GV70 전동화 모델이 국내 출시되면서 현재 3종의 전기차 라인업을 갖췄다.
특히 지난달 제네시스 전기차 모델의 월간 전기차 판매량을 보면 G80 전동화모델은 3대, GV60은 33대, GV70 전동화모델은 44대에 그쳤다.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낮은 수입 전기차 판매 순위를 보면 메르세데스-벤츠 EQA 250이 8월 한달 동안 43대가 팔려 수입 전기차 중 판매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보다 1대 더 팔린 GV70 전동화 모델을 뺀 제네시스 전기차들은 수입 전기차 판매량 10위권에도 못미치는 실적을 냈다.
국내 전기차 시장이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과 전기차 수요 정체의 '이중고'를 겪는 가운데 고급브랜드 제네시스의 전기차 라인업은 높은 가격으로 더 치명적 판매 감소를 겪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제네시스 전기차는 판매 가격이 모두 전기차 보조금 100% 지급 기준인 5500만 원을 넘어, 다른 현대차그룹 전기차 라인업이 600~700만 원을 넘는 국고 보조금을 지급받는 반면, 제네시스 3종에는 모두 약 300만 원 수준의 국고 보조금이 책정됐다.
수출실적도 좋지 않다.
올해 1~7월 제네시스 전기차 3종은 3572대가 수출돼 전년 동기(5065대)보다 29.5%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가 전기차 전환 속도가 둔화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해 단기적으로 하이브리드차 판매를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하면서, 제네시스 브랜드가 전기차 전환기 그룹사에서 담당하는 포지션이 완전히 뒤바뀌게 됐다.
현대차는 2021년 9월 온라인으로 제네시스 친환경차 전략 발표회를 열고 2025년부터 신차를 전기차로만 출시하고, 2030년 이후에는 내연기관차를 아예 팔지 않겠다는 공격적 전기차 전환 전략을 밝혔다.
메르세데스-벤츠가 EQ, BMW가 i시리즈, 아우디가 e-트론 등 별도 전기차 모델 명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제네시스가 내연기관 모델명을 전기차에 그대로 쓰고 있는 것도 전기차 브랜드로의 신속하고 완전한 전환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현대차는 최근 'CEO 인베스터 데이'(CID)에서 준중형, 중형 차급 중심으로 적용됐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소형, 대형, 럭셔리 차급까지, 기존 7차종에서 14차종으로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
특히 기존에 하이브리드 모델이 없었던 제네시스 브랜드에 전기차 전용 모델을 제외한 모든 차종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한다는 방침을 처음 공식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을 대폭 늘려 2028년에는 지난해 글로벌 판매 계획과 비교해 40% 증가한 133만 대의 하이브리드차를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기존 그룹사 전기차 전환 첨병의 임무를 부여받았던 제네시스 브랜드는 중단기 하이브리드 강화 전략의 핵심 주체라는 완전히 다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 제네시스 G80 전동화 부분변경 모델. <현대자동차> |
제네시스 브랜드에서는 세단 G70과 G80, G90, SUV GV70, GV80 등의 하이브리드 신차가 출시된다. 새로 나올 7종의 하이브리드 중 5종을 제네시스가 맡는 셈이다.
현대차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 둔화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2030년 전기차 판매 목표를 전년 설정한 목표치 200만 대와 동일하게 유지했다.
다만 전기차 판매 중간 목표는 지난해 세운 2026년까지 94만 대(비중 18%)에서 올해 2027년까지 84만1천 대(비중 17%)로 낮춰잡았다.
제네시스는 이 기간 동안 하이브리드 신차 출시를 통해 그룹의 전기차 판매 후퇴로 인한 글로벌 자동차 시장 점유율 방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제네시스 하이브리드차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환기 수익성 확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측에 따르면 최근 전기차 수요 둔화로 현대차가 전기차 판매에 사용하는 인센티브(판매 장려금) 수준이 높아지면서 전기차 판매 대당 수익은 낮은 한자릿 수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반면 하이브리드차는 내연기관차와 비슷한 두자릿수 이상의 대당 수익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에서 가장 비싼 제품 라인업을 보유한 제네시스 브랜드의 하이브리드차 출시는 치열한 전기차 판매 경쟁 속 수익성을 지켜주는 새 주머니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관계자는 "하이브리드차로 시장에 대응하며 수익성을 확보하고, 전동화 수요 회복이 예상되는 2030년까지 점진적으로 전기차 모델을 확대할 것"이라며 "경제형 EV에서부터 럭셔리, 고성능까지 21종의 전기차 풀라인업을 구축해 본격적 전기차 시대에 시장을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