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구매 망설이게 하던 소비자들의 공통된 우려를 해소해 전기차 대중화를 선도하겠다."
송호성 기아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5월 EV3 월드프리미어(세계최초 공개) 영상에 등장해 이렇게 말했다.
대중이 여전히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전기차의 높은 가격과 충전의 불편함이란 게 송 사장의 진단이다.
EV3는 기아의 이런 문제 인식 아래 제작된 첫 전기차 대중화 모델이다.
최근 역성장세를 보이며 심각한 침체기를 지나고 있는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EV3가 새로운 활력을 불러올 수 있을 지 직접 시승해봤다.
◆ 작고 귀여운 외관, 실용성과 공간감 돋보이는 실내
24일 서울 성동구 갤러리아 포레에서 EV3 시승행사가 열렸다.
시승 차량으로는 EV3 최상위트림인 4850만 원(친환경 세제혜택 적용 기준)짜리 GT-라인 롱레인지에 첨단운전자 안전 지원 기능 패키지인 드라이브와이즈, 와이드 선루프, 하만카돈 프리미엄 사운드, 빌트인캠2 등 모든 옵션이 다 들어간 차량이 제공됐다. 옵션 가격은 친환경 세제헤택 적용 전 기준 440만 원이다.
EV3는 작년 출시된 준대형 전기 SUV EV9과 패밀리룩을 이루면서도 소형 차급에 잘 어울리는 한층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디자인을 입고 있다.
EV3 전면부는 후드와 범퍼 표면을 매끄럽게 처리하고 볼륨감이 돋보이도록 디자인했다. 헤드라이트는 전면부 양끝에 수직으로 자리잡았고 그 위쪽과 측면에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 주간주행등(DRL)을 둘렀다.
측면부는 뒤로 갈수록 낮아지는 차지붕(루프)라인이 앞으로 달려나갈 듯한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후면부도 뒷 차창과 부드럽게 이어지는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을 차체 양 끝에 배치해 테일게이트 표면을 깔끔하게 처리했다.
기아는 EV3의 실내를 간결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고객의 다양한 사용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구성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실내에는 12.3인치 클러스터(계기판)와 5인치 공조, 12.3인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 3개의 화면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파노라믹 와이드 디스플레이와 12인치 윈드실드 타입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적용됐다.
차문과 크래시패드, 콘솔 하단에 배치한 다이내믹 엠비언트 라이트는 차량 속도에 따라 밝기가 달라지도록 설정할 수 있다.
시승차 실내에선 차문 팔걸이(암레스트) 등에서 플라스틱 재질의 마감이 다수 눈에 띄었다. 기아는 재활용이 가장 쉽다고 알려진 플라스틱인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드(PET)를 EV3 실내 곳곳에 적용했다고 한다.
고급감과는 거리가 있지만 전기차 대중화라는 이 차의 소임에 걸맞는 실용적 선택으로 보였다.
소형 SUV 차급임에도 실내 공간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1열 시트를 운전하기 편하게 조정한 상태에서 2열에 앉았을 때도 무릎 앞에 주먹 2개가 쉽게 들어가는 공간이 남았다. 또 2열 시트에도 뒤로 젖힐 수 있는 리클라인이 기능이 적용됐다.
◆ 부족함 없는 가속성능에 뛰어난 승차감과 정숙성, 신기술 통한 혁신도
시승은 갤러리아 포레를 출발해 강원 춘천시의 한 카페를 들렀다 강원 속초시에 위치한 롯데리조트 속초까지 편도 약 200km 구간에서 진행했다.
EV3를 몰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잘 나간다'는 것이었다. 액셀을 밟으니 낮은 모터음과 함께 미끄러지듯 빠르게 치고 나갔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가속과 동시에 최대 토크가 발생해 출발 즉시 빠르게 속도가 올라간다. 이는 전기차에 익숙지 않은 탑승자의 승차감을 저해하는 요소로 지적되기도 한다.
시승차는 가속페달을 강하게 밟아도 울렁거림 없이 부드럽고 시원하게 다부진 차체를 밀고 나갔다.
