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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 |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이탈리아 총리에게 경제개혁을 강력히 촉구했다.
유럽 경제규모 3위인 이탈리아의 경기침체가 유럽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이례적으로 일침을 놓았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슈퍼 영웅이 아닌 이상 불과 몇 개월 만에 경제를 돌려 놓을 순 없다”며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 드라기, 이탈리아 향해 “개혁 제대로 해라”
드라기 총재는 7일 유럽중앙은행 정례 통화정책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이탈리아 경제상황을 언급하며 개혁을 촉구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똑 같은 얘기를 누차 계속하고 있다”며 “노동시장부터 제품시장, 경쟁, 사법까지 모든 분야에서 개혁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드라기 총재가 특정국가를 지목해 쓴소리를 한 것은 유럽금융시장에서 이례적이다. 일부에서 그가 총재 임기가 끝나기 전에 사퇴하고 이탈리아 대통령에 출마하려고 이런 발언을 한 것 아니냐고 보기도 한다.
지난달 드라기 총재의 대통령 출마설이 터져나온 적도 있다. 물론 그는 이를 단호히 부인했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 이탈리아 경제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해석이 더 지배적이다. 이탈리아는 경제는 지난 2분기 성장률이 전기대비 -0.2%, 전년동기대비 -0.3%로 나타났다.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유로존에서 경제규모 3위의 국가다. 이탈리아의 경기침체가 유로존 전체에 미칠 파장이 상당하다. 유럽경제 회복을 책임져야 하는 드라기 총재에게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탈리아는 답답할 뿐이다.
유럽의 경제전문가들은 드라기 총리의 이날 발언이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에게 상당한 부담을 가져다줄 것으로 분석한다.
리카르도 바르비에리 미즈호인터내셔널 유럽담당 이코노미스트는 “드라기 총재가 이탈리아 정부에 경제구조 개혁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며 “앞서 개혁을 단행했던 유로존 국가들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드라기 총재의 발언은 마테오 렌치 총리에게 큰 압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테오 렌치 총리는 이탈리아 사상 최연소 총리로 올해 39세다. 지난 2월 말 신중도우파 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총리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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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
하지만 취임한지 반 년 가까이 되도록 경제회복을 이끌만한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 확충과 경제부양을 기치로 내걸고 저소득층 및 중산층을 살리기 위해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렌치 총리는 드라기 총재의 발언에 “만화책에 나오는 슈퍼 영웅이 아닌 이상 불과 몇 개월 만에 경제를 돌려 놓을 순 없다”며 “나는 경제개혁의 방향을 제시했지만 그 몇 개월 만에 모든 걸 다 바꿔놓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 ‘슈퍼 마리오’ 드라기, 저성장 유럽경제를 살려낼까
드라기 총재는 재닛 앨런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저우샤오촨 중국인민은행장과 함께 세계금융시장에서 말 한마디로 영향력을 끼치는 4인방 중 한 명이다. 이들의 말 한마디는 시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유럽중앙은행(ECB)는 이날 통화정책회의를 통해 기준금리를 연 0.15%로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ECB 사상 최저수준이다. 각국 은행들이 ECB에 맡기는 예치금에 대한 금리도 현행 -0.10%로 유지하기로 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유로화 가치하락을 당분간 용인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드라기 총재는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지는 것은 이머징 국가들의 경제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과 유럽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상황은 유로존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드라기 총재는 이탈리아 은행가이자 경제학자 출신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생활을 하다 1984년부터 금융계에 발을 디뎠다.
2006년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에 올라 5년간 재직한 뒤 2011년 11월 장-클로드 트리셰 전임 총재에 이어 3대 유럽중앙은행 총재에 취임했다.
드라기 총재는 취임 직후인 2011년 11월과 12월 기준금리를 0.25%씩 내리고 두 차례에 걸친 장기대출 프로그램(LTRO)을 도입해 1조 유로가 넘는 자금을 유로존 은행권에 풀었다.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를 통해 유럽의 재정위기를 구했다는 평가를 받아 ‘슈퍼 마리오’란 별명을 얻었다. 특히 그의 양적완화 정책은 로켓포인 ‘바주카포’에 비유되며 대규모 유동성 공급정책의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드라기 총재의 자신만만함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유럽 금융시장에서 그가 유럽 재정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 유럽중앙은행의 역할을 지나치게 확대했다고 지적한다.
또 ‘액션’보다 ‘립 서비스’에 강한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자주 나온다. 유럽경제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디플레이션마저 우려되기 때문이다.
유럽 금융가에서 “립 서비스의 황제 드라기 총재가 이젠 행동으로 보여줄 때가 됐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IMF는 지난달 1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유로존의 디플레이션을 방지하고 경제를 회복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서 유럽중앙은행이 국채매입을 통한 양적완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하게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