시승차량은 최고출력 150kW(킬로와트, 201마력), 최대토크 283Nm(뉴턴미터, 28.9kg.m)의 성능을 낸다. 니로 EV와 비교해 최고 출력은 같고 최대 토크는 26%가량 개선됐다.
물론 고가의 고성능차 같은 역동적 성능과는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드라이브 모드에 따른 주행감성의 차이는 또 다른 운전의 재미도 선사했다.
연비 중심의 에코 모드에선 가속 페달에 다소 답답한 반응을 보이다 노말 모드,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점점 더 민첩하게 반응하며 의도한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앞 차를 따라잡았다.
찻값을 낮춘 대중 모델임에도 시승차의 승차감과 정숙성은 뛰어났다.
기아는 노면 상태에 따라 타이어에 다르게 전달되는 주파수를 활용해 노면에서 올라오는 진동을 완화하는 주파수 감응형 쇽업소버를 앞·뒷바퀴에 적용하고, 앞바퀴에는 서스펜션 내 부품들을 유연하게 연결해 충격을 흡수하는 하이드로 부싱을 장착했다.
또 대시보드와 차량 하부에 흡음재 사용 면적을 넓히고 1열에 이중접합 차음유리를 적용했다.
이번 시승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EV3가 대당 수익이 많지 않은 소형차임에도 전동화 신기술을 선제적으로 적용해 편의성을 크게 끌어올린 점이었다.
EV3에는 현대자동차그룹 최초로 '스마트 회생 시스템 3.0' 적용됐다.
이 기능을 활용하니 감속에 브레이크가 아닌 회생제동을 이용해 전비가 높아질 뿐 아니라 브레이크를 밟을 일이 거의 없어 운전 피로도를 크게 낮춰줬다.
회생제동은 차량을 제동할 때 발생하는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해 배터리를 충전하는 전기차의 기능이다. 스마트 회생 시스템은 회생제동에 자율주행 기술을 접목한 것이다.
스티어링 휠 우측의 패들시프트를 약 1초 동안 길게 당겨 이 기능을 켜면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뗄 때 센서를 통해 감지한 앞차와의 거리, 내비게이션 정보 등을 활용해 적정 수준으로 감속해준다.
EV3에 최초 탑재한 스마트 회생 시스템 3.0은 기존 시스템이 과속 카메라 정보만 활용했던 것과 달리 내비게이션 기반 정보를 활용해 과속 카메라, 좌·우회전, 커브길, 속도제한, 방지턱, 회전교차로 등의 상황에 맞춰 자동으로 속도를 줄인다.
신기술은 브랜드 수익성이 좋은 고급차에서부터 적용돼 점차 아랫차급으로 확산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EV3는 스마트 회생 시스템뿐 아니라 모든 회생제동 단계에서 가속 페달에 발을 떼는 것만으로 차를 세울 수 있는 아이 페달 3.0, 충전시간을 단축시키는 차세대 열관리 시스템, 새로운 전기차 전원 제어 등 다양한 신기술을 선제적으로 탑재했다.
기아가 EV3를 통한 전기차 대중화에 들이는 노력의 진정성이 읽히는 대목이다.
송 사장이 언급한 것처럼 결국 전기차가 잘 팔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합리적 가격이다.
EV3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와 4세대 배터리를 탑재하고 동급인 니로EV보다 100km나 늘린 501km(롱레인지 모델 기준)의 1회충전 주행거리를 확보했다. 그럼에도 롱레인지 모델 시작 가격은 4415만 원으로 니로 EV(4855만 원)보다 440만 원 싸다. 1회충전 주행거리가 350km인 EV3 스탠다드 모델의 경우 시작 가격이 3995만 원으로 니로 EV보다 1천만 원 가까이 싸다.
3시간가량 이어진 약 200km의 시승 코스에서 EV3의 1kWh당 전비는 중간 기착지까지 6.9km, 기착지부터 도착지까지 6.1km를 보였다.
출발지에서 기착지까지는 대부분 구간에서 스마트 회생제동 기능을 활용했고, 기착지 지나서는 절반 이상을 스포츠 모드로 주행했다. 19인치 타이어를 단 시승차량의 공인 복합전비는 1kWh당 5.1km다. 허원석 기자